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 세상의 안부를 묻는 거장 8인과의 대화
안희경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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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티스트가 있다]세상의 안부를 묻는 거장 8인과의 대화

 

예술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행위예술이나 전위예술에 대한 무지 탓에 행위예술을 보고 있으면 아직은 낯설고 물설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행위예술이나 전위예술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이다.

세계 유명 미술관, 여러 비엔날레와 카셀 도쿠멘타에서 만날 수 있는 현대미술계의 거장 8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단한 작가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물과 겉치레를 벗은 진솔한 이야기, 권위와 관습을 깨고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0년 5월호부터 2011년 6월호까지 < 월간미술>에 연재된 현대미술계의 거장들과의 만남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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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실험정신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녀는 몸으로 관객을 깨우는 행위예술가다. 자신의 예술은 에너지이고, 자신의 관객은 세상을 변화시킬 한 명의 개인들이라고 했다는데...... 2010년 뉴욕 모마에서 <예술가가 여기 있다>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850만 명을 끌여 들였기에 한 도시를 뒤흔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접 미술관의 문을 열고, 문을 닫는 순간까지 관객과 소통한 것이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아 예술가와 마주한 관객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상대의 눈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주잡은 손끝으로 상대의 고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거울을 보며 나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거울 속의 나, 거울 밖의 나, 그렇게 서로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순간이었는데…….

 

<예측 불가>. 좁은 통로에 벌거벗은 남녀 예술가가 25cm정도 떨어져 마주 보고 있다. 관객은 그 사이를 지나는 행위를 하는 작품이다. 예술가와 관객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순간, 전혀 예측 불가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두 남녀를 스쳐 지나치는 순간의 묘한 느낌이 예술일까, 아니면 그 찰나의 화면이 예술인 걸까. 궁금해진다. 가장 민망한 작품이다.

 

나는 오브제입니다. 전시 기간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제가 집니다. (책에서)

 

<리듬 0>에서는 자신을 오브제로 관객들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다.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관객에게 온갖 재료와 도구를 주면 관객들은 예술가를 오브제로 삼아 마음대로 벗기고, 칠하고 찢기고 하는 것이다. 가시가 박힌 장미 줄기, 붉은 페인트, 사진, 목걸이, 폴라로이드 카메라, 채찍, 총, 칼 등이 주어졌다는데……. 눈물을 머금고 있는 반라의 예술가는 그대로 작품이 되는 순간이다. <리듬 0>대신 <안쓰러움>이라고 붙이고 싶은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 누드가 많고 관객과 마주하는 것이 많다. 옷이 주는 사회적 의미, 그 기호들이 주는 편견과 선입관을 벗기고, 원초적인 모습으로, 민낯으로 느낌을 통하고 싶었나 보다. 직접 작품을 대했다면 상당히 민망할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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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가 집중하는 것은 교감이었다. 완전한 소통,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을 강화하여 시간을 늦춰내는 과정에서 상대와 환경과 일치하는 교감이 완성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느리고 또 느리게 과정에 집중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품을 넓혀야 한다. (책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그는 미술관보다 대중의 생활공간에서 미술의 경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차역이나 버려진 공간에서 전시를 열기도 한다.

 

<페르손>에서는 눈이 훼한 아이들의 흑백사진에 알전구를 비춤으로써, 전쟁터나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하게 한다. 과거의 흔적 속에서 시간여행을 하며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과거의 고백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볼탕스키 역시도 <페르손>을 통해,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과거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를 살게 하는 치유의 과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아네트 메사제. <여자-남자>에서 보이는 모습은 굉장히 도도하고 용기 있는 예술가다. 여자의 성기 위에 남자의 성기를 그려 넣다니, 화장실 벽에 지어도 지워도 새겨지는 낙서 같은 느낌이다. <나의 소원들>, <나의 트로피들>, <엄마, 그녀의 초록 드레스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신체 일부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남녀 성기에 조차도……. 아네트 메사제는 인간의 몸 자체가 오브제가 된 원초적인 모습을 보며 관객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창조하기를 원할 뿐이라고 한다. 관객의 느낌이 이야기가 되는 작품들이다.

