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인 수술 보고서 ㅣ 시공 청소년 문학 56
송미경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광인수술 보고서]광인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
전혀 색다른 소설이다. 광인수술 보고서. 미친 사람을 수술하는 장면을 환자가 직접 기록했다는 설정이 그로테스크 하다. 자신의 의식과정을 고스란히 적은 듯 세세한 사고과정들이 너무나 진짜 같고 사실적인 느낌이 든다. 광인이라면 정신분열증일 테고 평범하지 않은 사고의 흐름을 지녔을 것이다. 그런 미세한 흐름들을 놓치지 않고 그려낸 소설이 청소년 문학이라니! 읽을수록 작가의 세심한 관찰이 놀랍도록 섬뜩해지는데…….
본보고서는 환자 이연희가 직접 작성한 수술 후기를 집도의인 본인 김광호가 각주와 주석으로 보충한 것임을 밝힙니다. 한 군데도 빠짐없이 함께 읽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책에서)
소설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광호와 그의 환자인 광인 이연희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광인수술에 동참하면서 그 과정들을 기록한 것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환자 이연희는 정상인과 광인의 경계를 뛰어넘어 광인의 경지에 거의 다다른 '광기말기'다. 광기의 종말은 짐승의 단계이다. 잘 모르지만 이후로는 짐승처럼 뛰어다니거나 들판의 풀을 뜯어 먹거나 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내가 언제부터 광인이었고 언제부터 다른 사람들과 달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의사가 내게 광인이라고 말한 날부터 나는 내가 광인이라고 믿었어요.(책에서)
이연희에게는 특이한 것들이 있다. 남들과 달리,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보고,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세밀하게 기억하는 증상이 있다. 이야기를 하면서 동공의 움직임을 보는 것을 즐기고, 얼굴에 난 점의 움직임이 신기해서 볼 뿐이지만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옆길로 새거나 엉뚱한 곳에 집착하는 증상이 심하다.
의사는 정상인이 동영상으로 뇌에 저장하면 이연희는 사진으로 저장한다는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연희의 시간 흐름에 따른 기억들은 분명 남들과 달랐고 독특했으며 소위 정신분열 증세였던 것이다.
초록색 스웨터에 관한 기억, 발톱이 빠진 추억,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뿌리째 뽑고 싶은 충동이 일던 것, 친구들의 놀림에 개 짖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던 일 등은 남들의 눈에는 미친 사람으로 보였을 테니.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평상적인 일이지만 남들은 집착이며 광기로 보았다. 그래서 가족들의 동의하에 광인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담당 의사인 김광호는 환자가 기억할 수 있게 국소마취를 하면서 수술을 시작하게 된다.
환자를 딱딱한 책상에 눕혀 수술을 하다가 수술 중에 다투기도 하는 의료진들. 다시 노래를 부르며 의기투합하는 모습에 누가 광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이들에 의해 연희는 학교에서 네발 달리 개처럼 기었다. 아이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먹고 개소리를 내면서 아이들의 애완견 푸들이 되어갔다. 그렇게 개판 같은 학교에서도 연희는 비웃음거리가 될지언정 남을 비난하진 않았는데……. 어쨌든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연희는 이제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 짖는 소리도 내지 않고,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도 않는다. 의사는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하고 연희는 뇌의 주름이 지워지고, 기억이 지워지고, 과거의 시간들이 지워졌음에 만족한다. 더구나 수술을 이겨낸 용감하고 특별한 아이라며 스스로 뿌듯해 하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연희의 외침이 인상적이다.
도대체 이 수술은 어떤 사람이 받아야 하는 거지요? 누가 광인이고 누가 정상인이라는 걸까요?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 자신이 아니라, 그런 나를 보고 즐거워한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닌가요? (책에서)
광인수술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환상적이고 실험적인 수술이라니! 충격이다. 수술이 치료의 한 방법이기에 광인수술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광인수술이 가능할까. 광인의 뇌를 열어 수술한다는 것이 더 미친 짓 같은데……. 광인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개 같은 세상,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기도 하기에 이 소설의 메시지가 의미 있지 않을까. 끔찍하고 섬뜩하지만 시사 하는 바가 큰 소설이다. 누가 미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