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에서 중국을 만나다 - 예술품으로 본 동서양의 문명 교류
중국 CCTV 다큐멘터리 제작팀 지음, 김원동 엮음 / 아트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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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중국을 만나다]중국과 프랑스, 예술작품으로 본 두 문명 산책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만날 때면 마치 시간여행자의 느낌이다. 홀로 과거 속으로 걸어가 옛 사람을 만나고, 옛 예인과 장인들을 만나고,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과 소박한 서민을 만나기에 감동과 전율이 멈추질 않는다. 특히 박물관 산책은 내가 몰랐던 과거의 시공 속에 존재했던 예인들의 삶과 역사와 고스란히 조우하기에 그 느낌은 보다 강렬하다. 예술가의 혼, 권력의 자취를 마주할 수 있는 미술관 산책은 그래서 언제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뿜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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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중국을 만나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자금성과 루브르의 만남, 갑골문자와 쐐기문자의 만남, 나폴레옹과 강희제의 만남, 고대 그리스 여신과 고대 중국의 선녀의 만남, 함무라비 석비와 사기정의 금문의 만남, 중세의 기독교와 당의 불교의 만남,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원나라 예찬의 만남, 17세기 렘브란트와 청의 팔대산인의 만남, 부셰의 그림 속 중국과 <옹정행락도> 속 유럽의 만남, 푸생의 고전주의와 조맹부의 당송 계승의 만남, 들라크루아와 서위의 만남, 코로의 자연주의와 쉬베이홍의 사실주의의 만남 등 수많은 만남을 보면서 도도한 장강과 고고한 세느강의 만남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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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가 흥미롭다.

1793년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자, 프랑스 제1공화국은 왕궁이던 루브르궁을 '중앙예술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국왕과 귀족들의 예술 소장품들을 전시해 일반 시민에게 공개해 예술 감상조차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나타내려 했다. 나폴레옹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미테랑 정부는 '그랑 루브르'계획에 따라 루브르 박물관을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만들고자 했다. 1989년 중국계 미국인인 이오밍 페이의 건축설계도에 따라 새 출입구를 유리 미라미드로 만들었다. 당시엔 프랑스 국민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전시장의 크기가 두 배로 확장될 수 있었고 채광량이 훨씬 늘어난 현대적 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미궁처럼 좁고 복잡한 224의 방을 105만 점의 작품이 가득 채우며 세계의 관객들을 끌어 모으게 된 것이다.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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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원은 1924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나고, 1925년 자금성의 신무문에 '고궁박물원'이라는 현판이 걸리면서 시작되었다.  루브르 등 서양의 박물관 시스템을 배워 지은 중국 최대 규모의 고대 문화 박물관이라고 한다.  왕과 귀족이 쓰던 귀중한 물건, 수집품 등이 황궁의 빗장을 열고 서민들과 마주한 것이다.

 

건륭제와 나폴레옹의 비교도 흥미롭다.

건륭제가 자신의 정벌전쟁의 공로를 내세우기 위해 프랑스와 루이 15세에게 자신이 승리하는 장면을 그린 동판화를 특별히 주문했다. 이 동판화는 황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의식 같다. 더구나 멀고 먼 이국 땅 프랑스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동판화를 주문 제작한 것은 저자의 말대로 과시욕이 아닐까. 자신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제국을 넓히고 싶은 욕망을 담은 황제의 과욕일 것이다. 어쩌면 유럽까지 정복하고 싶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은근히 보여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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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루브르 궁 광장에 자신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작은 개선문(카루젤 개선문)을 짓도록 했다. 개선문 상부에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가져 온 청동 말 네 마리가 장식되었는데, 1815년 왕정복고를 기념해 베네치아에 반환했다고 한다.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만이 통과할 수 있었던 개선문.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의 공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개선문을 만든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동쪽 카레 궁정의 페디먼트의 중앙에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조각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 자리에 아폴로 신이 조각 되어있다.

