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경제학 - 경제학은 어떻게 인간과 예술을 움직이는가?
문소영 지음 / 이다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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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경제학/문소영/이다미디어]명화로 배우는 경제사, 아는 만큼 보인다!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융합적 지식을 담은 책 말이다.

계급과 계층, 버블과 투기. 이자와 대부업, 중상주의와 산업화, 담합과 독점이 명화와 만났다. <그림 속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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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속에서 경제 코드를 찾는 것은 낯설면서도 색다르다. 마치 경제학자가 그림을 그리고, 화가가 경제학 서적을 뒤적이는 것만큼 어색하다고 할까.

하지만 경제학과 미술사를 두루 공부한 기자의 안목이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책이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걸어 간 만큼 내 것이 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되새긴 책이다.

유명한 그림 속에서 경제용어를 접하다니,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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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토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프레스코 벽화 중 <성전에서 상인과 환전상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그림에서는 성전의 독점과 담합을 꼬집는다. 야콥 요르단스의 <성전에서 내몰리는 상인과 환전상을 몰아내는 그리스도>에서는 대부업자들을 조롱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플랑드르 지방의 화가 퀜틴 마시스(1466~1530)가 그린 <환전상과 그의 아내>는 은밀한 비유들이 가득하다.

책을 넘기는 아내는 돈의 무게를 저울로 재고 있는 남편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책상 위에는 수많은 동전, 저울, 진주구슬, 반지, 작은 볼록거울 등이 놓여 있다. 뒤편의 시렁에는 사과, 책, 종이꾸러미, 촛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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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환전상이 저울과 확대경을 이용해 주화 속에 든 금·은·동 함량 비율로 교환비율을 정했다니, 처음 접하는 이야기다.

화폐에 함량 된 재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주화들에 환전상들은 얼마나 골치가 아팠을까. 일일이 그 동전의 무게를 재야했으니 말이다.

 

기도서를 보던 아내가 돈이 올려 진 저울에 눈길을 돌리는 모습은 세속의 일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메시지이고, 뒤쪽 불 꺼진 양초는 그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한다. 빨간 바탕에 금빛 사과는 최초의 여인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 간 원죄를 상징한다고 한다. 창문가의 남자가 비쳐있는 작은 볼록거울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네델라드 화가 얀 판 에이크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얀 판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에도 벽에 볼록거울이 걸려 있다.

 

그림 속의 대상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들이 경제와 종교, 문화, 스승에 대한 오마주까지 담겨 있다니, 놀랍고 놀랍다.

예나지금이나 대부업이나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나 보다. 역사 속에서는 어느 정도였을까.

 

샤일록: 나는 돈도 자주 새끼를 치게 한답니다.

안토니오: 친구끼리 누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예가 있단 말 인가요……. 그러니 원수에게 빌려줬노라고 생각하시지. -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을 새끼를 낳지만 돈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 말이나 집을 빌려 줄 때에는 사용료를 받아도 되지만 돈을 빌려줄 때에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세익스피어 역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 받는 것을 나쁘게 보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도 같은 동족에게 변리를 놓지 못한다느니, 어렵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준다면 그에게 채권자 행세를 하거나 이자를 받지 말라고 되어 있다.

 

특히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나 성직자의 이자 수취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789년 샤를마뉴 대제는 이자 받는 대금법을 금하는 칙서를 내렸다고 한다. 이 법이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면 어떨까. 담보가 없는 가난한 이에게 은행대출이 쉬워졌을까. 방글라데시의 유누스 이야기를 알고부턴 부쩍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업이 발달할수록 이자에 대해 인식이 조금씩 풀리다가 국제무역이 발달할수록 이자를 현실적으로 용인하게 된다. 근대와 현대에 들어오면서 이자는 더 이상 부도덕한 불로소득이 아니며 현대의 만족을 포기한 대가로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뵘 바베르크는 이자가 우회생산을 돕는다고 했고, 금융사회로 올수록 이자는 채권과 배당의 형태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같은 신용사회에서 이자는 더 이상 부도덕한 것이 아니며 법의 범위 내에서 최대의 이자를 취득하는 것이 현명하게 보일 정도다.

 

돈에 대한 입장을 볼 수 있는 그림에는 얀 요세프 호레만스 1세의 <베니스의 상인>, 히에로나무스 보쉬의 <죽음과 구두쇠>, 마리누스 판 레이머스발의 <환전상과 그의 아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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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광풍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 접한다. 지금도 튤립은 고가인데......

튤립 광풍 풍자화.

원숭이들이 줄무늬 튤립을 끌고 가고 있다. 튤립 개수를 확인하는 원숭이, 돈 계산을 하는 원숭이, 튤립에 오줌을 갈기는 원숭이, 튤립을 들고 끌려가는 원숭이들이 있다.

튤립투기로 빚더미에 오른 원숭이가 끌려가는 장면, 멀리에는 장례 행렬까지 있다니.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품종의 튤립 알뿌리가 황소 46마리 또는 돼지 183마리와 맞먹는 값이라니……. 헐~ 그 비싼 튤립 알뿌리를 양파인 줄 알고 먹었다는 얼간이도 있다니, 모양은 비슷해도 양파 냄새와는 분명 다를 텐데......

 

튤립나라인 네덜란드에 튤립이 들어온 것은 불과 몇 백 년 전이라고 한다. 색상이 선명하고 꽃이 큰 튤립은 곧 부와 교양을 상징하면서 귀족들 사이에 튤립 정원 가꾸기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왕관모양의 꽃봉오리, 귀족의 검을 닮은 잎사귀, 크고 선명한 자태는 귀족들의 관심을 끌었고 튤립 가격은 급상승했다고 한다. 더구나 1630년대엔 희귀한 줄무늬 튤립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랐고, 더 오를 것이란 기대로 튤립 투기까지 극성이었다고 한다. 튤립 거래소까지 생겼다니......

 

하지만 올랐다면 내려가는 게 인생의 이치다. 비싼 튤립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가격 인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턱 없이 올랐기에 무지막지하게 하락하는 튤립 가격에 네덜란드 전체가 한숨을 쉴 정도였다고 하니, 돈에 눈 먼 탐욕의 결말을 보는 듯하다.

어느 시대에나 투기나 광기, 거품과 사치는 한 나라를 광풍에 휩쓸리게 하나보다.

 

튤립 경제는 헨드리크 포트의 <플로라와 바보들의 수레>, 필리프 드 상파뉴의 <바니타스>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윌리엄 터너의 작품 <전함 테메레르>에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쇠락을 나타내고 있다. 산업혁명과 운송 속도의 혁명, 더불어 분업 속도의 혁명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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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이삭줍기>에는 떨어진 이삭마저 주워야 하는 비루한 하층민의 삶, 일꾼들을 지휘하는 말 탄 감독에서 빈부의 격차를 고발했다며 선동적이고 불온한 그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림이 한국 교과서에 실린 것도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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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와 스테인드글라스 등에 이르는 모리스의 디자인 예술, 툴루즈 로트레크의 예술적 광고, 뉴딜벽화, 뉴딜 아트,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명화 속에서 경제 코드를 충실히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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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흐름과 미술 동향이 전혀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그림에는 자의든 타의든 그 시대의 풍속과 이념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림 속에서 문화와 사상, 경제까지도 만날 수가 있으리라.

그림 속에 감춰진 경제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저자의 능력 덕분에 어려운 경제 용어를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할까. 예술적인 이미지 속에 꽁꽁 감춰진 내밀한 경제 이야기다. 알고 나면 보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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