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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평점 :
[눈먼 올빼미]천년 넘게 운문만 존재하던 페르시아 문학계, 최초의 산문 소설!
저자인 사데그 헤다야트(1903~1951)는 이란의 귀족 가문, 페르시아 시인의 후예, 시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태생부터가 문학적인 그는 국가 장학생이 되어 유럽 유학을 떠났다. 엔지니어링과 건축학을 공부했지만 그를 끌어들인 건 문학이었다. 세계문학과 유럽 문학에 전념하게 되면서 프란츠 카프카, 에드거 앨런 포,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등에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테헤란으로 돌아왔지만 정치적인 상황에 실망해 인도로 갔고 그곳에서 <눈먼 올빼미>를 출간하게 된다.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이 상처의 고통이 어떤 것인가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책에서)
주인공은 페르시아의 변두리 마을의 어둡고 칙칙한 어느 골방에 사는 골방필통 뚜껑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광기와 제정신 사이의 중간 지대에 갇힌 고독자이다.
어느 날, 방 안의 환기구를 통해 우연히 바깥에 있는 한 여인을 보면서 관능과 절망과 영감을 얻게 된 화가.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에 인도 탁발승처럼 생긴 구부정한 노인에게 긴 검은 옷을 입은 처녀가 나팔꽃 한 송이를 건네는 장면은 꿈속일까. 그들 사이에 놓인 작은 실개천은 신화적이기까지 느껴진다. 꿈처럼, 전설적인 여인과 노인의 환영이 반복되면서 욕망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드디어 여인은 화가를 찾아오게 되고 화가의 방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노인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고대 도시의 유적지에 매장하게 된다.
노인 역시 주인공의 도 다른 자아일까. 화가의 먼 미래일까.
삶과 죽음, 부활의 혼수상태에서 드러내는 마음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작가의 필체가 아름답게 흐른다.
조금 전 내가 경험한 기분 좋으면서도 공포스러운 떨림의 파문이 아직도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내 삶의 흐름이 바뀌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 이 세상사람 같지 않은 그녀를 한 번 일별한 것만으로도 그녀의 존재가 내 안에 각인되었다.(책에서)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는 두 눈이 휑한 올빼미 형상이었다. 그런 자신의 자아인 그림자와 삶의 고독, 욕망과 절망, 불안과 꿈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생각이든, 현실과 전혀 다른 상상이든 올빼미 형상의 그림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유일한 친구이자 또 다른 자아이다. 그는 또 다른 자신의 자아에게 자신의 생각을 그림 그리듯 자세하게 털어놓고 있는데…….
어느 날, 밤의 얼굴을 한 눈먼 올빼미가 검은 날개를 펴고 내 집 지붕 위에 내려와 있었다. 한낮이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었지만, 그 검은 날개가 나의 의식을 뒤덮어 나는 아무 빛도 볼 수 없었다. 눈을 뜨고 태양을 바라본다. 나 지신이 눈먼 올빼미가 되어 있었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어둠이 있었나 놀랄 정도로 그 심연이 깊다. (책에서)
타인과의 두꺼운 벽, 두려운 심연을 발견한 화가는 침묵이 최선임을 알고 자신의 자아와 조우하기 시작하는데…….

어둠조차 볼 수 없을 때 보게 되는 삶의 이면에는 각자의 진실이 숨어 있을까.
누구나 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얼굴을 끊임없이 바꾼다지만 우린 그런 가면조차 인식하지 못하는데…….
작가가 내면과 현실을 통찰하는 모습이 분명, 우울하고 극단적이며 어둡고 칙칙하다.
하지만 사회를 꿰뚫는 시선, 내면의 불안과 욕망과 마주하는 섬세한 필치는 역시 수작이다.
<눈먼 올빼미>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 풍경을 상징적이고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 안의 그림 안의 그림처럼. 어둡고 슬프고 광기가 어려 있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다. -류시화
조국의 정치적, 종교적인 상황이 작가를 염세주의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욕적인 비판이 예술적 비판을 대체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는데…….
더 절망하고 더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된 그는 삶에 지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에 필적하는 현대 이란의 대표 소설이라고 한다. '페르시아어로 써진 가장 중요한 문학 작품 중 하나'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년 넘게 운문만 존재하던 페르시아 문학계에 등장한 최초의 산문 소설이다.
20여 개 국에서 출간되었으나 '읽으면 자살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독서 금지된 작품이라는데……. 이란에서는 아직까지 금서이다.
한국에서도 최초의 번역본이다.
읽으면 자살하게 된다는 문구 때문에 소설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읽게 되는 소설이다.
긴장하며 장막을 치고 읽어야 하나, 감정이입해서 읽어야 하나를 고민하며 읽게 된 소설이다. 이런 고민, 정말 처음이다.
고백하건데, 분명히 마음의 벽을 치고 읽었다. 혹시나 깊은 우울과 깊은 절망에 빠져 들까 봐 말이다. 불안과 공포의 감정 속에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게 되려나 싶어서 말이다.
분명 감정 묘사나, 심리 묘사가 예리하고 섬세한 것은 맞지만 작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서 빨려서 읽은 것은 아니다.
아편이나 마약, 술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특효약이 필요한 아픔을 난 아직 몰라서 일까.
지금은 작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