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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 한국과 베트남의 비극적 만남과 위대한 반전
김연정 지음 / 매직하우스 / 2014년 5월
평점 :
[야누스]두 얼굴을 가진 사회, 선과 악의 양면성을 들춰내는 소설!
개개인에게도 야누스적인 면이 있지만 기업이나 국가에도 야누스적인 면이 있을 것이다. 선과 악, 전쟁과 평화, 천사와 악마의 탈을 쓴 양면성은 늘 정체를 알 수 없게 하기에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데......
이 소설은 우리사회의 현재와 과거를 관통하며 야누스적인 자화상, 양면적인 민낯을 끄집어내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야누스도 다룬다. 다문화 정책의 양면성, 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영면성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황상이 주는 달콤한 꿈과 꿈을 짓누르는 현실과의 괴리는 그대로 절망감을 선물할 텐데......
소설의 내용처럼 외국인 노동자, 특히 불법 체류노동자를 고용해, 그들의 약점을 잡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들이 아직도 많을까. 불쌍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유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텐데…….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이다. 같은 인간으로 대할 수는 없는 걸까.
한국이 미국의 요청으로 최초의 해외파병을 했던 월남전 파병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야누스는 도대체 무엇일까. 만주군 전력에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박정희의 야누스는 무엇일까. 남베트남 대통령인 응오딘지엠 대통령의 야누스적인 면은 무엇일까.
소설은 베트남전에 파병한 대한민국의 야누스도 밀도 있게 짚어낸다.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대통령의 죽음에 얽힌 양면성도 이야기한다. 미국의 보호와 응원을 받으며 남대통령으로 세워진 그는 느닷없이 죽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베트남 전쟁을 위한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고, 자신의 잇속만 챙긴 부패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응징이라는 설도 있다.
1차 베트남전은 종교를 둘러싼 프랑스와 베트남과의 싸움이었다. 프랑스의 무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베트남은 강력히 싸웠지만 프랑스의 식민지가 전락하게 되는데......그 이후 베트남은 프랑스로부터 경제수탈, 전통문화 파괴 등의 굴욕을 당해야 했다.
2차 베트남전은 통킹 만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매독스 호를 북베트남이 공격함으로써 일어났다. 이를 빌미로 미국은 군사개입을 하면서 제2차 베트남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이전에 알았던 베트남전에 대한 진실은 공산화를 막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었고,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었다. 그 대가로 카이스트를 세우고, 미국의 원조를 받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일부가 쓰이기도 하고 군수물자 납품, 군장비의 현대화를 낳기도 했다. 베트남전을 치른 후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5배로 향상했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세우는데 약간이나마 기여했다. 하지만 전쟁 중 양민학살 등은 베트남과 한국의 비극일 텐데…….
자유 수호를 위해, 경제발전을 위해 파병했다는 이면에는 국군의 목숨을 담보로 한 값싼 용병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공산화의 도미노 현상을 우려해 베트남파병을 요청했다는 미국도 알고 보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달러패권주의를 확장시키기 위한 미국의 자작극이었다는데……. 자국의 군수산업을 육성하고 강대국임을 입증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어느 나라든 자국의 이익이 없으면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모든 전쟁에 앞서 가치 지향 국가가 아닌 패권 국가들은 더욱 자국의 이익을 따질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전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의 양면성, 정치 지도자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양면성, 일상에서의 나의 양면성도 생각해 보게 된다. 혼란과 오해를 초래하는 양면성, 누구에게나 있고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어느 면이 진실일까. 아니면 둘 다 진실일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한국과 세계를 아우르는 양면성에 대한 소설을 읽으니 박식해지는 느낌이다. 기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