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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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백성호/판미동]17명 인문학자의 행복한 삶 이야기~

 

 

왜 사냐 건 웃지요.

이런 시처럼 답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려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야 할까. 인생에 도가 튼 경지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물음표들을 마주해야 할까. 인생을 말하며 소박하게 웃을 수 있다면 이미 많은 것을 깨달은 경지일 텐데.

 

살아가면서 매번 질문과 대답 사이를 오가면서도 질문은 끝이 없다.

인간은 왜 사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걸까.

삶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인문학이야기는 그래서 끌림이 있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다시 되새기게 하니까.

    

 

17명의 인문학자가 그려내는 행복한 인생 이야기에는 각 전문분야의 이야기와 삶이 담겨 있다.

 

가장 끌리는 대목은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과 김대식 교수가 보내는 뇌과학의 메시지다.

뇌과학으로 행복을 규명할 수 있을까.

 

-뇌과학에선 상처를 어떻게 봅니까?

-상처도 그렇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일종의 전기적 신호입니다.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것들로 보는 거죠.

 

정서를 관장하는 뇌의 일부분이 손상되면 정서적 반응이 없어진다. 두려움을 느끼는 뇌 부분이 손상되면 두려움을 느낄 수가 없다. 실체가 없는 정신작용을, 감각작용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신기하다.

 

-꽃을 본다고 가정해 보죠. 빛이 망막으로 들어옵니다. 그 빛은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되고요. 이어서 뇌가 외부 사물의 형체를 인지하면 마침내 빨간 장미라는 형상이 눈 앞에 나타나는 겁니다. 바로 이 빨간 장미! 이것이 나타나는 마지막 단계가 아직도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고 있어요.(46)

 

뇌가 인지하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실체를 볼 수 없는 정신적 작용을 전기적 신호라고 알아낸 뇌과학 이야기가 재미있다. 뇌과학의 세계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지능, 정신, 자아, 정서 등 인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중앙집중회로인 뇌는 전기장치처럼 보이지 않는 버튼을 누르는 걸까. 그 보이지 않는 것을 과학자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계는 자극과 행동이 직접 연결되지만 인간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자아나 의식, 정신이나 과거의 경험들이 끼어든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조종하는 주체는 유전자일까.

인간 뇌의 진화의 함수 값을 어떻게 계산해 낼까. 수천 년 동안 진화가 유전자들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경험을 입력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니. 그걸 과학적인 실체로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뇌의 고고학이라는 말은 그만큼 과거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예측이나 기대가 어긋날 때 뇌는 상처받게 되는 것이다.

뇌가 속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읽은 적이 있다.

 

-뇌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요. 나의 행동과 자아를 가장 잘 정당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죠.

 

화를 낼 때나 배가 고팠을 때의 신체 반응이 똑같기에 초콜릿을 주면 화가 풀린다.

사랑과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신체 반응도 비슷하다. 무서울 때와 사랑할 때의 심장박동은 빨라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장 박동이 빨리 뛰면 인간은 사랑을 느낀다. 많은 연인들이 놀이공원을 찾는 이유가 되겠군. 가슴을 뛰게 해야 사랑을 느끼게 된다. 맞는 말이다. 쉬운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나의 예측과 세상의 데이터를 일치시키려는 노력, 다시 말해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을 때 불만스러울 수도 있어요. 외부에서 주어진 불일치를 치유하는 것은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만든 불일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한 겁니다. 그 과정 자체가요.(58)

 

인간이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유가 뇌의 자기중심적인 뇌, 속임을 당하는 뇌에 있다니, 성급한 판단을 금하고 한 발 떨어져서 상황을 보라는 말은 뇌와 관련된 말이었군.

   

스스로 만든 불일치를 일치로 극복해가는 과정 자체의 희열이 행복이라는 말에 공감이다. 뇌의 만족은 곧 나의 행복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이니까. 가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크니까. 약간의 부족함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하던데. 빈국들의 행복지수가 그래서 높은 것일까.

 

소소한 행복을 뇌과학에서 찾을 수 있다니.

행복에 답이 있을까. 행복이란 채워지지 않는 1%에서 오는 것 아닐까. 안빈낙도. 부족함에서도 족함을 누리는 것이 행복임을 생각한다. 저마다의 행복은 다를 것이고, 행복은 상처 치유의 과정임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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