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살림지식총서 495
이희진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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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사/이희진/살림]누가 전쟁을 일으켰을까.

 

 

한국전쟁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경제부흥과 보수 체제의 안정을 이루며 강대국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국제 정치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도 대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후, 미국이 군사력을 더욱 키우게 되는 발판을 마련해줬고 그로인해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사실도 대체로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미국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미국의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배경에도 전쟁과 원조의 힘이 있었다.

전쟁의 결과와 그 힘을 예측했는지 모르지만 전쟁이 가져다준 결과에는 주변국들에게 포상 같은 정치적인 힘과 경제력의 부가 있었다.

   

 

한국전쟁사.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은 불과 60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때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한국전쟁이 남침설이냐 북침설이냐에 대한 왈가왈부가 많은 것 같다. 6.25전쟁의 책임론에는 미국의 남침유도론, 한국 내부의 분열이 원인, 북침설 등이 있다는데, 역사적 사실들은 어떨까.

한국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고, 전쟁은 왜 일어나게 된 걸까. 누가 전쟁을 일으켰을까.

 

광복이후 한반도에서는 194599일 하지 중장이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로부터 항복문서를 접수하면서 군정의 첫 걸음을 떼고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이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항복 이전에 아베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여운형에게 한국의 통치권을 넘겼고,

여운형은 조선건국위원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전후처리 회담인 미소공동위원회가 수차례 결렬되면서 남북한 별개의 정부가 각각 세워지기에 이른다.

남한은 1948510일 단독 선거 이후 단독정부가 출범되었고, 북한은 인민회의 선거를 통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성립하게 된다.

북한은 19482월 인민군을 창설하게 되면서 같은 해 12월 북한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을 철수하게 된다. 남한은 194910월 주한 미군을 철수하게 된다. 194910월 중국은 공산화되면서 나름의 소용돌이를 겪게 된다.

 

한국전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김일성은 1949년 스탈린을 만나 남침계획을 논의하면서 겉으로는 평화적 제스처를, 속으로는 남침을 통한 통일을 꿈꾸게 된다. 심지어 194910월 북한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힘으로 통일을 이룰 권리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는데, 아무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걸까.

 

북한이 내부조직을 정돈하며 전쟁을 준비한 것과는 달리 남한은 정부 수립 이후의 정치적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더구나 전쟁 직전의 남북한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북한이 압도적인 우세였다. 전쟁을 치른다면 일방적인 승리를 장담할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의 군사전력은 국군에 비해 월등했던 이유에는 소련의 군사원조가 있었다.

당시 북한은 소련이 남긴 소련제 전차, 자주포를 갖춘 기갑부대, 장비와 무기를 잘 갖춘 보병까지 잘 갖추고 있었다. 전방에 135,000명 병력에, 후방에 10만 명 예비대까지 배치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남한에 대한 군사원조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기본적인 원조 수준이었다, 19494월 한국은 약 10만의 병력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전차도 없고 무기도 질적 양적으로 열세였다.

미국은 고문단만 남기고 미군은 철수했고,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거시킨다는 에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까지 발표했다.

 

한국전쟁 직전 북한은 북한의 비밀스런 남침 대비 움직임들은 어땠을까.

북한은 38도선 인접 지역의 주민들을 분산이동하고 군사용 도로 건설을 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다. 북한의 전면공격의 분위기가 감지되었지만 미국 정보참모부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육군본부 상황실에서는 624일 전후로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긴급회합을 가졌지만 국군은 비상경계령을 해제할 정도였다. 더구나 병사들은 휴가 나가고, 24일 밤늦게까지 육군회관 장교클럽 준공 파티로 각급 부대 지휘관은 밤늦도록 연회를 벌이는 등 군대 내부적으로 느슨해진 상황이었다.

