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출입 금지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김서연 옮김 / 호메로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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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출입금지/코르네이 추콥스키/호메로스]러시아 아동문학의 아버지, 자전적 성장소설

 

러시아의 작가, 비평가, 평론가, 번역가, 언어학자, 아동문학가로 평생을 글과 함께 살다간 코르네이 추콥스키의 자전적 성장소설을 만났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낮은 신분과 가난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김나지움에서 제적을 당했다. 이후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문필 활동과 신문사 특파원 등을 지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강했던 개구쟁이였다. 사내아이라면 응당 있을 법한 심한 장난과 사건사고들이었다. 하지만 가난하고 낮은 신분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김나지움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어느 날, 학교 후견인 니콜라이 백작이 학교를 방문해서 러시아 받아쓰기 시험을 참관하게 된다.

언어에 강했던 저자에게 친구들은 부정행위를 요청하게 된다. 저자는 받아쓰기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에게 줄을 연결해서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한다. 줄을 한 번 잡아당기면 쉼표, 두 번은 느낌표, 세 번은 물음표, 네 번은 쌍점으로 철썩 같이 신호를 정한 것이다. 모두들 무사히 받아쓰기 시험을 마쳤다. 하지만 결과는 비극적인 참패였다. 친구들은 한 낱말을 잘라 쉼표를 찍거나 엉뚱한 문장부호를 넣어서 영점 처리된 것이다.

 

더 불행한 사건은 멜레티 학교 신부학교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 일어나게 된다.

신부는 설교 중 상냥한 목소리를 말하다가 불현듯 화를 내기도 하고 같은 말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신부님이 수업 중에 "그래-그래-그래!"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를 세다가 야단을 맞게 된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불경죄에, 괘씸죄까지 걸렸던 것이다.

 

우리는 신부의 설교를 안 듣고 멍하니 있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래-그래-그래'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멜레티 신부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해 열심히 귀를 기울였건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래-그래-그래'외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문 중에서)

 

지루한 수업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벌을 받게 된 것이다. 배가 고파 러시아식 고기만두인 피로시키를 입에 넣었다가 또 야단을 맞게 된다. 정교도는 수요일과 금요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일에는 절대로 고기를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난은 계속된다.

 

친구 쥬자가 자신의 성적표를 고쳐서 부모님께 보여주고는 땅에 묻고 잃어버렸다고 한 것이다. 교장의 개가 그 땅을 파헤쳐 교장에게 갖다 준 것이다. 그로 인해 성적표 조작을 부추킨 주범으로 몰렸고, 받아쓰기 시간의 신호까지 들통 나 2주 정학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다음 날 일찌감치 학교에 등교해 버린다. 학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엄마를 위해서도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차마 못한 것이다.

 

불안하긴 하지만 불평할 것까진 없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또 일주일 전과 다름없이 나는 이렇게 내 자리에 앉아 있다.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다. 내주위에는 5년 동안 함께 공부해 온 친구들이 있다. (본문 중에서)

학교에서 쫓겨난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엄마에게 언제쯤 사실대로 말할까를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나중에 일부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되는 이야기가 참담할 정도다. 교장은 하녀 자식 예닐곱 명을 학교에서 쫓아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대가로 돈을 챙겼다는 것이다. 마침 약점을 잡힌 아이들 중에서 가난한 저자가 딱 걸려든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일을 하면서 혼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영어공부와 문학, 물리학, 라틴어문법 등...... 잠시 거리의 패거리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하며 품을 팔았지만 기품을 지키는 어머니, 배고픈 도둑에게 자비를 베푸는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1890년대의 제정 러시아의 계급사회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가난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의 성장사다. 학교부적응자가 아니라 학교가 내친 아이의 이야기다. 비열한 세상에서 자수성가한 작가의 이야기다.

 

러시아 작가의 성장 이야기는 처음 접한다. 평탄치 않은 성장 이야기다. 역경을 딛고, 사회의 편견을 이겨낸 눈물겨운 이야기다. 슬프지만 유머러스한 글맛에 푹~ 빠져 읽게 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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