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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안녕,
헤이즐>
원작소설,
다시
느끼는 감동~
영화 <안녕,
헤이즐>을 보면서 오랜만에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꼈다.
로맨스 영화이지만 식상하지
않고,
시한부 인생을 다룬 이야기지만 어둡고 칙칙하지
않았다.
아직은 어린 주인공들이 예정된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들이 고통스럽고 안쓰러웠지만,
웰다잉의 모습을 보여준 듯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순간순간 찰나 속에서 무한을 느끼며 서로의 사랑을
키워온 어린 연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드물게 주인공 검색까지 해 본 영화였다.
영화 <다이버전트>에서 남매로 나왔는데,
거스 역의 안셀 엘고트는 전혀 다른 이미지여서
이미지 변신에 대 성공한 영화다.
엘고트의 약간 껄렁껄렁한 장난기와 순수한 사랑
연기,
훈훈한 외모까지 진짜
제격이었으니까.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을 읽는다면 아무래도 감흥이
떨어진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영화의 줄거리,
멘트 하나하나가 기억나기에 소설로 읽게 되면 신선한
맛은 떨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소설인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는 예상을 벗어난다.
단언컨대 소설이 더 재밌다.
영화의 거스 역의 안셀 엘고트와 헤이즐 역의 쉐일린
우들리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이들의 대화가 주는 맛은 영화 이상이니까.
갑상선 암에 걸린 16세 소녀 헤이즐은 암이 폐까지 전이되면서 암세포 위성 병변으로 호흡이
곤란하다.
그래서 작은 산소탱크 가방을 끌고
다닌다.
그녀는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처방전의 하나로
서포트 그룹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17세 어거스터스 워터스(거스)와 17세의 아이작을 만나게 된다.
아이작은 곧 수술하게 되고 장님이 된다고
한다.
거스는 한쪽 다리가 의족인 골육종
환자다.
잊히는 게 두렵다는 거스는 수류탄이 되어 남의 인생에 끼어드는 것이 싫다는
헤이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왜 그런 식으로 날
쳐다보는데?
-왜냐하면 네가
예쁘니까.
난 예쁜 사람들을
보는 게 취미인데,
얼마 전부터 삶의
단순한 기쁨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거든.
상징을 신봉하는 거스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습관적으로 물고
있다.
그게 그의 상징이니까.
죽음의 상징인 암 환자지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상징이니까.
-불을 붙이지 않으면 담배는 사람을 죽이지
못해.
-그리고 난 한 번도 불을 붙인 적이
없어.
이건 그냥
상징이라고.
잇새에 죽음의
물건을 물고 있으면서도 그 죽음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주지 않는 거지.
헤이즐이 거스의 집을 방문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집안 곳곳에 걸어 놓은
격려의 말들은 저자가 남긴 결말에 대한 상징이자 암시 같다.
좋은 친구는 찾기 어렵고 잊기는
불가능하다,
진정한 사랑은 어려운 시기에
탄생한다,
집은 마음이 있는 곳,
가족이 전부다,
고통이 없이 어찌 기쁨을 알 수
있으리오?
등.
책임져야 할 죽음을 줄이고 싶어서 채식을 한다는
헤이즐,
그런 그녀를 배려하는 거스의
사랑.
소설 곳곳에는 헤이즐에 대한 거스의 절절한 사랑과
그런 거스에 대해 거리를 두다가 서서히 받아들이는 헤이즐의 애틋한 사랑이 있다.
헤이즐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인 피터 반 호텐의 <장엄한 고뇌>를,
거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만화
<새벽의 대가>를 서로 교환해 읽으면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교환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를 쓴 피터 반 호텐에게 소설의 결말과 궁금했던 것들을 메일로 보내지만
작가에게선 응답이 없다.
주인공 안나가 혈액암에 걸린 것이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닮았고,
‘그런’하고 책이 문장 중간에 끝나 버리는 것도 인생 같아서
좋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불문율이란 게 있다고.
난 책을 끝맺지
않는 건 그 불문율을 어기는 거라고 생각해.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거기도 해.
그 책은 죽음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거든.
인생을 살던
와중에,
문장을 이야기하던
와중에 죽는 거야.
책 출간 후 네델란드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던 헤이즐,
결국 거스의 도움으로 작가를 만나게
되는데…….
거스는 피터 반 호텐의 비서에게 메일을 보내고 피터
반 호텐과의 만남이 추진된다.
-지극히 셰익스피어적인 복잡함을 안은 군의
비극에 감탄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모든
사람들은 확고한 ‘비극적 결함을 갖고
있더군요.
(중략)
소녀가 나아지거나
군이 아프게 된다면 별들이 끔찍하게 교차하지 않는 셈이 되겠지만,
별의 본질이라는
것이 서로 교차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셰익스피어가
카시루스의 편지에 쓴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별에
잇는 것이 아닐세./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라는 말은 틀려도 이보다 더 틀릴수 없는
말입니다.
로마의
귀족이라면(혹은 셰익스피어라면!)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별에는 잘못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건강한 며칠을 위해 아픈 날들을 기꺼이 내놓고 싶어서 떠난 네덜란드
암스텔담 여행.
반 호텐과의 만남은 엉망이 되지만 이 소설의 압권이
발생하게 된다.
호흡이 힘든 헤이즐이 무거운 산소탱크를 끌며 안네의
다락방에 올라서서 드디어 거스와 키스를 나누게 되는데.
수류탄이 되어 사상자를 내고 싶지 않다던 헤이즐이 거스에게 완전히 빠지는
순간이었다.
거스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도 거스의 사랑은
줄어들지 않았음을 알고 감동하는 순간이었다.
-무한대의 헤이즐,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크대.
죽음의 부작용인 암을 안고 서로의 고통을 느끼며 세상의 많은 상징에 대해
나누는 어린 연인들의 대화가 상당히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자신의 암 치료를 포기하고 헤이즐을 따라 네덜란드
여행을 단행한 거스의 사랑.
상징을 신봉하는 거스와 죽음의 부작용을 이겨내는
헤이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웰다잉을 생각하게 된다.
삶은 언제나 중간에 끝난다.
인사를 채 못할 수도 있고,
대화 중간에 막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런……이라고 말하다가 중간에 하직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의 순간을 즐기며
진정으로 사랑하고 살다간 어린 연인들의 이야기에서 진정한 사랑은 구원임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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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리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