 

윌리엄 켄트리지……. 조국인 남아공의 부조리,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불평등을 고발하고 인간착취를 일깨운다. 동시에 물질 사회,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인간의 손맛에 길들여진 감성을 깨우고 이성을 촉구한다. 백인으로서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그가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드로잉의 힘으로 세상을 깨치고 치유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도 넓은 의미의 아프리카인이다. 그의 드로잉에는 목탄화와 색연필이 많이 쓰였기에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전해진다.

 

키키 스미스……. 그녀는 휴머니스트가 아닌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불리길 원한다. 이농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 여성의 마음으로 세상을 해방시키려는 예술가다. <소전>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 근원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난다. 죽음과 삶의 순환, 머물다 가는 삶을 표현했다는데…….삶은 순환일까. 윤회이고 영속적일까. 또 다른 생이 지속되는 무한의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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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의 미술. 가장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행복한 세상을 보여주고 갈등의 해소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일까. 어린이 그림 6만 점을 모아 만든 <행복한 세상>, 어린이 직접 참여한 <평화를 위한 소품>, <산과 바람>, <모든 것을 던지고 더해라>, <꿈의 다리>, <동그라미>, <십만의 꿈> 등에서 작은 그림들이 모여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개개인이 모여 세상을 이루고 우주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그의 철학은 대상을 흔들어 깨워주는 것, 서로를 이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린이 그림들이 모여 큰 작품으로 완성체를 이룬 모습에서 예술의 힘을 느낀다. 저자의 말대로 작은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모습처럼 신기하고 감동적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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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 윌…….일상에서의 경험을 사진으로 재연하는 작가다. 인종, 빈곤, 소외, 문명, 개발 등의 이슈가 일상에 놓인 그 모습 그대로 포착되어 있기에, 다큐멘터리 정신이 살아 있다는 평을 받는다. 위트와 유머가 있는 일상의 우연성들이 깨알 재미를 준다. 작업의 우연성이라지만 우연으로 만나는 필연도 담았을 것이다. 우연도 반복되면 운명이고 숙명이 되고 인연이 되는 게 세상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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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현대를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다. 대중이 즐기는 만화, 음악, 패션 등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다. 만화적 요소가 가득한 판타지<미스 코2>, <<플라워 마탕고>, <가와이-바캉스: 금빛 왕국의 여름휴가>, <폼과 나> 등을 보고 있으면 동심의 세계로 들어온 듯하다.

 

거장 아티스트의 만남을 보면서 선입견, 편견, 몰상식, 사색의 시간,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인간 본질에 대해, 통념 깨기, 내면으로 가는 여정, 동심의 진화, 농담, 왜곡 등을 생각하게 된다. 흔적과 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됨도 깨치게 된다.

똑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거장 아티스트들의 예술을 만드는 눈빛, 손짓, 감각, 영혼은 남다른가 보다. 이들의 예술을 향한 몰입과 집중,  관찰과 통찰이 있기에 독창적인 예술이 존재할 것이다. 거장의 메시지가 너무 거창한 걸까.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작품들도 있다. 아직 이해가 부족한 걸까. 선입견의 틀을 깨지 못하는 걸까. 어쨌든 세상의 안부를 묻는 거장들과의 대화는 신선하고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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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저널리스트 안희경이다. 8년 동안 불교방송 PD로서 시사·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고 한다. 최근에는 세계화 추세, 자유로운 자본 이동으로 생존 경쟁의 치열함, 삶의 조건들의 불안함을 조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데…….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도 허울을 벗은 날것 그대로의 여인들, 불안한 삶 그대로의 아이들, 허식을 벗은 민낯 그대로의 남녀 등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느끼게 하거나 왜곡된 진실을 생각하게 하고, 때로는 작은 것이 모여 큰 힘을 이루는 것도 보여준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도 있지만 모두 빛나는 실험정신의 결과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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