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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평점 :
[헤르만 헤세의 사랑]소년의 감성을 지닌 낭만적 자유주의자 헤세의 러브스토리
<데미안>,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학창 시절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의미도 모른 채 말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몇 개의 문장을 메모하고 사용하면서 공감한다고 생각했었다. 분명코.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헤세의 감정을 공감하지는 못하면서 아름다운 언어의 유희에 더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내면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했던 아름다운 언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 이야기는 처음 접한다.
그가 만나고 사랑했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만 모은 책이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편지와 문서들 속에서 밝혀낸 헤세의 사랑은 어떨까. 여인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 가족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보다는 지적인 고뇌와 유희를 더 즐기지 않았을까.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 -헤르만 헤세
헤세는 1904년 유명한 학자 집안 출신이었던 사진작가 마리아 베르누이와 1924년 성악가 루트 벵거와 1931년 미술사학자 니논 돌빈과 사랑을 하고 결혼도 했다. 물론 짝사랑하던 여인들도 있었다.
헤세의 결혼 이야기가 전기에서 조차 나오지 않는 이유는 헤세가 자신의 자서전에 그의 결혼 생활에 대한 기술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나중에 출간된 그의 전기에서는 부인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니논의 이름은 어떤 전기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헤세의 첫 번째 결혼은 1904년 사진작가 마리아 베르누이와의 결혼이었다.
마리아는 헤세보다 9살이나 많은 여인이었지만 자그마한 체구의 활달했고 헤세와는 음악적인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젤의 유명한 학자 집안 출신이었던 마리아는 음악적인 재능을 겸비한 사진작가였다. 하지만 결혼을 염두에 둔 시점에서 그가 그녀에게 베푸는 마음은 미지근한 사랑이라고 할까. 결혼에 적극적인 마리아에 비해 결혼에 대해 수동적인 헤세였으니 말이다. 헤세의 그녀를 향한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였을까. 미심쩍기까지 하다.
헤세는 언제나 국외자이고 손님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집에 있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나 부인의 다정함조차 부담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는 괴벽과 변덕, 두통과 정신적인 열병을 앓고 있다.
가족은 그에게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후고 발의 헤세 전기 (본문 중에서)
헤세는 결혼하는 과정에서도 별로 열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결혼 이후에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
가정생활에서의 소소한 일상마저 부담스러워했던 헤세는 납세고지서나 토지대장, 일상적인 대화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몸져눕기까지 했다니. 그나마 정원 가꾸기마저 없었다면 그에게 가정의 존재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
스스로도 예민한 신경이라고 했던 헤세의 들쭉날쭉한 감정들은 문학가로서는 어울릴지 몰라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모습은 아니다. 우울하고 염세적인 그에게 가정조차도 치유가 될 수는 없었나 보다.
십여 년의 결혼 생활을 종지부 찍는 이혼과정을 봐도 그는 후련해 하는 듯하다.
이후 1924년 성악가 루트 벵거와 1931년 미술사학자 니논 돌빈과 사랑과 결혼에서도 여인들이 헤세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다.
결혼 이후에 그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가.
결혼을 두려워하는, 환상에 사로잡힌, 자아도취적인, 세상물정에 어두운, 소년의 감성에 머물러 있는, 세상과 동떨어진 은둔자적 생활습관에 익숙한 탓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결혼을 꿈꾸며 결혼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여자와 아직은 소년의 티를 벗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청소년기에 머무른 남자의 결혼에서 지속적인 행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결혼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남자, 헤세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다. 길지 않은 결혼생활이 예상되기에 더욱 아슬아슬한 마음이 된다.
예술적 감성과 가족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은 동행할 수 없는 걸까.
여성에 대한 무관심, 결혼에 대한 무열정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더구나 태어난 자식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나 책임감, 가장으로서의 의무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헤세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교육이 경건주의나 복종주의가 아니라 가정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었다면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을까. 인간은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과 환경들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래도 여인들의 사랑과 그의 자유로운 낭만 기질이 만나 아름다운 문학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