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재필
고승철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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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재필/고승철/나남]다재다능한 계몽가, 최초의 양의, 서재필 박사

 

 

역사 속에서 만났던 위인, 서재필. 조선의 개화기에 신문을 만들고 독립 운동을 지원하고 의사가 되어 국민 계몽에 힘쓴 위인 정도로만 알았던 서재필 박사. 이 정도만 해도 정말 대단한 선구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소설 서재필>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빙산의 일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에 대해 몰랐던 게 무지 많았음을, 그의 나라 사랑이 절절했음을,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영특하고 총명했음을, 그런 지능을 다방면에서 익혀 조선의 계몽에 기여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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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영특했던 서재필은 7촌 당숙 서광하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양어머니를 통해 양외숙부인 서울의 김성근 밑에서 성장했다. 이웃에 살던 김옥균, 박영효, 이완용 등 개화파 인사들과 일찍부터 친하게 지냈다. 10살 때는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김옥균과 서광범, 박영효, 홍영식 등과 개화사상을 배우기도 했다. 18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다.

문과 무예를 겸비하고 싶었던 서재필은 무사 백동수가 집필한 <무예도보통지>를 읽고 따라하거나 택견과 말 타기, 활쏘기, 권법 등을 익혔다.

 

이후 조선의 근대적 군사력을 위해 개화파 김옥균의 배려로 일본 토야마 군사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근대 군사교육을 받았다.

 

무인, 연설가, 독립투사, 체육인, 기업인, 의학자, 언론인,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던 서재필이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주역인 줄은 처음 알았다. 갑신정변은 김옥균과 의기투합해 거사를 도모했지만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역적으로 몰리자 일본으로 망명했고, 일본이 망명자를 반기지 않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학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되었다. 미국 철도우편사업의 창설자의 딸과 결혼을 해서 미 시민권자가 되었다. 이후 자신에 대한 역적누명을 벗게 되자 한국으로 돌아왔고, 1896년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과 독립협회를 주도하게 된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외국인 신분이었기에 앞장서서 나서기보다 뒤에서 후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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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상해임시정부의 외교고문, 구미위원회 위원장, 미국 육군 군의관, 만민공동회, 미국 육군 군의 총감부, 도서관 번역원, 병조참판, 부정자 등의 역할을 맡아 했다. 자전거를 처음 갖고 와 탔고 야구도 최초로 보급했다.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갑신정변의 주역에서 역적으로 몰리는 과정, 미국 망명의 원인들, 타국에서 성공하기까지의 열정, 한국의 계몽을 위해 바쳤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펼치지 않았을까 싶다. 서재필 박사의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된 책이다. 그 시절의 위인들의 이야기, 조선의 정치, 세계사까지 함께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올해가 서재필 탄생 150주년이라고 한다. 개화기에 태어나 백성들의 계몽을 위해 열렬히 살다간 천재 서재필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선각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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