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 탐 철학 소설 14
김경윤 지음 / 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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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가다/김경윤/]개그맨 같은 조선 선비의 흥미진진한 여행기...

 

 

한 편의 여행기를 맛깔나게 읽을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도 행운이다. 그것도 200여 년 전의 여행기를 말이다. 맛깔난 여행기의 주인공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너무나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부끄럽게도 전체적으로 읽기는 처음이다. 물론 오리지날이 아니고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줄이고 각색한 소설 형식이다. 읽을수록 개그콘서트를 보는 느낌이다. 깔깔대고 호호거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박지원이 우울증을 고치려 저잣거리에 나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니, 수다쟁이가 따로 없다.

   

 

 

 

박지원, 그는 누구인가.

 

허생전, 양반전, 열하일기로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실학자이자 북학파다. 조선 영·정조 때 선비다. 당시 지배권을 쥔 노론에 속했지만 과거시험에서 그림을 그려내거나 백지를 낼 정도로 벼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탑골 근처에서 백탑파와 함께 이야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그렇게 신분을 뛰어넘는 교류를 즐겼다고 한다.

 

 

 

열하일기는 양반들이 청나라를 배척하던 시기인 정조 4년에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와 청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문물과 발전상을 담은 여행기다.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생각과 소소한 일화들까지 담은 일기 같은 견문 기록이다.

 

 

1780(정조 4),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의 만수절(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떠나는 사신단에 낀다. 사신단 281명의 5개월이 넘는 사행 길에는 굶주림과 병, 추위와 죽음이 함께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하지만 박지원의 여행은 내내 여유와 농, 관찰과 깨달음, 친화력과 가르침이 넘친다.

 

-강산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자네는 강산이 먼저라고 생각하는가, 그림이 먼저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강산이 먼저겠지. 그렇다면 그림이 강산처럼 아름답다고 말해야지. 강사니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말해서는 안 되네. 비슷한 것은 어디까지나 비슷한 것일 뿐, 진짜는 아닐 테니까.(57)

 

옛날 충신 백이와 숙제가 머물렀다는 고죽사를 방문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던 어떤 이의 말에 웃으며 대꾸하는 장면이다. 그의 농에 길들었는지 마부까지 농을 칠 정도다.

 

나는 지금 만리장성 밖에 홀로 나갔다가 장성 벽돌에 글귀 하나 남기고 오는 길이다. (84)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박지원은 장부의 기개를 펼치며 명문 중의 명문을 남겼다고 한다. 거대한 만리장성 벽에 말이다.

 

몸이 아픈 마부를 위해 자신의 말에 태우고 담요로 둘둘 말아 끈으로 묶은 뒤 몸소 말을 끌고 가는 모습에서는 신분의 귀천을 떠난 인정을 느끼게 한다.

 

당시는 청의 국력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기에 열하의 위상도 북경만큼 컸던 시기다. 청은 그런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 위에서 문화를 꽃피우던 시기였다. 박지원도 그러한 청의 선진 문물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도시마다 시장이 번창하고 도로와 교량이 잘 정비되어 있는 모습, 수레와 선박 이용으로 교통이 원활한 풍경, 벽돌사용으로 건축의 견고함을 더한 지혜, 거름 똥마저 알뜰히 퇴비로 이용하는 모습 등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살기 좋은 조선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곳곳에 드러난다.

 

또한 청나라 각계각층의 인물들, 조선 사행단의 구성원들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했다. 자신의 비대한 몸집과 농담 좋아하고 겁 많은 성격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상인, 요술사, 시골훈장, 점쟁이, 승려, 창기, 하녀, 거지, 말몰이꾼, 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를 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등불놀이, 온갖 요술놀이, 조선의 청심환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청나라 사람들, 황제의 피서지가 오랑캐들이 드나드는 변방에 있는 이유, 배움에 대한 이야기, 낙타와 코끼리를 처음 본 소감까지 때론 코믹하게, 때론 깊이 있는 철학으로 담아냈다.

 

 

한양에서 출발해 압록강을 건너고, 요동을 지나 북경까지 가고, 건륭황제가 있는 열하까지의 여정, 다시 거슬러 한양까지 오는 과정들이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해학과 풍자, 중국 견문, 실학사상까지 깔려 있다.

    

참고로 열하(熱河)는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떨어진 하북성 난하의 지류이다. 온천이 많아 겨울에도 강물이 얼지 않는다고 한다. 청의 건륭황제는 이곳에 피서산장이라는 별궁을 거대하게 지었고 매년 휴가를 보내며 각 국의 사신들을 맞기도 했던 곳이다. 머나먼 변경까지 황제를 알현하러 몽고, 티베트, 위구르 등도 다녀갈 정도가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던 거대한 별궁이라고 한다.

 

 

박지원을 포함한 일행은 열하를 방문한 최초의 조선 외교 사절이었다. 박지원은 당시 조선에 알려지지 않았던 청나라의 학계, 문단, 최신 문물에 대한 정보를 열하일기를 통해 소개한 것이다.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가다>는 탐 출판사에서 나온 탐철학소설시리즈. 방대한 열하일기를 십대들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새롭게 쓴 소설이다. 그 당시 박지원은 44, 창대는 청소년이었기에 화자를 박지원이 아닌 마부 창대로 바꿔 각색한 소설이다.

 

 

박지원은 조선의 개그 하는 선비다. 열하일기는 흥미진진한 소설 같은 여행기다. 건륭황제 시절의 청의 문물이 훤하게 그려질 정도다. 개그맨 같은 조선 선비의 흥미진진한 여행기,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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