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페의 어린 시절
장 자크 상뻬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3월
평점 :
[상뻬의 어린 시절] 프랑스 최대의 데생 1인자, 상뻬의 이야기~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화가의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그림 속에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무겁고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하는 화가의 그림이라면 그 의중을 눈치 채기가 쉽지 않다. 너무나 멋진 그림 앞에서 어찌 화가의 불행을 감지할 수 있을까.
상뻬의 그림은 <꼬마 니콜라>에서 처음 만났다.

상뻬의 어린 시절.
그의 그림을 좋아하기에 반갑게 펼쳐든 책이다. 익숙해진 그림이기에 더욱 반가운 책이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타깝고 슬프고 속상한 마음뿐이었다.
천진난만한 그의 그림과 그의 어린 시절 상처를 어찌 연결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들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그의 어린 시절은 따뜻한 적이 없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동심의 세월을 살지 못했다고 한다.
사생아인 그는 늘 부모님의 싸움과 폭력을 보며 자랐다. 그의 가정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가정이 아니라 폭언과 폭력이 난무한 지옥 같은 싸움판이었다. 부모님들은 그저 그분들 나름의 힘자라는 대로 사신 분이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면 거짓말이 회피기제로 작용한다더니.
그 역시도 그의 가정사를 숨기며 거짓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사랑을 듬뿍 받는 아들인 것처럼, 친구가 많은 소년인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거짓으로 꾸며대었다고 한다.
그는 행복한 시간은 바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싸움 없는 부모님, 폭력 없는 하루를 꿈꾸었다는데…….

불행한 가족사를 지닌 소년에게 무엇이 위로가 되었을까.
그가 그림을 접하게 되면서 그림은 그에게 현실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의 그림 속에는 평화로운 일상들이 펼쳐진다. 그가 겪어보지 못한 평범한 세상이…….
스포츠를 신나게 즐기는 아이들, 함께 모여 독서를 즐기는 아이들, 해변의 모래사장을 뜀박질하는 아이들, 피아노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켜는 아이들, 발레를 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부모들,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버스를 타는 평온한 얼굴들........
함께 우르르 몰려가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모습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여유롭고 평범한 단란한 일상들, 행복한 표정들이 가득한 이웃의 소소한 풍경들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꿈, 희망, 행복, 비상, 자유, 활기참 등이 가득하다.
슬프고 찌든 마음은 어디에도 없다. 구겨지고 비틀어진 마음도 전혀 없다.
늘 행복한 아이, 동심 가득한 순진무구의 아이들과 맑고 깨끗한 자연이 있다.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일 뿐이다. 외려 코믹하기까지 하다.

그의 그림에는 연하늘색, 연파랑, 등의 파스텔 톤이 많아서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새와 나무, 바다까지 행복을 머금은 듯 하다.
현실적 소망들에 대한 갈증을 순수한 일상의 그림으로 풀다니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따뜻한 말 한마디, 포근한 가정이 사무쳤을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먹먹해 온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짐이었을 텐데…….
신데렐라에겐 유리구두가 희망이었던 것처럼, 그에게는 그림이 그의 희망이었으리라. 상상만으로도 역경을 극복하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갈 수 있었으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한 그림에 몰입한 그의 집념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자인 상뻬(장 자끄 상뻬)는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나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던 소년이었다. 재즈 음악가들을 그리게 되면서 그림인생이 시작 되었고 1960년 루네 고시니를 알게 되면서 <꼬마 니콜라>를 만들게 되었다.
현재 그는 최고의 표지화가, 데생 1인자라고 한다. 30년간 그려온 데생과 수채화를 1991년에 전시했을 때, 현대 사회에 대해서 사회학 논문 1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책은 인터뷰집이다. 유년의 회상, 따뜻함과 행복에 대한 그의 가치관, 그림에 대한 해석도 담겨 있다. 세계적인 삽화가의 책답게 많은 삽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름다운 삽화를 보면서 나도 그림 한 점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