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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줄리아나 1997/용감한자매/네오픽션]응답하라 1997, 좀 놀아본 언니들 버전!
좀 놀아본 언니들의 온몸 뜨거워지는 고백!
왕년의 클럽 '줄리아나' 나이트클럽!
<위기의 주부들>보다 위태롭고.
<섹스 앤 더 시티>보다 발칙하다!
띠지에 있는 문구들이 몹시 섹시 찬란해서 기대보단 반감이 들었던 책이다. 더구나 이대 나온 오 자매는 이십대 나이트클럽 생활도 즐겼고 20년 후 착실한 아내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후문? 이라는 문구에서는 거센 반발까지 일었다. 그렇고 그런 흥밋거리만 늘어놓는 아줌마들의 반란이라고 생각해서 천천히 읽으리라 다짐하며 구석에 밀쳐두기까지 했다.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도 많이 놀아본 언니들의 그저 그런 불륜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반전이다.
이야기는 송지연에게 방송국 작가의 섭외전화로 시작한다. TV <책하고 놀자>프로그램에서 재즈가수 제니퍼가 <줄리아나 1997>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줄리아나 1997>은 송지연이 20대에 쓴 소설이었다. 이대 나온 오 자매의 호화찬란한 '나이트클럽 줄리아나' 죽순이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었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문학 좋아하던 시절에 탄생한 책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작가의 꿈은 멀어져 버린 지연이었다.
지연은 그렇게 방송을 한 뒤 이번에는 프로그램 폐지라면서 신년회 겸 마지막 회식 자리를 초대받게 된다. 유명한 소설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라고 기대하며 나갔는데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당신을 어디서 봤을까요?
나 정말 본 적 없어요?
호기심에 이유가 없고 끌림에 원인이 없는 게 아니다. 대개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불륜에도 인과관계가 있지 않을까. 이십대의 어느 순간을 기억하는 남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이들의 운명은 20년을 거스를 정도로 질긴 것일까.
업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남성패션잡지 편집장 진수현과의 만남은 지연의 호기심을 끌고 만 것이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운명이라고 했던가. 둘의 대화는 마가 뜬 적도 없고 포인트를 놓치지도 않았으며 말이 겹치지도 않았다. 이미 기혼인 두 남녀 사이에 전기가 통한 것이다.
지연은 방송출연을 계기로 삶의 활력을 얻으면서 다시 소설을 쓰게 되면서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더구나 마법에 걸리듯 대화가 매끄럽게 통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통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통할 수도 있는 건가.
지연은 방송 출연이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생기가 살아나고 느려지던 삶이 빠르게 움직여 간다.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얼마나 있을까. 인생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남자, 선수 같은 수현의 출현에 지연은 당황하면서도 빨려들게 된 것이다. 적당한 매너와 적당한 대담함의 비율이 선수의 수준을 가늠한다면 수현은 선수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누구나 아픈 사연은 있는 법이다.
지연은 남편의 투자실패, 남편의 외도, 시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외롭고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한 번의 불륜을 저지른 적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글을 쓰고 살림도 챙기고 부업으로 자아실현까지 하는 바람직한 유부녀의 모습에 스스로도 뿌듯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남자의 등장은 삶을 달콤하게 하기도 하고 삶의 전율도 안겨 주기도 하고, 삶의 불안을 안기기도 하는데……. 엄마의 자리를 지킬 것이냐, 운명을 따를 것이냐.
'트렌디' 편집장 진수현은 특유의 유머와 장난기로 태생적인 외로움을 철저히 감출 수 있는 남자다. 어린 시절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일본인 양부를 얻게 되었지만 포근한 가정이 그리운 남자다. 양부에게 쫓겨 한국으로 오면서 잡지사 기자가 된 것이다. 가정이 그리운 수현은 약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결벽증을 가진 잡지사 오너의 딸과 결혼을 하면서 재벌가의 사위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겐 아무도 모르는 그리움이 감춰져 있었다.
떨떠름하게 펼쳤던 책이다. 하지만 40대 유부녀의 섹스라이프, 진부한 일상,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에 대한 보복 같은 일탈, 상처를 안은 영혼들의 끌림, 줄리아나 오 자매와 진수현의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묘한 매력을 준다. 더운 여름을 잊게 하는 마력이 있는 소설이다. 읽는 재미가 있다.
여자를 기억하는 남자와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미스터리처럼 흘러간다. 진부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같은 이야기다. 응답하라, 1997! 줄리아나클럽에서 출첵하던 언니들의 버전이다.
세월이 흘러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영원할 것이다. 따분한 일상에 청량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모든 끌림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호기심에는 이유가 있다. 누구에게나 아픔도 있고 그리움도 있다. 뭐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