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은 목소리
이자벨라 트루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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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같은 목소리/이자벨라 트루머/여운]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상실 과정을 그린 소설!

 

생명연장의 꿈을 꾸던 인류, 백세건강이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말이 나돈다. 아프면서 백세를 산다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백세를 산다면, 그렇게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백세건강이 쉽지 않다는 건 사실이니까.

예전엔 노망이라고 했던 치매. 치매의 종류는 다양한 모양이다. 그 중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원발성 퇴행성 치매의 한 유형이라고 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전체 치매 질환자의 60~70%에 이른다고 한다.

 

뇌 기능의 퇴행인 치매의 증상은 다양하다고 한다. 치매의 주된 특징은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능력을 점점 상실한다는 것이다. 건망증, 기억력 상실에서 시작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공간 감각도 떨어진다. 그리고 실어증까지 발생한다.

 

치매 말기에는 거의 모든 기능이 상실한다. 치매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2차적 질환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에 걸리면 감염 등에 의한 2차적 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평소 하던 행동이나 게임을 집중해서 하면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책은 지그프리트 그람바흐가 자신의 치매 진행 과정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서 그 심리상태를 따라 가보는 이야기다.

 

처음에 주인공은 건망증인 것처럼 숨긴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무도 치매임을 눈치 채지 못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두려웠을까. 때로는 그런 상황이 부끄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할 텐데.

 

여든 살 생일을 맞은 지그프리트는 생일잔치를 벌인다. 딸 바바라, 아들 미하엘, 아내, 시장, 친구들이 축하하러 와 있다.

말이 어눌해진 지그프리트를 대신해 아내가 자신을 소개한다. 돈은 없었지만 먹을 것이 풍부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전쟁이 발발해서 17세의 어린 나이에 벨기에 전선에 투입된 이야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던 이야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아내가 대신한다.

 

아내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사람들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상한 일이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그림자 같은 목소리'다.

(본문에서)

 

점점 지그프리트에게는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다음에 뭘 해야 할 지, 조금 전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더 이상 생각이 안 난다.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의 목소리조차 웅웅거린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림자 같이 실체를 모르는 말 뿐이다. 잃어버리는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일까. 하지만 도무지 주의를 기울이거나 몰두할 수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되지 않는다. 모든 게 예전 같지가 않다.

그는 사람들이 와서 아는 체를 할 때가 가장 두렵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며 반가워 하다가 다들 안 된 표정을 짓는다. 아내가 심부름을 시키면 기억을 되살리느라 힘이 든다. 내가 뭘 가지러 온 건지, 뭘 가져 가야할 지 당혹스럽다.

 

오늘 점심 메뉴는 뭐요? 오늘 점심 메뉴는 뭐요? 오늘 점심 메뉴는 뭐요?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지그프리트는 점점 아내와 친구들의 눈치 보기가 부담스럽다. 조심할 것도 많아졌지만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 지,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도 자주 잊어버린다. 예전처럼 빠르게 생각할 수도 없고 몸도 빠르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예전에 잘하던 춤추기도 깜박 잊고 산다. 서류 정리, 세금 고지서도 이젠 자주 깜빡 잊어버린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억을 더듬을수록 머리가 어질하고 눈앞이 흐려진다. 그럴 땐 공기 들이마시기도 힘들다. 숨이 가빠진다. 눕고 싶다.

지그프리트는 점점 기억하려니 몸이 아프고 경련이 인다. 나중엔 신체적 기능, 언어적 기능마저 상실해 간다. 행동은 더 느려지고 발음은 점점 외계어가 되어간다.

딸이 치매를 앓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쓴 특이한 소설이다. 남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지만 알츠하이머 환자의 입장에서 심리파악이 될까. 그래서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읽을수록 환자의 입장에 동화되다보니 마음이 묵직해졌다.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자신을 위해 살았던 한 평생이 기억상실과 언어상실, 신체기능 상실로 마무리가 되어서 슬펐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어렵다고들 한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맡기기도 하고 요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기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환자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사노라면 많은 기억을 해야 한다. 기억 하느라 지치는 일생이다. 얼마나 진저리 쳤으면 잊어버리고 싶은 걸까. 생의 막바지에 잃어버리고 싶은 기억,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무엇일까.

묵직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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