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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평점 :
[건너편 섬/이경자/지음과모음]사랑과 배신, 소외감과 외로움, 원초적 감정을 담은 이야기들....
상처가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굴곡진 격동의 시대를 관통해 살았다면 그 삶에는 더 많이 긁히고 더 찢겨서 더 깊은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인간의 삶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처음에 나오는 <콩쥐 마리아>에서는 미국 이민 백년사의 밑거름이 된 양공주의 이야기가 비밀스럽게 펼쳐진다. 미국 노인정에서 인생 끝자락을 보내는 노인들의 다양한 과거사를 그리고 있다. 과거의 삶이 다르니 현재의 부류도 갈리는 현실이 지극히 합당한 걸까. 노인정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부류들이다. 노인정의 한 부류는 소문을 여기저기 물어다 나른다고 해서 아나운서다. 좋게 말하면 소식통일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이간질일 수도 있다. 다른 부류는 한국에서 정치 쪽으로 한 가닥 했던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또 다른 부류는 내세울 것 전혀 없고 오히려 감춰야 할 어두운 과거가 많은 이들이다.
노인정에서 만난 일흔 살 마리아와 여든 살 할머니는 보잘 것 없는 서로에게 끌리며 친분을 쌓게 된다.
하지만 거짓말쟁인 할머니는 좀체 자신의 속내를 잘 터놓지 않는다.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처지를 두러대느라 그때그때 한 거짓말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으면서 '구라'로 불리고 있을 정도다. 마리아 역시 말이 별로 없다.
가난한 집 맏딸로 태어나 자신은 못 배웠지만 오빠들과 동생들을 가르치면 자신의 팔자도 고쳐진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마리아. 그래서 그녀는 학교 대신 공장을 다니며 열심히 식구들을 도왔다. 월급을 타면 식구들에게 모두 갖다 바치는 착하디착한 콩쥐였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노처녀가 되었고, 당시 늙은 노처녀에게 들어온 결혼은 재취자리였다. 하지만 결혼했더니 후취가 아니라 첩이었다. 몇 개월 만에 시집을 뛰쳐나와 아이를 낳았고, 양반 가문 망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향에서 쫓겨났다.
그 뒤 미군 앤드류를 따라 하와이로 왔지만 , 앤드류의 탈영, 먹고 살기 위해 한 양공주 생활, 그리고 식구들의 미국자립을 돕는 일로 바빴던 콩쥐 마리아였다.
그녀를 통해 백열아홉 명이나 미국으로 이민을 올 수 있었다.
그녀를 통해 미국에 이민 온 가족들과 가족의 사돈들은 빌딩을 사고 자식을 유명대학에 보내고 의사, 변호사, 회계사 며느리를 봤다. 오빠와 동생들, 사돈집까지 마리아를 통해 미국 시민이 된 사람은 백 명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모두 그녀를 부끄러워했고 필요할 때만 이용할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과거사를 용기를 내서 친구 할머니에게 털어 놓으며 후련해 하는 모습에 가슴 뭉클해진다.
한인 미국 이민 백년사의 초석의 초점은 우리가 '양색시'라고 경멸해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 여성들의 '자기희생'을 토양으로 했다니. 가려진 우리 역사의 비밀스런 단면을 훔쳐본 느낌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우리의 민낯, 이용만 하고 보답은 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가족들의 이기심들이 섬뜩할 정도로 적나라하다. 한 여인의 희생을 디딤돌 삼은 사랑과 배신, 외로움과 소외감을 그린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역사적 흐름, 사회적 현실에 휩쓸려 부유하는 착하고 헌신적이었던 누이들의 슬픈 과거사를 담은 소설이다.
현실은 언제나 소설 같고 소설은 언제나 현실 같아서 더욱 애틋하게 읽은 이야기다.
이 책은 8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콩쥐 마리아, 미움 뒤에 숨다, 언니를 놓치다, 박제된 슬픔,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 고독의 해자, 이별은 나의 것, 건너편 섬 등…….
저자는 소설<절반의 실패>로 기억되는 이경자다.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확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절반의 실패>, <배반의 성>, 살아남기>, <곱추네 사랑>, <배반의 성>, <혼자 눈뜨는 아침>, <사랑과 상처>, <정은 늙지도 않아>, <천 개의 아침>, <계화>, <순이>, <세번째 집> 등이 있다. 저자는 40여년의 작가 생활 동안 올해의 여성상, 한무숙문학상, 고정희상, 제비꽃서민문학상, 민중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한국불교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