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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황순종 지음 / 만권당 / 2014년 9월
평점 :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황순종/만권당]이병도와 그 제자들의 식민사관, 아직도 살아있다니!!
식민사관.
여고시절 역사를 배우면서 식민사관에 대한 깊은 의미를 몰랐다. 물론 핑계지만 그 당시엔 암기 위주의 역사공부였고 시험 성적만 좋으면 되었으니까.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 들은 한국사에서도 식민사관을 접했지만 그리 깊게 파고들진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잘못된 역사가 바로 잡힐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만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을 며칠 째 읽다가 덮었다가를 여러 번하고 있다. 기가 막히고 속이 상해서다.
저자인 황순종은 경제학을 공부했고 행정고등고시를 통해 과학기술부에서 28년 간 근무한 관료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대학에서도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닌데 식민사관에 대한 고발 형식의 책을 썼을까.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면 아무리 진실이라도 인정하지 않는 학문권력이 지배하는 한국이 아닌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남은 평생을 식민사관을 바로잡는 일에 바치겠다고 하는 걸까. 아직도 한국의 역사학계의 주류는 ‘식민사관’에 젖어있기에 주류 사학계에 뼈아픈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저자는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식민 사관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식민 사관의 뿌리는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야욕에서 출발했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 유신 단행 후 정한론이 대세였다. 일본의 내부적인 문제를 밖으로 표출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한론이 필요했다. 그리고 1875년 영국에서 수입한 근대식 군함인 운요호를 이끌고 조선에 온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면서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게 된다. 최초의 불평등조약이라는 강화도조약에는 일본에 대한 치외법권과 관세자주권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서 중국까지 노리겠다는 야욕의 시작이었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시작은 1880년대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대대적으로 조선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1887년 도쿄제국대학에 사학과를 설치하고 폰 랑케의 제자였던 루트비히 리스를 주임교수로 초빙했다. 유대계 독일인이었던 리스는 세계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리스의 제자 사카구시 다카치는 폴란드 멸망 이유와 독일 지배 과정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 결과를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이용하게 된다.
그렇게 일본은 ‘근대사학’이라며 서구학계의 실증적인 방법론을 제국주의 침략 정당화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툭히 일본 사학자들은 한국고대사 연구에 집중했다. 이는 침략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였다.
하야시 다이스케의 <조선사>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찬에 논리와 틀을 제공하는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단군부정론, 임나일본부설, 남선경영설 등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날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4세기에 일본이 가야와 신라를 정벌했다는 내용이 있고 이에 배치되는 <삼국사기>를 부정하고 있다.
일본은 만주·몽골·중국·서역 까지 동양사로 관심을 돌리면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를 역사 왜곡에 끌어들이게 된다. 역사 침략의 중요성을 깨달은 만철은 ‘만선(만주와 조선) 지리역사조사실’을 설치하고 학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15년 만선(만주와 조선) 지리역사조사실은 폐쇄되었지만, 그 당시 쓰다 소키치가 쓴 <조선역사지리>, <만주역사지리> 등은 일본과 한국 식민사학계의 주류이론으로 활용된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한 일본은 일본과 조선이 같은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까지 내놓는다. 즉, 한국인의 조상은 일본인이었고, 일본은 고대부터 한국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를 황국사관에 맞게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침략논리로 발전시킨 구로이타 가쓰미는 한국의 사료들을 강탈하거나 단군 관련 사료를 없애게 된다.
황국사관이란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에 기초해서 만든 역사상으로, 일본 민족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이라는 것이다. (19쪽)
하지만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던 고려대명예교수인 최재석은 일본이 정통으로 보는 ‘야마토 왜’는 서기 5세기 무렵, 백제의 대규모 이주 집단에서 시작되었다고 반박한다.
쓰다 소키치는 한때 <일본서기>를 비롯한 고전들을 실제 실증적 방법으로 비판해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본질은 황국사관론자이자 식민사관론자였다. 다만 식민사관 논리를 전개하면서 <일본서기>를 비롯한 고전들도 무조건 숭배하지 않고 일부 비판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그를 실증적 역사학자로 오인했던 것이다. (23쪽)
쓰다 소이치는 진구황후의 신라 정벌 및 임나일본부 설치가 4세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주창했다. 신라와 백제가 <삼국사기>에 기재된 대로 강력한 고대 국가라면 임나일본부가 설 자리가 없으므로 임나일본부를 살리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몰았다니!
조선에서는 일본 요시다 도고의 <일한고사단>에 자극받은 이병도가 식민사관의 대부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병도는 일본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제사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만들고 역사왜곡을 전담했다는데 있다.
조선사편수회의 고문에 이완용·박영효·권중현·이윤용, 구로이타 가쓰미 등이 있었고, 실무진에 이진호유맹어윤적이능화이병소윤영구김동준홍희현양섭, 이마니시 류·스에마쓰 야스카즈·이나바 이와키치 등이 있었다. 나중에 일본인 학자의 수하에 이병도, 신석호 같은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들어갔다.
더구나 조선사편수회의 수사관이었던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해방 후에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들을 지도했고 1949년 <임나흥망사>를 씀으로써 임나일본부를 더욱 체계화하게 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의 주류 사학자들이 아직도 이를 따른다는 것이다.
해방 후, 이병도는 서울대를 장악했고, 신석호는 고려대와 성균관대, 국사관을 장악하면서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이들의 밑에서 배운 많은 사학자들이 제자를 키워서 한국 사학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니. 헐~
박은식은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을 통해 일제의 역사관을 통렬히 비판했고, 신채호는 조선인이 조선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류 사학자들은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2007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은 10억 원의 거금을 주고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한국 상고사 6권을 영문으로 간행하게 했는데, 모두 식민사관의 계보를 잇는 학자들이 선발되었다고 한다.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요동의 한사군이나 고조선을 평안남도로 바뀌고, <한단고기>는 위서 라고 하고, 가야 신라의 땅이 임나일본부로 바꾼 일제 식민사학자들. 그들을 추종하고 그들을 따르는 한국의 주류 사학자들. 부끄럽지 않을까.
한국의 주류 사학계가 겉으로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타율사관이다 반도사관이다’라고 비판하는 척 하면서 식민사관의 결정체인 <조선사>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비판은커녕 은근히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니. 너무나 부끄러운 현실이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 한국인에게 시혜를 베푼 것이라니, 정신 나간 소리 아닌가.
이기백의 <한국사신론>가 식민사관의 결정판이라니. 겉으로는 비판하지만 알맹이는 식민사관에 젖어 있다는데. 대학교 때 서울대를 비롯해 교양과목에서 인기 있던 교재였는데.
지금도 그 제자의 제자들이 학문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병도의 손자들이 서울대 총장, 문화재청장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책에서는 유명 식민사학자들의 활동도 이야기 하고 있다.
예전에 친일파를 친일파라고 했다가 7년간 복직 투쟁을 벌인 서울대 모 교수를 기억한다. 제자를 성희롱했다가 몇 개월 감봉조치 당하고 슬그머니 복직한 서울의대 교수 기사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예전에 고조선과 한사군 위치를 평안남도 지역에 표시했던 것도 기억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내가 알고 있는 역사는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일까. 지나간 역사이지만 오늘의 기반이 되고 내일의 기초가 되기에 역사를 바로 알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분노하게 된다.
역사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식민사학의 논리적 구조의 허점을 사료를 중심으로 명쾌하게 비판했던 이덕일의 <고금통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다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