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
박성웅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기생,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나쁜 놈, 좋은 놈, 위대한 놈!

 

기생 寄生 Parasite

기생이란 말의 어감은 썩 좋지 않다. 바람직한 삶인 자생도 아니고 공생도 아니다. 희생은 더욱 아니다. 기생은 남에게 기대어 빌붙어 사는 삶, 그러면서도 억척스러울 정도로 끈덕지기에 밉상이기까지 하다. 기생충을 박멸하려고 기생충 약까지 먹어야 하는 실정이다 보니 기생이란 말이 더욱 혐오스럽기까지 했는데...... 이 책을 통해 기생의 삶에 생명진화의 비밀, 기생충이 저지르는 숙주조종의 비밀, 치매 치료제에 이용되는 기생충의 이야기 등을 통해 자연계에 도움이 되고 있음에 놀랐다. 기생충의 야누스적인 면, 기생충의 양면성을 봤다고 할까.

 

기생은 숙주에게 그 삶을 의지하게 된 단순한 퇴화가 아니며, 진화의 긴 역사를 통해 엄혹한 자연의 선택을 받아온 삶의 방식이다. 또한 생명 40억년의 역사에서 기생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미토콘드리아 이전 단계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생충은 그저 하찮고 더러운 생명체,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과 인류 진화의 파트너로서 필요불가결한 존재이다. (책에서)

 

세계 60억 인구 중에서 3억 명 이상이 심각한 기생충 감염 상태라고 한다. 특히 회충에 112억 명, 편충에 8억 명, 구충에 7억 4천만 명 정도가 감염되어 있다. 어마 무시한 숫자다. 인간에 기생하는 기생충만 해도 392종이라는데. 헐~ 생태계 내 생물의 40% 정도가 기생생활을 영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는데…….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진핵생물의 등장, 그리고 엽록체를 가진 식물들의 등장은 지구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진핵생물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다세포 생물,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군을 탄생시켰다. 식물 역시 지표면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가며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 대기를 육상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갔다. 결국 기생충과 숙주의 공존이 없었다면 지금의 지구, 그리고 생태계가 형성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책에서)

 

기생충으로 인해 생물 간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 있다. 기생충이 숙주를 조종한다는 대목에서는 기생충의 천재성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연 가시는 귀뚜라미 등, 사마귀 배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성충이 된다. 이때 연가시에 감염된 곤충이 연가시의 산란처인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 물에 빠진 곤충은 민물고기의 먹이가 되어 민물고기 집단이 섭취하는 열량의 60%를 충족시킨다고 한다. 연가시에 감염된 귀뚜라미가 민물로 간 까닭이 연가시 때문이라니! 비행기를 조종하는 무선조종기 같다.

 

얼룩말 줄무늬 가설실험에서 검정말, 흰말 보다 체체파리가 붙은 숫자가 확실히 적었다니. 얼룩말의 줄무늬가 체체파리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이라니. 종족보존을 위한 얼룩무늬의 발상은 본능인 셈이다.

 

기생충이 개체의 다양성, 개체의 먹이사슬을 위해서 공로가 크다니 놀랍다. 기생충의 다양성이 높은 생태계일수록 건강하고 질병 등에 잘 적응한다는 사실은 사회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건강한 것처럼 말이다.

 

진화의 원동력인 기생충이 없었다면 性도 없었고, 인류 역사 또한 다른 양상을 띠었을 거라 말이 조금은 이해된다. 기생충을 이용한 친환경농법, 기생충을 이용한 생명의 오염도 측정, 기생충을 이용한 치매와 알레르기성 질환 치료제로서의 가능성 등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기생충 제국>의 저자 칼 짐머의 인터뷰, <전염병의 시대> 저자인 폴 이왈드의 인터뷰, 도 인상적이다. 남수단까지 날아가 촬영한 메디나충 감염자의 발등 부위로 머리를 내미는 메디나충의 모습은 충격이다. 개구리를 기형으로 만들어 버리는 리베이로이아, 길이가 25m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광절열두조충, 숙주의 생식기를 거세해버리는 막강 기생충, 모두 충격이다.

남의 식탁에서 먹다(parasitos)라는 말에서 연유했다는 기생충. 어쨌든 없어야 할 존재도 있지만 필요한 존재도 있음을 보며 놈놈놈을 생각한다. 어디든 좋은 놈, 나쁜 놈, 위대한 놈은 사는 세상임을 깨치게 된다. 놈놈놈이 세상이치임을 깨치게 된다.

 

학수고대하던 책이다. EBS다큐프라임에 나왔던 내용, 게다가 저자에는 재치 있는 글 솜씨를 지닌 서민 교수가 있기에 기대했던 책이다. 어려운 과학 서적을 쉽게 푼 책들, 건강 밥상을 위한 책들을 펴내는 MiD.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서 정말 기다렸던 책이다. 기대 이상이다. <기생충 제국>, <전염병의 시대>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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