 

나폴레옹이 자신을 ‘전쟁의 신’으로 포장하고 싶어 했다면, 건륭제는 ‘청렴한 문인’으로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건륭제도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그의 자취가 오래 남기를 강렬히 원했다. (책에서)

나폴레옹이 그림과 조각을 많이 남겼다면 건륭제는 그림과 글을 많이 남겼다.

예술을 통한 두 권력자의 영웅심리, 과시욕의 발로가 아닐까. 

 

루브르 박물관의 서아시아 관에 가면 세계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 기록이 있다. 설형문자인 쐐기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펜을 만들어 수를 센 흔적이라고 한다. 반면 중국에서는 은나라의 갑골문자가 보존되어 있다. 갑골문자는 거북의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겼으며 전쟁이나 제사를 앞두고 길흉을 점친 흔적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가 신과 소통하기 위한 문자였다면, 반대로 서아시아의 쐐기문자는 실용 위주의 문자다. 실제로 어느 수메르 신전에서 최초로 발견된 점토판 문서 역시 행정 문서였다. (책에서)

 

사고방식의 차이가 글자에서도 드러나다니. 어쩌면 정신문화를 중요시하는 동양문화와 물질과 실용을 중시하는 서양문화의 차이가 태초부터 있었던 건 아닐까. 최초의 글자 사용에서도 그런 차이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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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세계관 차이가 예술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 여신은 새의 날개를 정교히 달아 생동감이 있고 중국은 하늘거리는 천을 휘감고 하늘로 올라갈 뿐이다. 아니면 구름을 탄 선녀의 모습이다.  건축의 기둥에서도 고궁박물관은 둥근 모양의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담백한 여백미가 있지만 루브르 박물관 기둥은 정교하고 사실적인 조각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고대 중국인들이 추상적인 선을 중요시 했다면 그리스인들은 사실적인 형체를 추구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농업국가여서 농민을 잘 다스려야 했다. 한 해의 수확을 위해 늘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모호하거나 추상적이거나 어렵게 느껴질수록 하늘의 뜻에 더 가깝게 여겼다고 한다. 반면에 유럽은 농업보다 상업이 더 발달했기에 스스로의 힘을 더 의존해왔다고 한다. 그리스 신들이 굉장히 인간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 중국의 선녀가 천상에 속한 신비로운 여인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자연과 개인,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가 농업 중심 사회, 상업 중심사회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새삼 새롭다. 동양과 서양의 유전자 차이, 두 세계의 고유한 빛깔의 차이는 세월이 흘러도 근본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될 것 같은데...... 외양은 바뀌어도 본질은 유구히 남아 각자의 모습을 지켜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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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고궁박물원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루브르 박물관의 만남은 커다란 두 문명의 충돌이다. 유물, 예술품에는 두 나라의 권력의 역사와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삶은 예고대로 흘러가지 않는 드라마 같다. 두 문명 속에서 피어난 예술품들이 말하는 역사의 흥망성쇠, 문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거대한 물줄기가 부딪친 듯 격렬하게 남긴 흔적은 예사롭지 않다.  단순한 두 나라의 과거의 예술 혼, 과거의 역사의 조우를 넘어선 장대한 동양과 서양 문명의 발자취와 흔적들이었다. 두 문명의 고유한 리듬과 박자가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며 흐르다가 새로운 시너지를 받는 모습은 상상 이상이다. 특히 거대한 중국의 영욕의 시공간을 햇빛 속으로 드러낸 작품들이 많아서 낯설면서도 반가운, 잊히지 않는 예술품들이 한아름이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중국의 고궁박물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서로 다른 채색미, 균형미, 정신을 통해 역사, 인물, 영웅심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박물관 여행자가 되어, 시간여행자가 되어 두 문명의 교류를 체험한 시간, 잊히지 않는 비교 감상의 시간이었다. 

 

 

중국 CCTV와 프랑스가 합작해 3년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한 다큐멘터리 12편인 <루브르 박물관, 자금성을 만나다>. 2012년 2월 중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방영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이 12편의 다큐멘터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거대함과 치밀함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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