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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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김이설/은행나무]꽃 같은 흉터를 가진 선화,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

 

산다는 건 켜켜이 상처를 남기고 흉터를 남기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나이테처럼 말이다. 누구나 아기 때의 말간 피부가 살아가면서 어느 샌가 긁히고 찢기고 터진다. 그리고 피부 여기저기 얕거나 깊은 무늬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태어나면서 흉터를 가진 이는 전생의 상처에 대한 흔적일까. 태어나면서 얼굴에 흔적을 갖고 태어났다면 또다시 마음의 상처로 전이될 텐데…….

 

 

 

 

 

 

언니도 잊어. 잊어버려. 이십오 년 전의 일이야. 그걸 아직도 부여잡고 살면 어떡하니? 저절로 아물었으면 그냥 둬. 그걸 왜 또 후벼파? 그래봤자 흉터만 더 커지지. (139)

 

선화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오른쪽 얼굴에 검고 붉은 얼룩을 가지고 태어났다. 화염상모반을 가진 선화의 오른쪽 얼굴은 입술도, 눈도, 피부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언니의 왼쪽 얼굴에는 가늘고 긴 흉터가 있다. 이는 선화가 화침으로 상처를 낸 것이다.

 

누구든 상처가 있다.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굳고 딱지가 내려앉고, 딱지가 떨어진 자리에 솟은 새살이 바로 상처를 반추하는 흉터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흉터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18)

 

선화는 얼굴에 흉터를 갖고 태어났지만 누구도 미안해하거나 고쳐주겠다는 가족이 없자 섭섭해 한다. 어느 날 가족 앞에서는 선량한 척하고 자신 앞에서는 얄미운 행동을 하는 언니가 사고를 친다. 선화의 가방에 책과 공책, 필통을 없애고 꽃꽂이에 쓰이는 화침 4개를 넣어 놓은 것이다. 그런 언니가 얄미운 선화는 자신의 가방에서 화침을 꺼내 언니의 얼굴을 문지르며 복수를 하게 된다. 그렇게 언니 왼쪽 얼굴에 후천적인 상처가 생긴 것이다.

 

선천적으로 흉터가 있는 선화는 타인의 흉터를 빨리 알아내고 빤히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흉터민감성이다.

어느 날 꽃집에 목덜미에 흉터가 있는 남자인 영흠이 나타나 꽃 배달 주문을 하고 간다. 이후 영흠은 일정한 시간에 꽃을 사러오면서 선화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리고 수국 꽃다발을 선화에게 선물하고 가 버린다. 수국의 꽃말이 진심, 변덕, 처녀의 꿈, 바람둥이다. 영흠이 선화에게 서로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는 수국을 준 이유가 진심일까, 아니면 변덕일까.

 

자신에게 꽃다발을 준 남자는 영흠이 처음이었다. 그런 영흠에게 살짝 기울어지고 있는 찰나에 영흠의 꽃다발 주문은 그치게 된다. 대신 그의 아내가 나타나 영흠이 뭔가 부족한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라는데. 그리고 그녀는 죽음을 앞 둔 선화 아버지 병실에 꽃을 주고 간다. 그 꽃은 청초하고 투명한 이미지를 끌어내 창백해 보이는 것이기에 조문을 위한 꽃이었다. 아버지가 비록 죽어가는 목숨이지만 미리 조문을 표하다니. 어쩜 세상은 상처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하루하루 썩어가는 꽃을 보는 일은 하루하루 피어나는 꽃을 보는 일과 같은 의미였다.(108)

 

선화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긴 유산으로 천형 같은 자신의 얼굴을 치료하고자 알아본다. 아버지의 유산은 자신에 얼굴에 대한 죄책감을 대체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얼굴의 모반제거를 위해 성형의사, 안과 의사, 피부과 의사까지 총동원해야하는 상황이다. 얼굴의 모반이 완치도 되지 않으면서 견적은 천만 원을 넘는다니. 그래서 선화는 남은 인생을 그대로 살아가리라고 다짐한다. 이제까지 힘들게 살아왔기에 이미 남들의 시선에 대한 내성이 생긴 거니까. 워낙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왔기에 앞으로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거니까.

   

이 책은 꽃집을 하는 선화의 흉터 이야기다. 얼굴에 꽃과 같은 붉은 얼룩을 가진 선화의 이야기에는 꽃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꽃다발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동그랗게 보이도록 해야 해요.

-꽃은 온도에 민감해요. 되도록 빨리 잡아야 꽃의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어요.

-나는 다육식물이 좋았다. 선인장처럼 가시의 위협이 없으면서도 관심두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제 생을 연명해가는 기특하고 똑똑한 것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말이다. 육체적인 상처든 정신적인 상처든 말이다. 그런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저 봄을 기다리듯 시간을 인내하는 것이리라. 상처에 대한 내성이 생길 때까지 말이다.

 

얼굴에 꽃 같은 흉터를 태생적으로 가진 선화의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다.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의 결대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봄이 더디게 오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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