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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구름 위에 오르다 ㅣ 탐 철학 소설 13
서정욱 지음 / 탐 / 2014년 8월
평점 :
[소크라테스 구름 위에 오르다/서정욱/탐]타임머신을 타고 소크라테스를 만나다~
조각가의 아들, 산파의 아들인 소크라테스는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 간 기원전 5세기의 인물이다. 2500여 년 전에 살던 그가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읽었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오늘 다시 만나고 있다. 이번엔 소설버전이다. ‘탐 철학소설시리즈’의 13번째 책이다. 철학자들을 소설 형식으로 만날 수 있기에 재미있고 쉬운 책이다. 탐 출판사의 철학소설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발칙한 형식, 센스 있는 형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번에도 그렇다.
이야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도시국가에 내린 승현, 유민, 가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변론이 열리는 법정을 구경하게 된다. 기원전 399년, 그 시절의 그리스의 아고라로 돌아간 것이다.
솔직히 아테네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논리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논리가 부족하여 설명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나에게 속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럼 왜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진실을 확실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82~83쪽)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을 들었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정치가, 시인, 시민들을 찾아서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나눌수록 자신보다 지혜로운 이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정치가나 학자들도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들에게 무지함을 일깨우게 된다. 정치가나 학자들은 소크라테스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자신들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그리스의 시민들은 그를 법정에 세우게 된다.
나는 지혜롭지는 못하지만 무지함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신탁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거리로 나갔습니다. 나는 아고라와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지혜와 무지를 모두 가지지 말고, 지혜롭지는 못하더라도 무지를 인정하고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91쪽)
예술가 아니토스, 비극 시인 밀레토스, 웅변가 리콘의 고발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이들이 소크라테스를 고발의 이유에는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과 아테네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자기만의 신인 다이몬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담은 희곡<구름>으로 발표해서 유명해진다. 문제는 이 작품 속 소크라테스는 친구 카이레폰과 함께 신선처럼 노닐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과 논리로 돈을 버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아테네 시민들은 이 허구의 희곡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나쁜 이론이나 가르치고 돈을 벌려는 인물로 본 것이다.
매일같이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무지를 일깨우다 고소를 당했던 소크라테스. 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가 믿는 다이몬은 양심의 소리 통제의 소리로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악령의 신이 아니라며 논리를 펼친다.
500인의 배심원과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논리를 펴는 모습에서 진리의 편에 선 자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무죄를 너무나 확신했기에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게 자신을 변론했던 소크라테스. 고소한 이들의 엉성한 논리와 소크라테스의 반박의 여지가 없는 논리가 선명하게 대비되는 대화들 속에서 논리를 생각하게 된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히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언제나 매력 있다. 차분하게 그들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논리를 펼치는 모습에 아테네 시민들도 반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지막 변론의 승자는 분명 소크라테스였을 테니까.
책에서는 아크로폴리스, 아고라, 500인의 배심원 선발 과정, 일당을 받던 배심원들은 주로 노인들이었다는 사실, 도편추방법, 델포이신전에 얽힌 이야기 등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들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어린 시절, 그리스의 7현인,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스파르타의 현인 킬론의 좌우명이었다는 이야기,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연극 장면 등 당시의 소크라테스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들도 있다.
부록으로 소크라테스 소개,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대하여,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소크라테스의 생애, 읽고 풀기 등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가난한 스승이었다. 죽으면서도 아들들에게 명예를 위한 일만 하고 부를 취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신념을 버리지 않은 스승이었고, 앎과 행동의 일치를 주장한 스승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까지 생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70세를 끝으로 생을 마감할 때, 플라톤의 나이는 28세였다. 플라톤이 8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소크라테스와 함께한 세월은 7~8년 정도였다.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던 스승의 죽음에 대한 판결에 플라톤은 얼마나 원통하고 속상했을까. 스승의 어이없는 죽음을 보며 플라톤은 <국가론>을 써서 이상국가론을 펼칠 정도였는데.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 기록이 없었다면 그의 행적은 바람의 흔적처럼 사라져 버렸겠지만 제자를 잘 둔 덕에 그는 지금도 생생하게 부활하고 있다. 소설처럼 타임머신이 개발되면 진짜 소크라테스를 만나러 가고 싶다. 슬픈 현장이지만 그의 변론도 듣고 싶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경계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 내가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 일까. 무한대의 수직선에서 내가 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새 발의 피도 되지 않는데...... 역시 소크라테스는 예나지금이나 무지를 일깨우는 데는 도사야, 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