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낙지의 슬픔 작가와비평 시선
장재덕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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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낙지의 슬픔, 장재덕, 작가와비평]바람 같은 시는 더위를 잊게 해!!

 

더운 걸 덥다고 하는 게 잘못은 아닐 것이다. 자꾸 덥다고 하니 더운 느낌이 살아나는 게 문제다. 시원한 책이 뭐 없을까. 얼음 퐁퐁 띄운 수박화채처럼 시원 달콤한 책. 찬바람 속 한기를 몰고 오는 오들오들 겨울비 같은 책. 서늘하고 오싹한 책이 그립다. 더위를 잊게 해 줄 바람 같은 시는 뭐 없을까.

바람

바람은 뭔가를 스치면서 철들어 간다.

갖가지 울음소리를 내면서

기쁨과 슬픔의 본질에까지 가 닿는다.

솔숲을 지날 때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과

재스민 향기의 부드러운 감촉에

몸 속 깊이 숨어 있던

속눈이 열린다.

(이하 생략)-37쪽

 

선풍기 바람이 북풍이라 생각하며 사는 요즈음이다. 갑자기 솔숲의 향긋한 바람이 그립다. 송림사에 가면 솔바람 풍경소리까지 덤으로 들을 수 있는데……. 송림의 솔내음 한 줌이 공기 중에 있지 않을까. 세상은 돌고, 바람은 움직이고, 냄새는 확산되고. 킁킁대며 송림사에서 불어온 솔내음이라 외쳐 본다. 들숨 쉬며 솔바람이라 불러본다.

 

겨울 바닷가에서

섣달그믐 해 질 녘에

칠포 앞바다에 갔었지.

해변은 한산했고

백구 몇 마리 날고 있었지.

모래 위의 발자국마다

소복이 쌓인 이루지 못한 꿈

올 한 해 후회 없이 살았니?

다그치듯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

(이하 생략)-28쪽

 

동해안의 칠포바닷가, 자주 가는 곳이다. 지금은 한여름이라 해수욕객이 붐빌 시간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파도를 보고 갈매기를 본다면 모든 게 깨달음인가 보다. 후회 없는 삶, 꿈을 향한 걸음들, 소박한 하루의 삶에도 감사하고 싶은 하루다. 칠포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던 봄날이 생각난다.

 

봄비

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새색시처럼 수줍은

5월의 봄비가

먼지 풀풀 나는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비는 서툰 아기의 걸음으로 다가가

시든 풀잎을 일으키고

엉겅퀴 무성한 고샅길을 지나

농부들의 푸석한 땅 속으로 스며든다.

(이하생략)-18쪽

 

엊그제 내린 비도 그립고 5월에 내린 봄비도 그립다. 봄비를 그리는 농부의 마음은 감사와 고마움이겠지. 지금 이 도시에 비가 내려준다면 난 감동의 비, 은혜의 비라고 부르고 싶다. 공중의 후끈한 기운을 모두 몰아 줄 한바탕의 소낙비가 그립다. 정말.

시집 뒤쪽에 있는 명상시는 읊조리며 음미하며 되새김질하게 된다. 집착에 대하여, 괴로움에 대하여, 나무와 숲, 두 스승, 시각의 횡포, 음식, 개, 긍지, 대자유, 사랑에 대하여 등……. 알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명상시들…….

많은 것을 잊고 사는 요즘, 시원한 바람 같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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