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의 사생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4
최민경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마리의 사생활/최민경/은행나무] 사적인 공간에 삶의 자극을 준 마리를 추억하며...

 

누구에게나 사생활은 있다. 자신만의 공간도 필요하다. 만약 사적인 공간에 타인이 끼어든다면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오래전 알던, 기억조차도 없던 친구가 어느 날 불쑥 내 삶에 끼어든다면 몹시 불안할 것이다. 그래도 그런 끼어듦은 분명 자극이 될 것이다. 마리처럼.

 

 

마리가 하나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온 것은 하나 아버지의 죽음 직후였다. 평생 도박과 노름으로 무능하게 살다 오십도 안 된 나이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하나의 아빠. 그렇게 아빠를 보낸 하나 집의 빈 공간을 알아차린 듯 말희가 찾아온 것이다. 아빠의 부재가 슬플 것도 없는 담담한 생활이었지만 말희의 등장은 두 모녀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배낭여행 중에 잠시 들렀다는 그녀는 서서히 하나의 집 공간을 장악해 버린다. 마치 기다렸던 주인이 돌아온 것처럼. 어릴 적 인절미를 먹다 체했다느니, 자신의 베프였다느니, 하나가 백여 통의 편지를 보내 마음을 전한 친구였다느니 수다를 떨어대지만, 하나의 기억엔 그저 가물가물할 뿐이다.

 

말희가 언제부터 마리로 불렸는지도 기억에 없지만 마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무례와 염치 가득한 행동으로 불편을 준다. 늦은 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행동, 겨우 잠들면 문을 노크해서 깨우는 행동 등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특유의 활발함으로 하나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조금은 뻔뻔하지만 어디를 가든 네가 생각난다는 마리를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빵집 아저씨를 소개하고, 하나에게는 지지부진한 남자 친구 상준과의 관계를 위해 바른 소리를 해주는 마리가 아닌가. 더구나 자잘한 집안일도 하고 심심해하는 엄마의 말동무도 되고, 침체된 분위기를 업 시킬 줄 아는 마리인데.....

 

마리는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보살피는데 이골이 난 사람처럼 적절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해서 엄마의 사랑을 받았다. 엄마 말대로 마리는 곁에서 애정을 갖고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타인의 미세한 감정변화까지도 미리 눈치 챌 만큼 약빠른 데가 있었다. (64~64)

    

 

사랑하는 남자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는 마리의 사랑 고백. 그 남자로 인해 두 사람은 잠시 불편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하나가 아끼던 옷을 마리가 꺼내 입는 등 거리낌 없는 행동으로 둘은 거리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즈음 눈치 빠른 마리는 배낭을 메고 스스로 떠나 버린다. 처음처럼.

 

하나는 마리가 떠난 뒤에야 삶에 자극을 주고 떠난 친구임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엄마의 연애를 돕고, 상준과의 감정정리도 돕고. 애매모호한 것들을 모두 정리해준 마리였다.

 

어릴 적 인정받은 경험이 평생을 좌우하는 걸까. 십대 초반, 하나가 자신의 고민을 담아 말희에게 보낸 편지들은 무려 백여 통이었다. 하찮은 존재라고 느끼던 마리에게 하나의 편지는 마리에게 누구에겐가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했나 보다.

 

 

별난 마리지만 그녀의 고백엔 비주류의 설움이 담겨 있다. 어릴 적 아무리해도 존재감이 희미했던 아이의 가슴에 품은 상처도 보인다. 그런 마리에게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해주었으니 얼마나 잊히지 않는 친구였을까.

 

성년이 되어 불쑥 끼어든 마리의 등장엔 가슴 뛰게 하는 긴장감, 거침없는 행동으로 인한 불안감은 있지만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이 있다. 삶에는 사생활도 있고 사적인 공간도 필요하지만 불현 듯 끼어드는 친구를 위해 내어 줄 작은 공간도 있는 것 같다. 나의 공간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네 번째 작품이다. 노벨라시리즈는 착한 가격에 더욱 마음이 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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