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윤신영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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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윤신영/MiD]멸종에 대한 재미난 인문편지

 

가을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이다. 노랫말처럼 가을은 편지를 하는 계절이니까.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릴레이 편지를 쓴다면 어떨까.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편지를 남긴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남길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에 언젠가는 멸종하겠지만 막상 닥친다면 유서를 남기듯 편지를 쓰지 않을까.

    

 

 

 

 

 

 

 

 

 

 

이 책에는 생태계의 먹고 먹힘에 대해 다루다가 <주역>의 구절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호르몬 반응을 언급하다다 시를 인용하기도 하며 멸종을 이야기하다가 영화장면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7)

 

이 책은 생물학, 생태학 등의 내용을 담은 멸종에 대한 경고들이다. 문학과 철학을 담은 생존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 동물이 종이 다른 동물에게 보내는 안부편지 같은 인문서다. 13종의 생명들이 서로 연결되어 릴레이 식 문안 편지를 나눈다.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준책이다.

 

세상은 복잡계 물리학, 복잡계 경제학, SNS처럼 모두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구촌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 모든 생물들도 하나로 연결된 세상이다. 그러니 이렇게 릴레이 문안 편지를 나누다 보면 전 생태계가 연결될 것이다.

   

개체 수가 많은 인간, 최고의 포유류로 군림하는 인간이 같은 포유류인 물윗수염박쥐에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을까. 환경부가 정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물윗수염박쥐는 강원도 석회암 동굴의 구멍에 서식한다는 박쥐라고 한다.

   

당신이 떠난 텅 빈 동굴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아직 동굴에 머물고 있던 시절에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당신의 몸은 아직 냉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냉기는 곧 동굴의 냉기였습니다. 체열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포유류의 일원임에도, 겨울이면 몸의 온도를 낮춰 겨울잠을 자는 당신, (19)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한 편의 시였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라는 제목의 재미난 시지요. 사람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대상에 대해 막연히 편견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21)

 

인간이 박쥐에게 보낸 편지엔 오마주의 성격이 강하다. 박쥐는 영화나 만화에서 나쁜 악당으로 나오거나 사람의 눈을 파먹는다거나 피를 빨아 먹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는 인간들의 편견이기에 인간의 입장에서 애써 나서주고 싶을 정도라고 표현한다. 지구의 중력을 거부하며 거꾸로 매달리는 박쥐의 꼿꼿한 자존심, 생존을 위해 온도가 안정적인 곳인 동굴을 찾는 박쥐의 현명함, 체온을 낮춰 겨울잠을 자기에 최적인 장소로 동굴을 고른 탁월한 안목 등 구구절절이 똑똑한 박쥐에 대한 찬사의 나열이다.

 

동굴의 안쪽이 그 지역의 연평균 기온과 맞먹다니, 처음 듣는 말이다.

김선숙 박사는 붉은 박쥐(황금박쥐)220일을 잔다는 사실과 박쥐가 겨울잠을 자는 온도와 시기, 그리고 분포 사이에는 절묘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박쥐가 동면에 이르는 온도는 약 13°C이다. 그렇게 그는 붉은 박쥐의 동면 시기와 외부의 최저기온 변화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러니 박쥐의 분포와 동면 온도, 시기를 알면 기후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편지엔 박쥐의 초음파 발사 능력, 비행능력, 몸집이 작은 종일수록 초음파의 주파수가 높다는 사실, 동굴 같은 곳에 있을 때가 숲 같은 곳에 있을 때보다 주파수가 높다는 사실 등이 나와 있다.

덤으로 판코박쥐, 관박쥐, 검은집박쥐, 황금박쥐(붉은 박쥐), 토끼박쥐의 흰코증후군 등도 세세하게 편지에 적었다.

 

편지 속에는 박쥐의 습성, 종류, 특징들이 구구절절하게 담겨 있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개구리가 하늘에서 비처럼 내린 이야기, 20141월 호주에서 10만 마리 박쥐가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사연, 2012년 미국에서는 풍력발전소 때문에 60만 마리의 박쥐가 죽었다고 한다.

 

풍력기 앞에서의 바람의 압력 때문에 박쥐들의 장기가 파열되고 귀나 폐에 심한 상처를 받다니. 풍력발전소가 그 지역의 동물들에게는 치명타를 주다니. 조력발전소가 물범들에게 치명적이라니. 인간을 위한 친환경적인 발전소가 동물에겐 재앙이었다니, 에너지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정리해 보자.

박쥐는 전 세계 포유류 종의 20%를 차지하는 포유류다. 한국에는 23종이 살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1200여 종이 살고 있다. 팔과 다리, 꼬리가 연결된 날개막 구조를 이용해 새처럼 난다. 초음파를 이용해 어둔 곳에서도 먹이를 찾아내고 날 수 있다.

 

인간이 박쥐에게 보낸 편지에는 조해진의 <새의 종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김경주 시인의 시도 소개되어 있다.

 

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는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는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이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

 

-김경주 새 떼를 쓸다전문(44~45)

 

모든 생물은 기온의 차, 환경의 차에 적응하기도 하지만 때론 적응 못하기도 한다. 적자생존, 자연도태설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때론 약자가 살기도 한다.

저자는 박쥐를 보호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면서 생태계의 약자에서 사회적 약자로 옮겨가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책은 인문편지다.

인간이 박쥐에게, 박쥐가 꿀벌에게, 꿀벌이 호랑이에게, 돼지가 고래에게, 고래가 비둘기에게, 비둘기가 십자매에게, 십자매가 공룡에게, 버펄로가 사자에, 사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 네안데르탈인이 인간에게 보내는 안부편지 형식의 인문편지다.

형식도 새롭고, 내용도 참신하다. 과학과 문화가 만나고, 생태계와 철학이 만나니까. 멸종에 대한 인문서 같다. 지구를 스쳐갔던 지난 생물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들 사이에 오간 편지가 있다면 이럴까. 발칙하고 참신한 발상에다 내용은 진국이기에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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