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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파산 - 2014년 제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청춘파산]젊어서 개고생, 당당해서 희망이 넘쳐!
파산신청, 개인회생, 빚더미, 신용불량자…….
참으로 낯선 단어다.
책표지엔 짙은 회색빛 빌딩들이 촘촘히 도시를 메우고 있고 빌딩 옥상에는 여러 형태의 청춘들이 있다. 어떤 이는 비를 맞고 있거나 우산을 놓치고 떨어지거나 벼락을 맞기도 한다. 어떤 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멍하니 그냥 서 있다.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 칙칙하고 어둡지만 작가는 최대한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용기 있는 청춘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미 주어진 운명이야 어찌 할 수 없겠지만 그 운명을 극복해내는 것 역시 운명이기에 씩씩하게 극복해 보겠다는 어쩌면 야심찬 젊은 자화상이다.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설이지만 그래서 희망적이다.
꽃다운 나이 20대를 빚에 쪼들리며 살고 있는 백인주에겐 서울지방법원에서 날아오는 쪽지들이 많다. 용어도 어려운 쪽지들은 일명 독촉장이거나 법원명령서들이다.
승계집행문부여신청서, 채권압류 및 추심명영, 진술서, 보정명령…….
인주는 집안 사정으로 빚을 지게 되면서 서울에 있는 웬만한 아르바이트자리를 체험했다. 그녀의 알바 목록에는 별의별 아르바이트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30대엔 개인 파산선고.
그녀가 10년 이상 해온 아르바이트는 상가수첩 돌리는 일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쪼개 가면 무수한 알바의 세계를 탐험해 간다. 단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다. 10년의 세월은 그녀를 달인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각종 알바의 노하우를 터득하게 만든다.
특히 미술학원에서의 엄마와 딸이 함께 하는 두상모델 일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하지만 인주는 절대 기가 죽지 않는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상품 옆에 서서 손님에게 상품을 권하는 당신은 부모에게 받은 용돈으로 그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한 발짝 앞서 있다. (책에서)
본인의 체험담도 묻어 있다는 소설이어서 그런지 아르바이트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생산적이고 긍정적이다.
10년 된 고수의 알바수칙은…….
잠은 밤에 잔다. 몸을 상하게 하는 알바도 절대 금지다.
야간작업이나 술 따르는 것도 금지다. 알바에겐 몸이 재산이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중심을 잡아가는 인주에게서 운영에 맞서 당당히 싸우는 젊은 여전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사당동, 신림동, 청담동, 신당동, 장충동, 대림동, 노량진동, 평생학습관, 연희동, 신대방동, 개포동…….
이야기는 그녀가 누비는 곳곳의 지역 순서대로 풀어 놓는다. 그 지역의 역사, 서민들의 아픔과 함께하며 청춘의 그림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서울의 역사와 지리, 풍물들이 담겨 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아파트가 무너진 서울의 역사, 강남 지역 아파트 개발의 역사도 들어 있다.
신대방동의 보라매공원을 지날 때면…….
태어난 지 1년이 안된 매를 보라매라고 해. 산에서 1년이 지난 매를 산진이, 사람 손에서 1년 길들인 매는 수진이야. (책에서)
취업이 어려운 현실이지만 구인전단지, 구이 전문 신문, 구인 사이트에는 구인광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직업도 인터넷 사이트로 구하는 세상임을 절감할 정도다. 아르바이트의 종류가 이리도 다양한 줄도 처음 알았다.
선물가게에서의 CCTV대용의 좀도둑 감시역할, 카페 서빙, 전통 찻집 서빙, 커피 품평, 탭스 스탭 등…….
최고서, 채권압류, 채무불이행, 채권자 등의 낱말이 흥청거리는 소설, 각종 알바목록이 넘실대는 소설이지만 당차고 희망적이다.
그녀의 말처럼 노동은 정직한 거니까. 그런 경험들이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 경험한 만큼 내 인생은 빛난다는 사실…….
서울 시내를 누비며 알바로 청춘을 보내는 그녀의 이야기는 위로가 필요한 막다른 청춘이지만 그냥 두어도 회복될 청춘 같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이길 수 있을 만큼 시련은 주어지고, 슬픔과 고통은 약이 되고…….
경험한 만큼 내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아프지만 위로가 되는 소설, 괴롭지만 희망을 주는 소설, 힘들지만 노래가 나오게 하는 소설이다.
청춘파산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위기가 또 다른 기회임을 말하는 소설이다.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