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와 드골 - 위대한 우정의 역사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 지음, 변광배.김웅권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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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와 드골/연암서가]프랑스를 위해 태어나 프랑스와 결혼한 사내들의 우정~

 

여태 샤를 드골이 프랑스 대통령이었고 앙드레 말로가 <인간의 조건>을 쓴 작가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현대 프랑스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위인이 드골 전 대통령임을 처음 알았다. 프랑스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인이 말로임도 처음 알았다. 더구나 드골과 말로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고 한다. 정치가와 문학가의 우정이기에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읽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국을 위대한 프랑스로 만들기 위한 행동하는 작가와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정치가의 만남임을 알게 되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두 사람의 절절한 프랑스 사랑을 알게 되면서 뜨거운 전율이 일었다. 이보다 더 뜨거운 만남이 또 있을까.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45718일 수요일 아침 11시였다.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드골이었기에 이미 작가로서 유명했던 말로에 대한 특별한 존경심이 있지 않았을까. 말보다 실천을 강조했던 말로였기에 드골의 행동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날 두 사람은 프랑스를 위해 태어나 프랑스와 결혼한 사내들이라는 공통의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당시 그러니까 20세기 중반쯤, 1945~1968년 사이의 프랑스는 온건 좌파에 속하는 지식인들의 시대였다. 대표적인 온건 좌파에 속하는 지식인 사르트르, 카뮈, 보부아르, 메를로퐁티 등이었다. 당시 참여 지식인이었던 사르트르 등 온건 좌파에 속하는 지식인들과 대척점에 있던 지배세력엔 드골과 말로가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한 겁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18)

 

1890년에 태어난 드골과 1901년에 태어난 말로는 11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다. 타고난 집안 배경, 성장과정도 달랐다. 드골은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지만 말로는 동양어학교를 나와 아시아에 관심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친구 같은 협력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엔 프랑스를 위한 정의로운 목적에서 일치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사회 정의를 위해 파시즘에 맞서 싸웠고, 스페인 내전 때 공화파의 의용군으로 참가하기도 하고, 중국 국민당에 참가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제1회 전 소련작가대회에 출석할 정도로 공산주의자였으나 제2차 대전 중 독소협정을 기회로 공산주의와 결별하게 된다. 반 나치 저항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던 말로는 행동하는 문인이었다.

 

한편 드골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면서 군인이 되었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기도 한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런던으로 망명해서 대독항전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때는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타고난 정치가답게 정치에 입문하면서 위대한 프랑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5공화국 초대대통령이기도 한 그는 프랑스의 경제 강화에 힘썼고 12개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에 기여했다. 미국 주도의 NATO를 탈퇴하면서 프랑스를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평생을 위대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민족주의의 부흥을 위해 주체적인 활동을 한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다.

 

1959년 드골 대통령은 말로를 문화부 장관에 임명했다.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강대국 프랑스를 만들겠다는 소명 의식으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위계질서에 의한 지배종속관계가 아니라 상호주체성에 따른 보완과 협력관계였다. 말로는 드골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이 되어 프랑스의 교육과 문화, 예술 등의 기초를 다지는 데 일조했다.

 

앙드레 말로 안에서 드골 장군은 자신이 같은 높이에서 호흡했던 유일한 인물을 발견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전의 천품, 역사에 대한 직관, 위대함의 진정한 의미를 지닌 그런 인물 말이다. 앙드레 말로는 한 사람의 증인 이상이었다. (351)

 

나의 오른쪽에는 항상 앙드레 말로가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귀한 운명을 지녔던 인물들에 대해 열정적인 뛰어난 이 친구가 내 옆에 있을 때면 나는 세속의 현실적인 것으로 뒤덮여 있는 인상을 받는다. 이 비할 데 없는 증인이 나에 대해 품는 관념은 내가 확고하게 되는 데 기여한다. 논쟁에서 주제가 심각할 때 그의 번득이는 판단력이 나로 하여금 불확실한 것들을 일소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350~351)

 

죽는 날까지 서로 프랑스의 운명을 걱정하던 두 사람. 1970119일 드골이 운명하면서 두 사람의 동행은 끝을 맺게 된다. 이후 말로는 드골 연구소를 맡게 된다.

   

책의 말미에는 드골의 소박하면서도 평소의 신념이 담긴 유언이 나와 있다. 드골은 대통령 퇴임 후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을 거부했고 서거 후에 가족들에게 제공되는 연금도 무의탁노인이나 고아원의 어린이들을 위한 신탁기금으로 만들었다. 드골 사후에 생가 관리가 어렵게 되자 어떤 재벌이 구입을 해서 정부에 헌납했다고 한다. 지금 드골의 생가는 드골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과 사회정의를 위해 우정으로 뭉치고 힘을 모아 실천했던 드골과 말로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드골과 말로, 두 사람은 프랑스 국민들이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할만한 위인이라는 말에 저절로 공감하게 된다.

 

공산주의자이자 레지스탕스였던 문인 말로와 전쟁으로 황폐화된 프랑스를 위대하게 재건하고자 했던 군인이자 정치인 드골의 25년간의 우정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운명적인 만남이란 이런 것임을. 우정이란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채워주고 완성해가는 것임을. 무인과 문인의 최적의 조화가 이런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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