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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판사유감]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현실~
법정에서 다루는 범죄이야기가 살벌할 줄 알았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람들을 상대로 매일 설전을 벌이다보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었다. 어마무시한 사람들을 상대로 매일 법정에 선다면 정신이 온전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을보다 갑의 위치이건만 그리 부러워보이진 않았는데…….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현실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짧은 에피소드들이기에 순서 없이 눈 가는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가 말하는 법원 풍경은 어떨까. 살벌함과 공포만 있을까. 감동과 웃음은 없을까.
<막말 판사의 고백>이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막말은 누구에게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막돼먹은 죄수에게라도 말이다.
저자가 형사단독판사 시절에 만난 피고인은 상습사기꾼이었다. 특이한 점은 50대 후반이 되도록 전과 20회 이상, 20여 년의 교도소 생활동안 죄명과 형량, 수법이 한결 같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짐작에는 바깥 생활보다는 교도소 신세를 지는 것이 편해서 일부러 그랬을 거라는데…….그리고 법정에서 거짓말만하는 상습사기꾼에게 막말을 하게 되는데…….
-피고인, 평생 그런 식으로 없는 친구나 친척을 내세워 반복했는데 또 그 이야기입니까? 교도소 콩밥도 국빈의 혈세로 마련하는 겁니다. 피고인에게는 콩밥도 아깝습니다!
-판사님, 콩밥도 아깝다니요? 저는 이 나라 국민도 아닙니까? 사람도 아닙니까? (책에서)
교도소밥이라도 먹으려고 일부러 죄를 지어 들어오는 것도 문제지만 막말은 참아야 했는데……. 아무리 흉악 죄인이라도 그 범죄의 이면에 부모의 애정결핍 등이 자리하고 있기에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셈인데…….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과 격려를 받고 자랐다면, 그에게도 따뜻한 가정이 있었다면 그런 죄들을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범죄의 이면에는 가정과 사회, 국가의 책임도 있을 텐데…….
나중에 저자는 재판정에서 막말에 대한 사과를 했고 상습사기꾼은 선고대로 복역했다고 한다. 저자는 미안한 마음에 퇴소 후 그가 배운 이발 기술을 써 먹을 수 있도록 작은 교회와 연결 시켜주었다는데…….
한동안은 일에 충실하며 편지를 보내더니 지금은 편지가 뚝~ 끊겼다고 한다. 손버릇, 말버릇이 쉬이 바뀌지 않겠지만 어딘가에서 성실히 살았으면 좋겠다.
고아원을 방문해 마술을 보여주고 선물을 전하는 모습,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질문을 받는 모습에서 따뜻한 판사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에 대한 이야기는 무려 4편까지 이어진다. 다른 책에서 이미 읽은 사실이지만 부탄 공주의 국가 행복론 이야기도 흥미롭다.
한 번도 용서받지 못해 22년간 도둑질로 옥살이한 남자의 이야기는 마음이 저려왔다. 그에게 한번쯤은 너그러운 용서와 이해를 바라는 의사 선생님의 증언에서 장발장이 생각날 정도였다. 누군가 어린 소년에게 너그러운 아량과 따뜻한 인정을 베풀고 지원을 해줬더라면 과연 22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기만 했을까. 나 역시도 마음이 아픈 대목이다.
자신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범죄란 약물이나 주사, 형량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사랑의 결핍, 신뢰의 결핍 증후군인데…….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는 어른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절대 어긋난 길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린 도벽을 이제라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유죄냐 무죄냐를 판단하는 판사자리의 막중함,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재판정의 권위, 사법부에 대한 신뢰, 시민들과의 친근한 교류 등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어느 직업인들 쉬울까마는 법의 잣대로 행동을 판단하고 인간을 판단하는 자리가 조심스럽고 어려운 자리 같다.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마주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따뜻함과 유머, 정의로운 판단, 법의 형평 등을 만나게 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