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클럽 잔혹사
이시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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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클럽 잔혹사]7080, 그 슬픈 자화상에 바치는 성장소설~

 

 

제목에 사자클럽이라는 말이 있어서 처음에는 청소년 소설인 줄 알았다. 표지에는 까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 사자탈을 쓰고 주먹을 쥐거나 발차기를 하고 있어서 불량서클의 행동대원 같은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7080세대를 위한 소설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고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치열하게 싸우고, 피땀 흘려 일했던 세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가족과 사회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성실하게 책임과 의무를 다했으면서도 이제는 존재감마저 사라져가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오마주다.

사자클럽이 만들어진 1968년의 역사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1968년은 무교동의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서 노래하던 송창식, 윤형주가 트윈 폴리오를 결성하던 해였다. 그리고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침투를 꾀하던 해였다. 북베트남 인민공화국이 남베트남을 공격하던 해였고, 파리의 낭테르대학의 학생들이 드골 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이던 해였다.

 

이젠 세월이 흘러 7080의 클럽이 되었지만 원래 사자클럽은 영탁의 모교에서 1968년에 시작된 클럽이다. 방공방첩이 국시였던 시절, 반공애국의 정신으로 '한번 사자는 영원한 사자'라는 모토까지 달고 시작한 고교생 클럽이다.

영탁은 글발이 있어서 연애편지를 써주기도 하다가 6.25전쟁 기념 반공 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사자클럽에 불려가서 가입하게 된다.

 

사자는 절대 호랑이처럼 뒤에서 공격하지 않으며, 굶어 죽어도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사자클럽은 깡패학교라는 불명예를 지우기 위해 양아치들을 소탕하기 위해 만든 클럽이다. 원래 '약한 자와 싸우지 않는다. 뒤에서 싸우지 않는다. 양아치는 우리의 원수다.' 라는 규칙을 갖고 열혈 애국의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불안과 폭력의 시대를 대변하듯 폭력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 자장면 집 유리창 깨고 오기, 서로 마주보고 뺨 때리기, 세븐클럽을 혼내주기 등 폭력과 일탈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이들은 그 모든 행위의 정당성을 양아치들을 이겨내기 위한 훈련, 학교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조치에 두었다.

 

역사가 몇 번 바뀌고 모교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전 세계에 흩어진 사자클럽 멤버들이 다시 모이게 되면서 영탁은 사자클럽 40사 출간을 맡게 된다.

 

고교 시절의 영탁은 말은 더듬었지만 시와 음악을 좋아하는 남학생이었다. 비틀즈 멤버 중에서 아일랜드 혈통의 폴 매카트니를 좋아했고, <렛 잇 비>, <예스터데이> 등 폴 매카트니의 전설적인 노래들에 심취했던 시절이었기에, 그의 이름을 허락도 없이 빌려 자신을 폴이라며 폼 잡고 다녔다. 지금은 출판쪽에서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 작가다.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영탁이 체험하는 성장기는 폭력의 역사 같다. 선생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시작해서 학생들 간의 폭력, 외부인들과의 폭력은 계속 진화해간다. 학생들은 폭력의 그런 포악함을 눈으로 배우고 몸으로 깨쳐 가지만 어쩌면 내면 깊숙이 내재되어있던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싫으면서도 자포자기하듯 말려들 수밖에 없는 소용돌이였으니까.

그 시절은 인간은 싸우므로 존재한다는게 삶의 본질인 것처럼 국가도 사회도 가정도 학교도 폭력이 점령하던 시절이었다.

 

수업풍경도 살벌하다. 흡혈귀 같은 선생, 티라노 선생의 공격본능은 아이들에게 잔인한 학창시절을 선물했을 것이다. 학생들을 매로 다스리고 폭력으로 기강을 잡던 시절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려온다. 작가는 그 모든 것이 국가로부터 비롯되었다지만, 그건 유사 이래로 전통이 아니었을까.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매로 다스렸던 건 고대로 갈수록 그 잔혹성이 더했으니까.

 

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금욕과 권력에 아부하는 모습, 앞선 어른들의 일탈을 배워가는 모습은 일그러진 시대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서 안타깝고 씁쓸하다.

 

역사 코드와 문화 코드는 7080들이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지금도 세시봉 노래에 눈물을 흘리며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소설에서는 김신조 청와대침투사건으로 시작해서 7.4남북공동성명, 10월 유신, 비상계엄과 긴급조치, 12.12사태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의 현대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문화적 코드로는 팝송과 각종 춤이 등장한다.

비틀즈, 레드 제플린, 클리프 리처드, 제임스 브라운, 닐 다이아몬드, 재니스 조플린, 지미 핸드릭스, 존 레논,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로버트 플랜트, 핑크 플로이드, 퀸, 레너드 코헨…….

트윈 폴리오, 소풍 가면 늘 하는 수건돌리기게임, 아침마다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차장의 '오라이!' 소리를 듣던 콩나물시루 같던 버스 이야기, 선생님들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감히 대항조차 못했던 시절 이야기, 수업 시간에 졸다가는 백묵이 총알처럼 꽂히던 풍경......

 

이 소설은 60, 70년대에 학교를 다녔고, 80년대에 청춘 시절을 보낸 이들이 추억할 수 있는 코드들이 많이 있는 일종의 복고소설이다.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지나간 시대의 희생물이 된 청춘들의 이야기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젊은이들의 하소연이다. 내가 없고 사회와 국가가 있던 시절에 대한 생존의 역사다. 멸사봉공, 애국애족, 선공후사, 살신성인 같은 사자성어를 신봉하며 살아온 세대에게 바치는 이야기다.

 

작가가 청춘의 역사를 부정과 비판의 관점에서 써내려간 젊은 날의 자화상이다. 과거를 반추하면서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비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언제나 개인의 생활은 역사의 회오리와 무관하지 않게 흘려간다. 그러니 평화로운 역사, 올바른 역사가 지금 당장 이뤄지기를 바랄 수밖에. 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개인적으로 7080보다 더 억울한 시대의 희생양은 일제시대를 산 선조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불행의 끝에 행복이 있다는 말이 진실이기를 바랐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한반도 역사의 소용돌이가 거셌으니까, 각 세대별로 갖는 추억이 다를 것이다. 이 책은 7080들에겐 추억을 선물하는 책, 그 후대에겐 7080에 대한 이해를 선물하는 책이다. 역사물 같은 소설에 유머코드까지 담긴 소설,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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