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구한 일본인 달걀이 걸어 간다 : 베델과 후세 2
이영현 지음 / 하우넥스트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독도를 구한 일본인/이영현/하우넥스트]베델과 후세2 , 이번에 독도문제를 파헤치다!

 

퓨전 역사소설이라고 할까. 역사와 상상, 현실이 가미된 소설이다.

달걀이 걸어간다-베델과 후세 1편에 이은 2편이다. 2편에서는 일본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인정 과정이 나와 있다. 동아시아의 화약고인 독도가 평화의 성지로 바뀐 이유엔 베델과 후세 재단의 활약이 컸다. 책에서는 독도가 한국 땅임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명쾌한 논리를 펼친다.

1편이 베델과 후세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그린 소설이라면 2편은 순수창작소설이다.

첫 장면은 일본에 있는 한국 대사관 앞에서 우익 성향의 일본인들이 벌이는 데모로 시작한다. 이들은 일본의 땅인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 점유하지 말고 당장 일본에게 반환하라며 시위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국회의원들은 울릉도와 다케시마를 방문해서 항의하겠다고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거부해버린다.

 

독도의 영유권에 대해 한국과 일본 간의 입장 차이가 거세질 즈음 베델-후세 재단의 후세 와 만철도 독도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자료를 모으게 된다.

베델-후세 재단은 조선을 위해 헌신했던 영국인 기자 토머스 베델과 일본인 인권 변호사 후세 다츠지의 뜻을 기려 세워진 재단이다.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

1904년 영국 크로니클 지의 특파원으로 러일전쟁 취재차 조선에 파견된 그는 해임된다. 해임된 이후 그는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인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세운다. 그리고 주필 박은식, 집필진 신채호, 장지연, 안창호들과 함께 조선의 실상을 알리며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게 된다.

그는 신문을 통해 일제에 억압받는 조선인의 실상, 을사보호조약의 무효, 명성왕후 시해사건, 항일무장 투쟁, 헤이그 특사 파견 보도, 국채보상 운동 등을 국내외에 알렸다. 1907년, 1908년 벌금형과 금고형을 받게 되면서 심장병을 얻었고, 결국 그는 37세의 나이에 조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 그는 마포 양화진 외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 조선을 위해 헌신하며 했던 조선인을 구하려 했던 양심적인 언론인이었다.

 

일본인 인권 변호사인 후세 다츠지(1880-1953).

평등과 인도주의적 신념으로 일본 내 하층민의 권리보호에 노력을 기울였고 조선과 대만 등 식민지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변론해 준 변호사다. 조국인 일본의 침략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한국인과 대만인들의 인권을 위해 변론해 준 인권 변호사다.

1919년 2.8 독립선언으로 조선 유학생들이 잡혀가자 조선 유학생들을 변론했고 1920년대 의열단 사건과 관련한 변호를 했으며 일본의 조선 토지 수탈과 관련한 조사를 위해 조선을 방문하기도 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자행한 조선인 학살사건을 비판하기도 했다. 1946년에는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역사학을 공부한 후세 강사의 절망은 일본이 강제징용에 대한 죄책감과 보상대책이 없다는 거였다. 심지어 지금 일본은 한국의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을 교과서에 게재하고 있을 정도다. 종군위안부와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보상 특별법은 부결이 된 상태다.

그럴수록 후세와 만철, 수전, 빌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사실적으로,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모아 토론하게 된다. 많은 일본인들이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역사 왜곡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들은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탐욕이 이미 1876년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1965년 한국과 일본 간의 조약에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과거에 대한 보상 문제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일본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의정서는 비준되지 않았기에 조약으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우월적 입장에서 제시했던 의정서에도 독도에 대한 조항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까지도 일본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인정했다는 말이다.

 

더구나 수전을 통해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61년 9월 8일) 내용은 더욱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여 한국에 관한 모든 권리,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 2장 영토 제 2조)

 

당초 초안에 일본이 독도도 포기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마지막 서명하는 최종 조약에는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왜 빠졌을까. 초안대로 서명했다면 지금처럼 일본이 억지를 부리지 못했을 텐데…….

 

그 당시에는 일본이 절대적인 우위였다. 폐허가 된 한국에 비해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을 기반으로 급격하게 성장했을 때니까. 그런 일본이 좋은 기회를 내버려 두고 이제와서야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이 전쟁터였던 1950년 대 일본의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했으니까. 한국전쟁으로 경제 특수를 누렸던 일본은 그 자금으로 1964년에 도쿄 올림픽까지 개최할 수 있었으니까. 6.25전쟁으로 일본은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편성할 수 있었고 군사력도 키우기도 했는데......

 

다행히 베델과-후세 재단의 일본인 회원이 증가하면서 만장일치로 독도문제를 재단공식활동으로 채택하게 된다. 이미 모아왔던 독도가 한국 고유영토라는 근거 자료들을 알리고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보수우익 세력들의 규탄집회는 더욱 거세지고 급기야 일본과 한국이 독도 앞에 대치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소설에서는 일본인이 독도에서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밝히게 된다.

그가 제시하는 지도에는 6.25전쟁 당시 일본이 한국에  일본군 부대를 보낸 곳이 나와 있다.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 것은 일본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의미도 되었기에 구부대 파병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군대를 파견한 곳은 독도가 아닌 인천과 원산이었다고 한다. 형식적이나마 군대를 독도에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독도가 자신의 땅이었다면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본 땅이 아님을 스스로 인지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세한 입장임에도 독도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그들 스스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일본인 스스로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증언하는 모습이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이다. 실제로 그런 날이 올까.

 

소설에서는 1편과 2편의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1편에서 영현이 지하철에서 구해준 일본인이 2편에서는 한국을 위해 정의의 사신으로 등장한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말하는 법적인 자료, 일본인들의 모순된 행동을 반박하는 자료들이 있어 유익한 소설이다. 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달걀이 걸어간다.'는 말은 에티오피아 속담이라고 한다. 달걀은 걸을 수 없지만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면 걷게 된다는 뜻이다. 모든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누군가의 작은 시작이 나중에는 큰 결실을 맺게 된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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