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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ㅣ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이은상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8월
평점 :
[난중일기/이순신/이은상/지식공작소]노산
이은상의 역주해본 난중일기~
때는 바야흐로 1592년,
선조 25년은 이순신 장군이 48살에 되던 해이다.
그리고 왜군이 쳐들어온 역사적인
해이다.
조선의 국력이 점점 쇠퇴하고 있는 시점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다면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서애 유성룡의 이순신 천거가 없었다면 조선은 전쟁을
끝낼 수 있었을까.
영화 <명량>을 본 이후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역주해본
<난중일기>를 접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이 책은 <난중일기>에 관한 모든 국역본들의 바탕이 된 책이라고 한다.
이순신((1545~1598)
본관은 덕수,
시호는 충무이다.
한성부 건천동(현재 중구 인현동)에서 사화로 몰락한 문반 가문에서 태어나서 일찍이 유학을
공부했다.
21세에 장인의 영향으로 병학과 무예를 익혔고
활쏘기는 최고의 수준이었다.
32세에 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했고,
곧은 성품으로 인해 승진과
좌천,
파면과 복직을 거듭하면서 47세가 되어서야 정읍 현감에 이를 정도였다.
1591년 이순신 장군은 어릴 적 함께 놀던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황포해전,
율포해전,
한산대첩,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등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다.
23전 23승이라는 세계사에 유래 없는 승리를 이뤄낸 것이다.
1593년 이순신 장군은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고,
1597년 왕명을 어기고 조정을 기망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정유재란 중에는 풀려나 권율 장군 밑에서
백의종군했다.
그는 억울해하기는커녕 나라를 위해 아직도 싸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백의종군했다고 한다,
이후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자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조선 수군을 지휘하게 된다.
이순신이 가장 대승한 전투는 명량해전일 것이다.
13척의 배로 300백 여척의 왜군을 물리쳤으니 말이다.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늘 안타까운
전투다.
전장에서 전사하면서도 사기진작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계속 싸우기를 독려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이순신은 죽음 이후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된다.
선조 37년 1등 선무공신에 책봉되었고,
인조 21년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고,
정조 17년 영의정에 추종되었다.
이후 <난중일기>를 포함한 그의 문집을 <이충무공전서>로 간행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임진년에서 무술년까지 7년의 전쟁과 전쟁에서의 감회,
날씨와 일어난 일에 대해 이순신 장군이 직접 기록한
일기 형태의 글이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전술,
조정과 지도세력의 무능한 대응,
왜적의 전력과 전술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자식에 대한
정,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잘 나타나
있다.
유성룡이 보내준 전술서에 대한
이야기,
왕과 왕후의 제사,
왜와의 싸움을 기피하고 강화를 주장하는 명나라
장수들의 오만한 태도 등도 담겨 있다.
초하루,
초이틀,
초하루 등 옛글에서 볼 수 있는 말들이 많아서
예스럽다.
난중일기를 해석해 놓은 글이기에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책에는 바다에 떠 있는 배 그림과 전쟁 스토리를
비교해 보는 맛이 있다.
임금이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던 시절,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목숨과 바꾸면 지켜낸
의인이었던 이순신 장군.
명장 이순신의 이야기를 읽으면 늘 힘이 불끈 솟게
된다.
이런 선조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에 든든하고
뿌듯해진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이순신 장군처럼 헌신할 순 없을까,
현명하고 용감하게 리더십을 발휘할 순
없을까.
자신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
약한 자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순
없을까.
세월호 참사,
검찰총장과 지검장의 불법과
추태,
국회의원의 추태 등을 보면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더욱 이순신 장군 같은 의인이 그리운 요즘이다.
죽음으로 조선을 살린 이순신 같은 명장,
어디 없을까.
이런 지도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