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눈꽃/홍수연/파란]첫사랑의 떨림, 먼 길을 돌아온 사랑의 애절함, 그래서 눈꽃 같은 사랑~

 

가을엔 슬픈 로맨스 소설을 읽는 일도 제법 어울린다. 그래서 읽고 싶었다. 파란 출판사의 홍수연 작가의 작품을. 소문으로만 들었던 작가이기에 그 실상을 보고 싶었다고 할까.

 

<눈꽃>은 첫사랑의 떨림, 먼 길을 돌아온 사랑의 애절함, 장애물이 너무나 많아 이루어지기엔 어려운 안타까움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다. 이 소설은 2008년 출간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나 보다. 2014년에 재출간된 걸 보면 말이다. 재출간할 만하다. 가슴 먹먹해지는 그런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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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는 걸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가끔 그게 되지 않을 때가 있어. 어떤 날은 정신을 차려 보면 이렇게 네 옆에 와 있어. (11)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담긴 독백이 아닐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먼 거리에서 지켜만 본 사랑이었다. 상처만 입힐게 뻔해 무정하게 대했던 사랑이었다. 하지만 첫사랑의 설렘을 혼자서 삭히기에는 애절함이 더 강했나보다. 멀리할수록 그리움은 열병이 되어 피어나고, 외면할수록 몸은 그녀 곁을 맴돌고 있었으니.

 

제이어드는 열 살 정도의 단발머리 동양인 소녀인 서영을 처음 본 이후로 내내 그녀를 가슴에 품게 된다. 서영이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사랑으로 인해 다치는 건 분명 서영일 테니까. 그리고 스키장에서 서영을 닮은 21살의 유명 모델인 민영을 보면서 서영의 대체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제이어드는 민영을 사랑하진 않지만 서영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괜찮다는 생각에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민영은 멋진 스키 선수로 알던 제이어드가 미국 최고의 금융재벌 에이드리언 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 인생의 최대의 기회를 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제이어드는 민영과의 관계만으로는 서영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영과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위로를 삼게 된다. 폭설이 내리던 날, 집으로 가는 서영을 태워다 주거나 서영이 아르바이트 하는 레스토랑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거나 민영의 남자 친구로 민영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 편 서영 역시 18살에 언니와 함께 집으로 온 제이어드를 보면서 제이어드를 가슴에 품게 된다. 언니의 남자이기에 그녀가 해서는 안 될 사랑이었다. 늘 멀리 있어야 했고, 늘 멀리 있다고 생각한 사랑이었다. 집 안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인데다 한때는 언니의 남자였으니까. 서영에게도 제이어드는 그저 혼자서 보는 걸로 만족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서영이 미국 최고의 금융재벌 에이드리언 가의 계열사에 입사하면서 이들의 만남은 이어지게 된다. 더구나 서영이 결혼 1주일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은 자석 같은 끌림으로 체온과 심장박동을 나눈 사이가 된다. 이제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관계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서영에겐 제이어드가 18살부터 꿈꿔온 사랑이었고, 제이어드에겐 서영이 엄격한 가문에서의 유일한 탈출구였고 그를 꿈꾸게 한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어울릴 수 없었던 사랑이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속 시원히 마음을 터놓지 못한다. 타고난 환경 탓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해진 제이어드는 가문에 대한 책임감과 본인의 의지 사이에서 갈등 하게 된다.

뻔하고 지루하고 답답한 제이어드의 일생에 한 줄기 빛 같은 여자 서영과의 데이트였지만 만일의 상처를 대비하다보니 마냥 알콩달콩 할 수가 없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랄까. 저녁을 함께 하거나 미술관 데이트를 하지만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열어 보일 수는 없다.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랑이고 그래야 상처를 덜 받을 것 같은 사랑이기에.

 

더구나 언젠가 이 의자는 네 것이 될 것이다.”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은 제이어드의 어깨를 짓눌러서 일까. 한국계 여인을 좋아했다가 그 여인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제이어드의 아버지처럼 그에게도 그런 핏줄이 흘러서일까. 아버지의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머니가 그의 여자에게도 상처를 줄 것이 예상되어서 일까. 아들인 제이어드 역시 한국계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안 사라는 예상대로 격렬한 반대를 하게 된다.

 

 

무뚝뚝한 제이어드가 밤마다 꾸는 꿈의 여자, 밤마다 자신의 전부를 빼앗아가는 여자, 이제야 그녀를 품을 수 있게 되었지만 행복은 잠깐일 뿐이었다.

제이어드의 아이를 가진 서영은 남몰래 한국으로 가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은 긴 쪽지를 남기게 된다.

 

 

커다란 차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키가 큰, 검은 머리 아저씨.

 

그때, 어린 저를 바라봐 주던 그 눈빛이

그날부터 잊히지가 않았어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거,

그 어린 나이에도 알았는데

그 눈빛을 감히 떨쳐 놓지를 못했습니다.

 

그 뒤로 당신이 제 마음속에서 떠난 적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 뒤로 제게 있는 모든 길은

모두 당신과 함께 있기 위한 발자국이었습니다. (329)

 

아기를 위해 멀리 한국에 정착한 서영은 아이를 낳고 싱글맘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제이어드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에 의욕을 잃고 헤매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스키장에서의 사고로 제이어드는 의식불명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제야 아들을 잃는다는 생각에 빠진 사라 에드워드는 뉘우치게 된다. 의식불명의 아들을 살려낸 서영과 아기의 존재를 아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서영과 제이어드는......

 

눈꽃.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다. 차디차고 날카로운 얼음송곳 같은 첫사랑 이야기다. 처음엔 차갑고 아프지만 온기가 닿으면 이내 녹아 버리는 눈꽃 같은 첫사랑 이야기다.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원망을 하고 자책을 하던 사랑, 터놓기조차 어려웠던 사랑 이야기다.

죽음의 끝자락에서야 털어놓는 네가 보고 싶었어. 내게 필요한 건 너였어.”라는 두 사람의 고백 앞에서 더욱 답답해서 애절하게 느껴지는 사랑이야기다.

마음이 통한다 해도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사랑에는 확인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그래야 오해와 편견이 쌓이거나 덧입혀지지 않는 법인데.

알면서도 행동은 정말 어려운 첫사랑. 강렬한 흔적만큼이나 잊히기 어려운 첫사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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