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테이 마토스 - 암과 함께한 어느 철학자의 치유 일기
백승영 지음 / 책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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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테이 마토스]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고, 폭풍우 뒤엔 무지개~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는 그리스 경구다.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는 의미다. 유행가로 치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고, 사자성어로 하면 고진감래다. 신은 견딜 만큼의 고통을 준다지만 고통과 마주한 입장에서는 항변하게 된다. '왜 착하고 선량한 나에게 이런 일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가족의 의무를 다한 나에게 이런 아픔을 주시나요?' 라고.

이 책은 철학자의 암 치유 일기다. 고통을 견뎌내는 모습은 같지만 철학적인 사유가 남다른 이야기다.

생각과 말과 실천의 일치를 자신의 품격이라 믿으며 살아왔던 저자의 삶에 느닷없이 찾아온 유방암. 모든 질병은 예고를 한다지만 맞이하는 사람은 늘 준비가 안 된 모습이다. 더구나 암은 누구에게나 황당함을 넘어 충격을 준다. 암 치료가 가능해졌다지만 아직은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논문을 쓰고 외부 강의까지 하며 일중독에 파묻혀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말이다. 수술을 피하고 싶어 여러 병원을 다녀 보지만 명백한 일임을, 수술해야 함을 확인할 뿐이었다.

 

하이데거라는 독일 철학자가 <존재와 시간>에서 '죽음을 선취'해보라고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내가 바로 다음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일상에서 그냥 스쳐 지나갔거나 간과했던 가장 중요한 것, 즉 삶의 본래성에 대한 의식,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의식, 자신의 본래적 모습에 대한 의식 등이 솟아오른다고 한다. (37쪽)

 

평소 유언장을 작성해보고, 관에 들어가 보는 죽음 체험을 하는 이가 있다지만 일상에서 죽음 체험은 쉽지가 않다. 현실을 살고 미래를 꿈꾸기도 바쁜 일상이기에.

죽음을 생각해본다는 것은 내 삶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돌아보고, 내면을 비춰보고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고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을 만났을까. 니체를 전공한 저자이기에, 니체의 긍정 철학도 더욱 절절히 와 닿았을 것이다.

 

내게는 니체의 사유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나'는 처음부터 '공동의 나', '관계적 나"라는 것, 그래서 나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타인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나를 사랑하려면 공동 협력자인 타인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들의 존재 자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누구 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고 누구 하나 없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119쪽)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공동체의 기본 덕목이다. 공동의 나, 타인에 대한 사랑, 긍정의 힘, 모두 매력적인 말이다. 내 존재의 이유가 공동체,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말이 주변을 다시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어디에나 친구는 있고, 어디에나 스승은 있다고. 암도 인생의 친구요, 스승이라고.

소소한 아픔이라도 아파보면 철들고 겸손해지는 게 인지상정일까. 아파보면 의외로 가진 게 많다는 것, 분에 넘치게 대접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는 걸까. 암은 비싼 대가를 치루며 긍정의 기능도 한다. 죽음 앞에는 장사도 없다. 아파보면 암이 보낸 경고가 무수히 많았음을, 몸이 보낸 예고가 무수히 많았음을 알게 된다는데……. 평소에 내 몸이 보내는 적신호를 무시하지 않아야겠다. 좀 더 예민하게, 세심하게 내 몸과 마음을 보살펴야겠다.

 

3~4년 전 불청객처럼 찾아온 유방암을 치료하고 이겨낸 과정들에 대한 철학자의 사유가 담겨 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천형이고 견디기 힘든 법인데 그 과정들을 버티고 이겨낸 승리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다. 여러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역시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다, 파테이 마토스!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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