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
안재욱.현진권 엮음 / 백년동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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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21세기 자본바로읽기/백년동안]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무엇이 문제일까.

 

토마 피케티의 열풍이 거세다. 찬반양론의 뜨거운 논쟁은 멈출 줄 모른다. 이렇게 그의 책에 대한 분석과 비판한 책까지 나오다니. 덕분에 피게티의 생각을 많이 알게 되어 고마운 책이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대체 뭐기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선진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서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에 관한 결정적 설명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내재적 동학을 다룬 웅장한 연구또는 경제적 사고에 있어서 분수령이 될 하나의 책이라는 저널리스트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685(프랑스 책은 970)에 이르는 다소 전문적인 경제학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300년에 걸친 20여 개국의 역사적 데이터를 토대로 불평등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기존의 주류 경제학 저서가 지향하는 수학적 이론적 관찰이라는 한계를 넘어 역사적 데이터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실증 연구라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비판적 입장들은 어떤 것일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바로읽기 `

이 책은 철학자 1인과 경제학자 6인의 피케티 이론에 대한 한국적 시각에서 비판하고 재조명한 글이다. 7인의 저자들은 피케티가 연구한 대상 국가들과 한국은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한국에 적용할 때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구나 피케티가 말한 높은 세금으로 교정하는 정책은 빈곤 속의 평등일 뿐이지 발전이 아니라고 한다. 결국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경제 구조를 봐도 피케티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는데......

 

개인적으로 7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쉽게 다가오는 것이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신중섭 교수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철학적 비판이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21세기에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더 강화되었고, 앞으로도 더 심화되어 세습자본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유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서기 때문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역사는 항상 정치적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의 주장과 달리 자본주의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부에 대한 누진적 글로벌 과세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자본에 대한 정치적 통제 등이 있다. (22)

 

피케티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세습자본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누진적 재산세와 소득세, 상속세를 제안한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자본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 자본은 국경을 넘어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글로벌 세금이 필요하다. 세금을 국가 차원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부과하자는 것이다. 피케티는 당장 이러한 세금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21)

    

이에 대해 신중섭 교수는 인간 사회의 불평등이야말로 자본주의 이전에 형성된, 인류가 생긴 이래로 지속되어온 당연한 현상이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적 불평등은 신석기 혁명이후 농경사회의 산물이었기에 단순히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이미 너무 높고’,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너무 높다는 판단은 사실 판단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다. 가치 판단은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도 다르게 내려질 수 있다. 너무 높다는 기준은 애매하고, 어느 정도가 되어야 너무 높지 않은가에 대해 합의를 보기 어렵다. (28)

 

불평등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피케티의 예측에 대해서도 신중섭 교수는 그의 예측은 과학적 예측이 아니라 도발적인 추측이라고 한다.

 

세습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보자.

 

피케티는 낮은 경제 성장과 높은 자본수익률이 결합하여 불평등이 심화된 상태에서 자본 소유자가 그들의 소득을 계속 저축한다면 부는 늘어나고 늘어난 부는 그들 자식에게 상속된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생활수준은 그들이 가진 기술이나 노력이 아니라 그들이 받은 유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30)

 

신중섭 교수는 피케티가 말한 세습자본주의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으며 세습 자본주의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또한 재산 상속은 인류의 오랜 전통이기에 자본주의에서만 나타나는 특성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유재산이 존재한 사회에는 항상 재산 상속이 존재했고 신분 세습 역시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특히 재산 상속에 대해 신중섭 교수는 맨큐가 생각하는 상속의 유용성을 예로 들고 있다.

상속은 세대 간 이타주의이며 공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음 세대의 공리에 대한 고려다. 상속은 완만한 소비를 통해 시간과 재산을 아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상속은 중간으로의 회귀. 자손에 대한 직·간접의 공리적 효과다. 상속으로 저금된 돈은 재투자로 이어진다.

 

그는 도대체 어느 정도로 부와 소득이 분배되어야 불평등이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항변한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불평등 해소가 아니라 가난을 문제 삼을 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기에 구체적인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복지는 빈곤층에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복지 수혜자를 대부분의 유권자에 맞추어 보편적으로 시행할 것이 아니라, 수적으로 소수자인 빈곤층에 집중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는 정치적 계산일뿐이고, 선별적 복지는 도덕적 정당성을 지닌다. (38)

 

신중섭 교수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피케티가 주장하는 소득과 부에 대한 과도한 과세는 시민사회의 자기 책임이라는 건전한 도덕을 파괴하고 경제 성장의 뿌리를 훼손하고 경제적 자유를 감소시킨다. 재분배의 국가는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 오히려 경제적 자유와 성장을 증가시켜야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 과도한 과세보다 오히려 권력 남용, 절차적 불공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 부자에 대한 분노, 분배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지 말라. 결론적으로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을 문제 삼고 빈곤을 위해 노력해야 해결된다.

 

 

책에서는 이외에도 다른 학자들의 비판도 실려 있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배 아픔 정서를 부추기는 피케티 경제학,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가난으로 인도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신화와 열병의 21세기 자본,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의 21세기 자본의 오류와 한국의 소득분배’, 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자본 이론 없는 자본 분석은 현상을 오도할 뿐이다.’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경제평등의 열풍에 답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번영의 필요조건이다.’ 등이 있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 해법은 누구나 관심사다.

경제성장으로 빈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분배 문제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피케티의 책으로 불평등 문제에 다시 불을 지핀 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중은 늘 소득 불평등을 체감하고 해소되길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까.

 

피케티의 주장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도 일리가 있겠지만 지금의 불평등이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자본주의가 생기기 이전에도 분배의 불평등은 있었겠지만 그때는 대부분이 부와 분배에 대해 무지할 때였다.

 

자본주의의 내재적 특성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압도적으로 앞지르면서 극단적 불평등이 초래된 거라는 말, 이런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정치적 개입도 필요하다는 말, 마르크스 식의 혁명적 개입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를 둔다는 정치 개입, 부자세 같은 누진적 소득세와 재산세 부과, 글로벌 세금 등 약간의 논란은 있지만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상위 10%에게 부의 80~90 %가 주어진다는 현실은 너무 심하지 않나.

 

누진세로 인해 세금을 많이 내는 이익단체들을 위한 정부가 되고 있다지만 그것도 예전부터 있던 이야기지 않나. 평등주의 정책이 자유를 침해하고. 생산 의욕 등 경제적 편익을 손상시킨다는 말에 일부 공감하지만 지금의 빈부 격차에 대한 하위 90%의 체감 정도는 상상불가일 텐데......

 

경제학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몇 권의 경제 서적을 보거나 사회 현상을 봐도 지금의 분배 구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빈익빈 부익부 구조는 더욱 공고해 지는 듯 하고......

 

피케티가 말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경제적 불평등의 대안으로 제안한 글로벌 세금, 누진세와 상속세 등의 조세를 통한 재분배 등에 대한 이런 논의가 어쨌든 반갑다. 그런 점에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보다 더 귀중한 책이다.

 

원초적인 불평등이든 자본 분배로 인한 불평등이든 불평등의 문제가 더 많이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나. 해서 누구나 삶에 의욕을 가질 수 있는 세상,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런 논의가 반갑다.

 

삶이 힘들어 죽음을 선택하는 뉴스를 더는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카트>처럼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그런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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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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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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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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