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샤오홍의 황금시대/추이칭/자음과모음]사랑과 문학으로 자유롭게 살자간 천재 여류작가, 샤오홍

 

평생을 마음가는대로 질주하며 과감하게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한 것처럼, 샤오홍은 작품도 그러했다. 루쉰의 도움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루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낭만적인 색채가 가득한 그녀의 인생이 루쉰과는 또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혼을 담아 글을 썼다. 고난으로 발버둥치는 여성의 생애를 글로 담아내고, 집단의 황폐해진 영혼을 낱낱이 해부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민족 전체의 정신세계를 구원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다. (331)

 

역동의 근현대사를 살다간 중국의 천재 여류작가 샤오홍. 영화 황금시대에서 탕웨이의 연기로 환생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봉건적인 굴레에 맞서 저항해온 신여성이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과 독립적인 삶을 갈구한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다. 일생동안 자유로운 사랑, 스스로 원하는 사랑을 갈망했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그 사랑의 결말은 씁쓸하기만 했던 여자다.

 

 

 

하지만 다행히 이십대 초반에 만난 문학적 스승인 루쉰의 영향으로 잠재된 문학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루쉰과의 만남은 그녀 일생에서 가장 통하는 만남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와 딸 같은 문인의 관계이지만 사상을 이야기하고 문학적 도움을 주던 스승이었으니까. 누구보다도 대화가 잘 통했기에 그녀의 문학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였으리라. 덕분에 그녀는 31세의 짧은 일생동안 무려 100여 편의 작품을 창작해냈다.

 

샤오홍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샤오홍은 1911년 헤이룽장 성 후란 현의 한 마을에서 지주집안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릴 적 이름은 장나이징이었다.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직 할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해서 자랐고, 할아버지로부터 시를 배웠다. 문학을 좋아했던 엄마의 이른 죽음 이후 그녀는 계모의 무관심 속에 성장했다. 그리고 유일한 사랑의 통로였던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갔다.

 

열세 살의 나이에 부모들 끼리 왕언지아와의 혼사를 결정했지만 그녀는 강압적인 결혼을 피하려고 가출을 시도한다. 사실은 집안과의 의절이었다.

 

우리는 평생 그렇게 남의 말만 들으면서 살 수 없어요. 항상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야 해요, 우리 세대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는 가능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세대를 이어 용감하게 일어나 그들에게 저항하기만 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58)

 

그녀는 스무 살이 안 된 나이였지만 스스로 선택한 사랑이기를 원했던 자유주의자였다. 부모들이 맺어주는 봉건적인 혼사를 마다하고, 술과 담배, 자유와 반항,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여자가 되어갔다. 이후 그녀가 스스로 찾은 첫 번째 사랑은 유부남인 루쩐쑨이었다. 하지만 루쩐쑨이 떠난 후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만난 두 번째 남자는 그토록 혼사를 거부했던 왕언지아였다.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결혼이 싫었고 관습에 순종하기 싫었던 샤오홍은 왕언지아의 진실한 모습에 끌려 동거를 시작한다.

 

결혼에서의 도피가 결국 결혼 상대자였던 왕언지아와의 동거라니. 때로는 신중한 고민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행동한 그녀는 자신이 운명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게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언지아는 임신한 그녀를 두고 떠나게 된다.

그 이후에 샤오홍은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밀린 여관비를 해결하고자 샤오홍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를 보고 찾아온 샤오쥔과의 만남은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샤오쥔은 그녀의 방에 나뒹구는 그림과 글, 그녀의 말투에서 초라한 여인의 반짝이는 영혼과 외모의 훌륭함, 말투의 사랑스러움에 끌리게 된다. 샤오쥔은 샤오홍과의 첫 만남에서 사랑에 빠진 것이다. 서로 성격은 달랐지만 방랑자적인 기질, 자유로운 가치관이 서로 통한 것일까. 샤오쥔을 만나면서 나이징의 어릴 적 이름을 버리고 샤오홍으로 살게 된다. 무엇보다도 신문사에 있었던 샤오쥔의 도움은 샤오홍의 천재적인 문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작가로서의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1933년에는 두 사람의 글을 묶은 합본집인 발섭을 출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남은 이별을 낳는 법인가. 끈끈한 문학 동지였던 두 사람은 사랑과 애증을 반복하게 되면서 결국 헤어지고 만다 6년의  동거기간동안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루쉰을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상하이로 옮겨가 루쉰을 만나면서 문학적 가르침을 받으며, 문인들과의 교류,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상하이에서의 루쉰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피는 계기가 된다.

