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열반 - 김아타 산문
김아타 지음 / 박하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장미의 열반]온에어, 해체, 자연드로잉.... 대단한 아티스트!

 

 

제목에서부터 구도자의 삶이 느껴진다. 장미의 열반. 장미를 태우면서 얻은 깨달음…….

책표지엔 하얀 캔버스가 길쭉하게 늘어서 있고 하얀 캔버스엔 앞에 줄지어선 나무의 줄기와 잔가지들이 채우고 있다. 캔버스엔 그대로 자연이 그려내는 숲속 풍경화다. 자연과 그림이 하나가 된 순간이랄까. 나중에 봤더니 저자는 이것을 <자연드로잉>이라 했다. 표현이 절묘하다. 아마 노자가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났다면 자연을 가장 잘 따르는 예술가라고 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상사는 이치가 그렇고, 지혜란 놈이 그렇다. 삼십 년 전, 열이레를 말린 장미를 우연히 태우던 날, 장미의 열반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길을 가르쳐주었다. (책에서)

 

 

김아타 작가를 처음 알았다. "철학적 사고가 극히 참신한 아티스트"라며 <뉴욕타임스>의 문화면에 소개되기도 했던 작가라니. 그것도 두 페이지에 걸쳐서 말이다. 헐~ 거제에서 태어나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라는 글을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그가 사진에 심취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모든 작가들이 개성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하겠지만 유독 그에게 이런 찬사가 주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위적인 예술가인 그는 한국에서는 늘 이단아, 경계에 선 아티스트였다고 한다.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빨리 사라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천천히 사라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온에어>, 나신들이 엎드려 있는 <해체>, 자연이 그려내는 <자연드로잉>, <인달라>, <뮤지엄>......

 

겨울 논두렁에서 물에 빠지거나 논두렁에 널브러진 나신들의 사진. 그 속에 한 아이가 서 있다. "엄마 집에 가~"라고 외치며 말이다. 나신이 해체된 겨울 논두렁에서 느꼈을 아이의 감정은 무엇일까. 지금은 성장해서 작가를 뵙고 싶다는데...... 물에 빠져 죽은 듯이 있는 엄마의 모습과 아이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 같다.

 

 

인간문화재인 신딸 김금화의 사진. 정신을 찍고 싶었던 작가는 설득 끝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결국 찍은 건 김금화의 정신이 아닌 기라고 한다. 정신과 기의 차이는 무엇이기에. 정신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저자는 정신이 정중동의 세계일 때, 기는 휴화산처럼 잠자고 있어야 정신이 가장 명징해 진다는데……. 옛날 펑하고 찍던 수제 카메라를 들고 검은 천을 덮고 사진을 찍은 모습이 상상이 간다. 그런 사진 찍어 본 적은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봤던 모습인데...... 일반 소형 필름의 53배가 넘는 필름 사이즈라니, 정말 대단한 무게다.

 

절에서의 생불들.

절에서 순수의 색을 보고 싶다며 모델의 머리를 밀고 알몸으로 법당을 채운 사진. 색을 뺀 무색의 법, 붓다의 정신, 해탈의 경지를 담은 생불의 모습들은 그대로 장미 열반과 닮은 듯하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태우고 자기를 죽여야 해탈이 되는 경지…….

 

 

길에서 만난 리틀 붓다는 귀엽기까지 하다.

청사포 해변을 배경으로 검은 바위 위에 황금으로 채색된 연꽃 좌대를 놓고 그 위에 파르라니 머리를 깍은 아이가 앉아 있다. 앞에는 유리가 건물처럼 세트되어 있다. 마치 쇼윈도처럼. 청사포에서 스카우트한 아이다. 부모의 허락을 받아 머리를 깎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대로 리틀 붓다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연드로잉.

하얀 캔버스를 세워두면 그대로 자연이 몰려와서 그려놓고 간다. 비와 바람, 나무와 새, 꽃과 나비, 해초와 물고기, 태양과 구름. 누구든지 와서 놀다가 흔적을 남기고 가면 그대로 자연 드로잉이다. 시간대에 따라 배경색이 바뀌기도 하고 대상이 바뀌기도 하는 천연의 드로잉이다.

간혹 하늘을 보며 자연이 그려대는 드로잉을 감상한다. 날씨에 따라, 바람의 세기에 따라 하늘 캔버스에는 구름의 양도 다르고 새들의 움직임도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배경색마저 바꿔가며 분위기를 내는 하늘드로잉을 난 자주 감상하는 편이다. 숲에서 가지 사이로 난 하늘을 보면 나뭇가지가 하늘을 조각내는 나뭇가지드로잉도 즐긴다. 거대한 하늘을, 어마어마한 우주를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조각을 내고 작살을 내고 있는 나뭇가지드로잉은 즐기노라면 통쾌하고 상쾌하다. 하늘과 우주에 대항하는 나뭇가지의 반전 같아서 말이다.

 

작가의 이력이 대단하다.

2004년 세계적인 사진 전문 출판사인 뉴욕의 애피쳐 파운데이션에서 사진집 <뮤지엄 프로젝트>를 발간했다. 그것도 한국인 최초로 말이다.

2002년 런던 파이돈 프레스에서 뽑은 '세계100대 사진가'에 선정됐다. 2010년 프랑스의 로레알 파운데이션에서 인류 10만년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책으로 제작한 <100,000 Years of Beauty>에 작품이 수록되었다. 2010, 2011년 두 권의 미국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었다. 2008년 조선일보 주최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미술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수상경력도 대단하지만 소장된 곳들도 어마어마한 곳들이다.

 

 

지하 막장을 찾고, 정신병동을 찾고, 소아백혈 병동을 찾고, 절을 찾고 해변을 찾던 모든 과정이 정신을 찍고 자유를 찍고 싶었던 연유라니……. 수행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사진에 잘 담은 듯해서 한참을 보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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