드디어 몇 시간 뒤 625일 북한은 서울의 괴뢰 정부군이 반역적인 침략을 해와 어쩔 수 없이 반격한다.’는 방송과 함께 남침을 하게 된다. 준비가 안 된 육군은 낙관적인 전망만 하면서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울을 고수하고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겠다던 채병덕 육군총장의 말은 지나친 낙관이었다. 27일 정부의 이동을 지시하고 한강 다리 폭파를 준비하면서도 라디오 방송에서는 난관적인 방송만 했다고 한다.

피난하고 있는 시민, 미처 피난하지 못한 시민, 철수하지 못한 군인들을 두고 갑자기 한강 다리를 폭파한 것이다. 그로인해 많은 무기가 북한군 수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남한은 국군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명령체계 남발, 북한 전차에 육탄공격까지 명령하는 무계획성 등으로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수도권을 내주게 된다.

한편, 북한의 전면적인 남침을 보고 받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소삭을 받자마자 미국의 개입을 결정했다. 지켜줄 전략적 가치가 없다던 한국에 미국이 적극 개입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는 북한의 철저한 남침계획과 무너지는 남한에 있지 않았을까.

미국은 이미 타의에 의해 시작된 한국전을 신속히 끝내고 다른 지역에 대한 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는데......

 

미국은 먼저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나섰고 일본에 있던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를 한국에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군의 병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면서 대규모의 병력 지원을 하게 된다. 결국 긴급 유엔보장이사회를 열어 북한의 침략에 대한 규탄을 하게 되고, 소련의 방해 등 우여곡절 끝에 38선 철수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게 한다. 그리고 유엔 차원의 병력 파견이 이뤄진 것이다.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 다부동 전투에서 치열한 접전을 하며 낙동강 이남을 지켜내게 된다. 그리고 19509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기에 이른다. 아무도 예상 못한 지역을 통해 북한군의 허를 찌른 것이다.

이후 공산군 포로가 다수 발생하지만 공산군의 나머지 병력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남한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미군을 중심으로 유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한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곧 통일이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역사는 이미 우리 손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책에서는 전쟁 발발, 속수무책의 패전,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개입, 역전의 발판이 된 인천상륙작전, 38선 돌파와 맥아더의 북진작전, 중공군의 개입, 패배와 재역전, 크리스마스 공세, 중공군의 반격, 유엔군의 위기, 유엔군의 반격, 서울 재탈환, 맥아더 해임, 공산군의 마지막 대공세 등의 내용들로 이어진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남한의 군에서는 명령 체계의 혼선과 실책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 그러니 춘천-홍천 지역에서의 남한의 선전과 북한 측 작전의 차질은 돋보일 밖에.

 

남북분단과 그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을 가져오게 된 한국전쟁의 이야기, 강대국의 이해논리에 좌우되던 한반도의 현실 등을 알 수 있는 책이다.

해방이 되면서 어수선했던 분위기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힘없는 나라의 백성, 가난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야했던 조상들의 처절했던 생존투쟁들을 보며 조상들의 울분이 느껴진다.

 

한국전쟁이후 한반도는 많은 도로와 다리가 폭파되고 공장과 학교, 서민들의 삶이 무너졌다. 세계 최대빈국으로 전략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남과 북의 감정적인 소모, 이념대립, 선량한 양민들의 학살과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보며 그로기 상태를 느꼈을 그 시절의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족의 자존심마저 무너져 내리는 역사를 보면서 새삼 그 시대를 버텨온 어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한국전쟁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의 역사다. 제국주의 밑에서 식민지를 경험하고 연이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전쟁을 겪었기에 자존감마저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보며 조상들의 아픔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던 우리의 어른들을 생각하게 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지금도 휴전 중인 국가인 슬픈 현실을 보며 통일을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는 게 가능할까. 언제쯤 분단의 아픔을 이겨내고 자력의 통일을 이루게 될까.

 

전쟁은 그저 한판승부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이에게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유산으로 남긴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전쟁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상처투성이의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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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 2014-09-1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사란 연혁표가 아니다. 사건에 대한 이해...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시에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나 근대사의 가르침에 그런 살아있는 역사의 숨결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이 책도 그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