 

당시에 루쉰의 도움을 받은 문학청년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루쉰과 그렇게 가까워지고 루쉰이 강력히 추천할 만한 작품을 쓴 사람은 오로지 샤오홍뿐이었다. (288)

 

애정결핍이 심한 샤오홍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늘 애정을 얻으려고 했다. 루쉰과의 만남은 샤오홍의 정신적 안정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지해줌으로써 문학 인생의 획을 긋게 된다. 사오홍은 이미 후란 강 이야기를 자비로 출판했다. 루쉰은 사비로 사오홍의 생사의 강을 출판해줄 정도로 샤오홍의 문학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샤오쥔과의 이별 후 샤오홍은 동향 후배인 두안무홍량과 사랑에 빠지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처음으로 법적인 부부가 된 것이다. 두안무홍량은 때로는 유약해보이고 때로는 자존심이 강한 그녀를 존중하고 인정해 줄줄 알았기에 그런 그에게 빨려든 것이다. 혈기 왕성하고 남성 우월적이었던 샤오쥔에 질렸던 샤오홍에게 두안무의 부드러움은 그녀에게 위안을 준 것이다. 사사건건 트집 잡았던 샤오쥔에 비해 두안무는 그녀의 재능과 문학성을 높이 사며 그녀를 두둔해주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이 트라우마였을까. 그녀는 두안무의 문학적 지지에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 또한 두안무가 문학계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쓰게 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배려와 존중으로 이어진 사랑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공습, 전쟁의 위협은 그녀의 안정적인 삶을 망가뜨린다. 충칭, 산시, 홍콩으로의 피난살이는 그녀의 폐병을 심화시키게 되고…….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그녀는 의사의 오진으로 수술이 잘못되어 결국 31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가 죽기 전에 44일을 함께 친구가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 준 마지막 남자는 동생의 친구인 뤄빈지였다. 뤄빈지는 문학을 꿈꾸는 청년이었기에 샤오홍이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뤄빈지의 지지와 위로는 그녀의 마지막 삶의 햇살이었다. 지나온 날들이 파란만장해서일까 많은 시련으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샤오홍에게 뤄빈지는 늘 예쁘다는 말로 설레는 말을 던져 줄 줄 아는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문학적인 존경을 담아 토론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 친구이자 제자였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병실을 지켜줌으로써 마지막 인생의 동반자로 남은 남자가 되었다.

 

 

샤오홍은 세심한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문인이었다. 사색을 즐기면서도 내면의 반항적 기질을 가진 저항주의자였다. 주관이 뚜렷한 자신의 안식처를 스스로 찾아다닌 방랑자였다. 아름다운 결말은 없었지만 늘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였다. 여성 해방의 희망을 안고 스스로 돌파구가 되고자 했던 페미니스트였다. 가부장적인 제도, 구시대의 폐쇄성과 수동성을 단호히 거부한 자유주의자였다.

 

할아버지의 무한대의 사랑, 남자들과의 애증적인 사랑이 그녀의 작품을 빚지 않았을까. 정에 굶주린 모습, 사랑에 굶주린 모습, 무엇보다 문학적 인정에 굶주린 모습에서 그녀의 허기를 보게 된다. 그녀의 삶을 보며 자유, 사랑, 문학적 열정, 뛰어난 재능, 인정 등 모든 것에 굶주린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지만 누구보다 슬픈 결말을 맞이한 그녀의 짧은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녀의 작품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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