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우의 집/권여선/자음과모음]고통과 상실의 시절, 이런 시절도 있었네~

 

그들의 고통, 이를테면 어떤 커다란 반죽덩어리 같은 고통에서 부드러운 물풀 같은 손이 슬그머니 내 목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자기와 비슷하지만 자그만 어떤 것, 그러니까 자기의 새끼 비슷한 고통을 살그머니 끄집어낸다. 세상에, 도대체 언제 이런 게 내 속에 들어앉아 있었던가. (334)

 

뭐든 다 빼앗아가는 세상이야. 그래도 살다보면 살아져!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며 매 한가지야. 그러니 숙명처럼 받아들여!

이 책은 그렇게 외치던 시절, 사람이 어느 순간 토우가 되고 집이 순식간에 무덤이 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산꼭대기에 바위 세 덩어리가 우뚝 솟아 있는 삼악산. 삼악산 남쪽에는 삼악동이 있다. 삼악동은 개천을 복개해 산복도로를 만들면서 좁은 골목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형상이 마치 거대한 다족류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기에 삼악동보다 삼벌레고개로 더 유명하다.

 

삼벌레고개의 아랫동네에는 제집 사는 부유층이 살고, 윗동네는 제집 사는 이가 드물 정도로 전세나 월세를 사는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아랫동네 아이들은 불량 냉차 사먹는 것도 부모의 눈치를 볼 정도로 온갖 보호 아래 있지만, 윗동네 아이들은 모험과 범죄의 경계를 오락가락할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삼벌레고개 중턱에는 제집 사는 사람과 전세자 등 다양한 부류가 사는 소시민들의 공간이다. 이 곳에는 4통 통장인 박가의 구멍가게가 있고, 난쟁이 식모를 싼 값에 부리는 우물집 순분 네도 있다. 우물집에는 하꼬방 같은 방들이 있어 네 가구에 모두 열세 명이 세 들어 산다. 순분의 큰 아들인 금철은 매번 모험적이고 일탈을 즐기는 개구쟁이다. 둘째 아들인 은철은 매사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어느 날 우물집에 안덕규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된다. 새댁이라는 아내와 영, 원 자매와 함께 말이다.

일곱 살 동갑내기인 원과 은철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스파이놀이를 한다. 기껏해야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거나 어른들의 잡담을 엿듣는 정도지만 둘은 열심히 사소한 정보들을 캐고 다닌다. 스파이의 생명은 정보력이니까.

 

한편 장난기와 모험심이 많은 금철은 늘 일탈을 즐긴다. 그러다 넓이의 모험에 도전하게 된다. 넓이의 모험이란 개천을 건너뛰는 것이다. 금철은 개천의 폭이 다르기에 등급을 매겨 뛰다가 난이도를 높인다. 그리고 동생 은철이를 옆구리에 끼고 뛰다가 동생을 개천에 빠뜨리게 된다. 결국 큰 부상을 당한 은철은 목발 인생이 되고 만다.

 

한편 원의 아버지 덕규는 어느 날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끌려 간 뒤 고문당한 흔적을 가진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남편이 정보부에 끌려가서 결국 시체로 돌아온 것을 본 새댁은 점점 정신을 놓아버린다. 세들어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면서 순분도 집을 팔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린다.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 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332)

 

 

토우는 사람이나 동물, 물건 형상을 흙으로 만든 것이다. 주로 주술적인 기원이나 상징적인 장식으로 사용했으며 무덤에서 많이 발견되는 유물이다.

 

은행놀이와 구슬 꿰기 등을 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져버린 동네, 어른들의 뒷담화가 무성하던 계모임도 끝나버린 동네, 사우디집, 뚜벅이 할배, 괴상한 씨, 곰딴지학자, 통장님댁, 보험여자, 임보살, 난쟁이식모 등 인간 군상들이 점점 사라져버린 동네는 이미 무덤 같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고통과 상실의 상징으로 남은 토우의 집 이야기에 그저 묵직한 먹먹함이 있을 뿐이다.

 

반공 시대가 남긴 이야기에 가장의 죽음과 가족들의 고통이 유물처럼 남아 있다. 억울한 희생으로 산자가 토우가 되어버린 흔적들이 있다. 반공 사상이 철저할 당시에 억울하게 희생을 당한 가족들은 지금 그 아픔을 치유했을까. 사람이 토우가 되고, 집이 무덤이 된 동네가 지금은 활력을 찾았을까. 살다 보면 살아지는 걸까.

 

저자는 권여선이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지만 흡인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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