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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평점 :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연금술사]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기를 별로 생각한 적이 없다. 되돌려지지도 않는 인생이기도 하지만 지금이 만족스러운데...... 만약 아무 기억도 없는 젖먹이시절로 돌아간다면, 모두의 사랑이 가득한 유아기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거 실패 투성이의 삶을 살았다면 이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까?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세상의 기억을 잊고 싶어 할까? 만약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면,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롭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26세의 청년 이반 오소킨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가진 채 새롭게 살고 싶어 한다. 그의 과거는 실패와 후회로 가득하니까.
학창시절, 그는 우연한 장난과 실수로 사감과 교감에게 낙인찍히면서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심장마비로 어머니를 잃은 후, 숙부의 강압으로 대학교 대신 군사학교를 다니게 되고, 군사 학교마저 퇴학을 당하게 된다. 숙모의 유산을 받았지만 룰렛으로 유산을 한방에 날리기도 하고, 친구의 여동생인 지나이다를 좋아하지만 친구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되는 거라곤 없는 인생이기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다 마법사를 찾게 된다.
오소킨은 마법사에게 12년 전 아직 학생이었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청한다. 사소한 모든 기억, 경험들, 지식까지도 기억하면서 12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법사는 오소킨이 원하는 대로 보내줄 수가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다른 결과를 얻진 못할 거라고 장담한다.
당연히 나는 몰랐어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일이 다가올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명확히 안다면, 누가 그런 일들을 저지르겠어요? (31쪽)
오소킨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있기에, 설마 또 그런 실수를 저지르겠느냐며 확신에 차 있다.
그때는 언제나 알고 있었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알 수 없는 원인들의 결과와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를 수가 있지만, 자신이 하는 행동들이 초래할 수 있는 모든 결과는 항상 아는 법이야. (31~32쪽)
그때는 미처 몰랐다는 오소킨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마법사의 이야기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마법사는 오소킨의 소원대로 모든 기억을 지닌 채 12년 전으로 되돌려 보낸다.
다시 14살 소년이 된 오소킨은 모든 기억을 가지며 다시 학창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첫날부터 오소킨은 기숙사에서 베개를 던지다가 독일인 기숙사 사감에게 걸린다. 벌을 받는 중에 친구의 코뼈를 다치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결국 교감에게 훈계를 듣고, 외출 금지까지 내려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기억들이 가득하지만 생활은 예전과 똑같이 되풀이 된다. 낙제를 받게 되면서 공부도 포기하게 된다.
모든 일이 하나씩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하려고 온 것은 아닌데. 앞으로 닥칠 어머니의 심장마비도 걱정하고, 어머니의 장례식을 기억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슬플 뿐이다.
친구의 여동생 지나이다와의 사랑도 짝사랑에 머물게 되고 다시 홀로 지내다가 자살을 시도한 뒤에 마법사를 찾게 되는 패턴이 반복된다.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와 똑같은 완벽한 재생일 뿐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똑같아서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완전 재생이다.
기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시간여행은 무의미할까?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시간을 돌린다 해도, 세상이 바뀐다 해도 실패는 반복되거나 더 악화될 뿐이라는 마법사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과거의 기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인생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게 하려면, 가치 있는 배움을 얻으려면 자기희생을 거쳐야한다는 마법사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노력과 희생이 없는 삶에서 달라지거나 얻는 것은 없을 테니까.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면,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또 다른 족쇄이자 덫일 뿐이다.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말이다.
인간은 행동하기 전에 늘 추측과 예상을 한다. 원인과 결과도 생각한다. 이렇게 행동하면서 저렇게 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은연중에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 삶의 결과도 알고 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 지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저자인 페테르 우스펜스키는 모스크바 출신의 영적 교사다. 수학자와 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인생의 진리를 찾던 중에 영적 스승인 구르지예프를 만나면서 ‘나는 누구이며, 왜 이곳에 있는가?’를 아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