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순교자 - 과학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으나, 가장 불운했던 과학자들
이종호 지음 / 사과나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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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순교자]과학을 위해 태어나, 과학을 위해 죽다!

 

의학과 과학의 진보를 위한 과학자들의 열정과 희생은 모든 이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기에 마땅하다. 만약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려는 과학자들의 집념이 없었다면, 목숨까지 담보하는 과학자들의 열정과 집착이 없었다면.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그에 따른 재능이 없었다면 지금의 과학은 이토록 발전할 수 없었을 테니까.

시체해부의 금기를 깨뜨린 안드레아스 베실리우스(1514~1564)

그는 벨기에의 해부학자이자 외과 의사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해부도가 있었지만 18세기에 발견되었기에,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가 오랫동안 해부학 교과서로 인정받았다.

그의 집안 전체가 의학과 관련 있었고 아버지가 궁정 의사였기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의 사체 해부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시체 해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묘지를 뒤지다가 들개들과 싸우기도 하면서 시체 해부에 열정을 보였다.

당시 시체해부를 금기시했지만 그의 열정을 본 의학부의 인정으로 공개적으로 시체해부까지 할 수 있었다니!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 인체해부를 제자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그는 죄수들의 시체를 해부하거나 교수대에 있던 죄수의 시체를 훔쳐서 연구하기까지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 해부에 대한 열정과 능력으로 그는 유럽 최고의 의사로 인정받았다.

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는 대학원생으로 적을 둔 지 몇 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바로 외과 및 해부학 교수로 임명받을 정도였다. 그의 해부학적 지식과 연구 능력이 탁월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그의 해부도는 이전까지 인정받던 갈레로스의 해부도를 업그레이드 한 것이기에 교수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천년 넘게 이어진 정설에 과감하게 문제점을 던졌던 학자, 자신의 오류에는 적극 개정을 하며 해부학에 정진한 의사였다.

남성의 이빨 수가 여성의 것보다 많다는 오랜 주장을 뒤엎은 것도 해부학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그는 갈레노스의 저술에서 200개 이상의 오류를 잡기도 했다. 인체해부를 꺼리던 교수들에게 직접 시연하며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연구 방법을 알리기도 했다.

 

인체의 뼈에 대해 교황청과 다른 견해를 주장하다가 성지순례 행을 받았던 그는 결국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죽음을 맞았다.

후세들은 그를 '근대의학의 혁명가'라고 부른다는데.

이 책에는 지동설을 지지하다가 마녀사냥으로 화형을 당한 조르다노 브루노, 부패실험 도중 폐렴으로 사망한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 프랜시스 베이컨,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드레스덴 도자기 개발자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 방사능 중독으로 백혈병을 얻어 사망한 마리 쿠리와 이렌 퀴리 모녀, X선 영향으로 난소암으로 사망한 로절린드 프랭클린, 탐험 연구 중에 실종된 대륙이동설 주창자 알프레드 베게너 등의 이야기가 있다.

 

마리 퀴리와 그녀의 딸 이렌 퀴리는 방사능을 만지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이야기는 존경과 안타까움이 함께 하는 이야기다. 이들 모녀가 비록 노벨상이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한 죽음이었으니 말이다.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화형을 당한 조르다노 브루노는 사실 아리우스파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화형당한 것이다.

번개 연구를 하던 리히만은 천둥번개가 치는 날, 전기를 유도하기 위해 걸어 놓은 금속선으로 다가갔다가 즉사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명하기 전이었다.

 

실험과 연구의 과정에는 언제나 신체적인 위험이 따를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목숨도 아끼지 않고 연구에 몰입하는 과학자들의 정신은 분명 순교자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

과학자들 세계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이야기, 과학을 위해 태어나 과학을 위해 살다간 이들의 이야기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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