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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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단 대학탐방기]할머니 양춘단, 대학물 먹다~

 

이 소설은 대학교의 청소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사회소설이다.

대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투명인간 같은 존재로 살고 있지만, 없으면 확연히 표 나는 대학의 구성원들 이야기다.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는 시절에 태어난 양춘단의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이 최종 학력이다.

그녀는 외딴섬에서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태어났기에 호적조차 제때 올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65년 인생은 대학과는 먼 인생이었다. 평생 대학 근처에는 가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대학, 대학이라……. 이 양춘단이가 대학에 간다는 말이여?

 

양춘단은 송정리 촌구석에서 남편 영일의 수술과 병간호를 위해 서울 아들 종철네로 옮겼다. 남편을 따라 병원에 갔다가 알게 된 양정례로부터 대학교 청소부 용역을 구해주겠다는 말에 대학에 대한 기대를 가지며 청소 일을 하게 된다.

학교 가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 그녀에게 대학교 청소노동자라는 일자리는 꿈의 자리였다. 그녀는 대학 신입생이 된 마냥 시장에서 산 가방을 매고 들뜬 마음으로 대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코끼리 상이 있는 대학교에서 신입생 같은 신입 청소 용역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활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백으로 들어간 용역일 조차 낙하산 인사라는 동료들의 시샘과 따돌림을 받아야 했고 학생들에게 대학교 미화청소원이라는 역할은 그저 무시 받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다.

 

좁은 미화원 컨테이너가 싫었던 그녀는 옥상에서 점심을 먹다가 시간강사인 한도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한스런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청소하다가 우연히 도둑강의를 듣게 된 여성착취의 역사는 그대로 충격이었다.

화장실 곳곳에는 제거해도 새로 생성되는 불가사리 같은 유언비어들뿐이다.

학생과 교수의 불륜에 대한 낙서, 교수비리, 학내비리에 대한 낙서들은 불사조였다. 지워도 지워도 새로 탄생하고 마는 생명력을 지닌 불사조였다.

 

아슬아슬하게 당겨진 양극의 줄,

고작 한 발짝으로 결정되는 삶과 죽음의 친밀함,

갖은 수모를 당하더라도,

바로 쳐다볼 수 도 없는 더러운 일들이 눈앞에서 행패를 부린다 해도,

자신이 아니라 부모 형제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고 욕 한 번 하고 뒤로 물러선다면 그리 못 살 건 또 없지 않은가.

바라던 꽃길은 아니어도 이럭저럭 걸을 만한 작은 길이 뒤에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똑똑한 청년이 모를 리 없다.

그것이 그를 더 괴롭힌다.(책에서)

 

학생 때는 내가 가장 존경했고,

나를 교직으로 이끈 사람이 부끄럼도 없이 제자에게 손을 내민다.

나에게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혀를 삼키는 기분이다.(책에서)

 

 

시간강사였던 한도진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의 죽음을 밝히는 진상위원회가 열렸지만 결론은 타살 혐의 없는 단순 자살로 방점을 찍게 되고, 양춘단은 한도진이 남긴 노트를 비밀스럽게 채워간다.

 그저 그녀가 대학물을 먹으면서 느끼는 일상들, 생각들을 적게 된다. 한 자 한 자 힘을 주고 강사의 필체를 따라갈 때마다 죽은 이를 살리는 일처럼 느껴져서 사명감까지 느끼게 된다.

 

강의실 벽을 따라 걷는 춘단을 춘단보다 조금 작은 그림자가 뒤따라 걸어왔다. 춘단이 화장실쓰레기를 담은 봉지를 어깨에 메면 그림자도 봉지에 어깨를 멨고 빗자루를 들면 함께 빗자루를 들었고 걸레질을 하면 따라서 걸레질을 했다. 춘단은 걸음을 멈추고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는 그림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희미한 형체지만 분명 살아 있기는 한데 말을 걸어오지는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다들 밟고 다니니…….

나로구나.(책에서)

 

대학교에서는 비용을 줄이려고 시간당 4800원이던 미화원들의 인건비를 시간당 500원을 삭감하는 조치를 발표하게 된다. 양춘단을 뺀 미화원들의 시위에 학생회까지 끼어들면서 사태는 커지게 되고…….

누군가의 모함으로 인해 야간근무를 하게 되고…….

청소를 하지 않는 대학은 화장실이든 강의실이든 쓰레기들로 차고 넘치게 되고…….

벽에는 온갖 낙서들이 난무하는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하숙생은 자신의 하숙비마저 치르지 않는 모순들......

 

용감하고 씩씩한 양춘단의 이야기에는 유머와 풍자가 가득하다. 재미있어서 가독성도 있다.

할머니 양춘단이 대학교에서 겪는 사건들은 그대로 사회의 축소판 같다. 정의는 축소되고 모순과 비리와 불륜이 눈덩이처럼 커진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양춘단의 대학물 먹은 이야기는 대학사회를 통해 본 우리 사회의 풍속도다.

개인의 역사에서 그치지 않고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하는 세대들의 자화상이다.

이 책 진정 추천하고 싶다.

 

소설 내용이 시사적 의미가 깊고, 걸쭉한 사투리가 소설 전체를 구수하게 두르고 있어서 나이가 좀 된 중견작가인줄 알았는데, 작가는 1985년생인 박지리다.

그녀는 제 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작품으로 <합체>, <맨홀>이 있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깊이가 남다른 작가이기에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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