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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의 노래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문비나무의노래]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세계 순회 연주를 하는 솔리스트들과 유명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들이 마틴 슐레스케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있다면 독일에는 마틴 슐레스케가 있는 셈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130/pimg_726971195965575.jpg)
마틴 슐레스케는 일곱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학교라는 독일 미텐발트 국립 바이올린제작학교를 졸업한 뒤, 뮐러-BBM 음향기술컨설팅회사 소속 바이올린 제작 연구소에서 공부했다. 뮌헨응용학문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바이올린 장인 페터 에르벤의 작업실에서 일했고, 1996년 함부르크에서 바이올린 마이스트 시험에 통과했다. 현재 뮌헨에서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 중이며, 해마다 20대 정도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공명이 좋은 나무를 고르고, 깎고 다듬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의 순간은 천국의 순간일까. 텅 빈 공간에 아름다운 소리를 울리는 바이올린의 제작 이야기에서 장인의 영혼을 마주하듯 울림이 진동한다. 그저 평범한 나무에서 명품의 악기로 탄생하기까지의 장인의 신비로운 손길은 수 만 번을 스쳤을 텐데.
얼마 전에 읽은 가야금에 얽힌 안장의 이야기도 깊은 울림을 받았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 불렀고, 현재에 충실하며 깨어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불렀다.
저자의 경우엔 알차게 깨어있는 현재인 카이로스의 시간은 창조성과 영성이 만나 바이올린을 만들어내는 순간이라고 한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그렇게 카이로스의 순간들을 노래하고 있다.
바이올린에 어울리는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고지대에서 2~3백 년 넘는 세월 동안 서서히 자란 가문비나무의 밑동은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 사용하기에 최적이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아래쪽 가지들을 떨어뜨리어낸다. 가지 없는 목재라야 공명을 잘 만들 수 있고 악기가 되는 울림의 소명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노래하는 나무가 될 만한 재목은 1 만 그루 중 한 그루가 될까 말까 하다는데. 밑동만 쳐봐도 그 울림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네 삶에서도 울림이 있는 삶은 쉽지가 않은데.
노래하는 나무들은 대부분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 자랍니다. 노래하는 나무가 끌 수 있는 지역은 알프스에서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고도, 방위, 풍향, 기후, 토질……. 역경을 견뎌야 하는 척박한 땅에서 울림 있는 나무들이 자랍니다. 그곳에서 나무는 저항력을 기르고, 세포들은 진동하는 법을 익힙니다. (책에서)
시련을 견딘 세월의 무게는 육중하지만 든든한 안정감을 선사하겠지. 작은 가지들을 쳐내면서까지 비바람과 추위를 이겨낸 삶의 흔적은 그렇게 울림으로 남아있겠지.
악기처럼 우리의 마음에 조율이 필요하다는 말에 깊은 공감이다. 둔탁하고 막힌 소리가 나는 악기에 조율이 필요하듯이 탁하고 무딘 마음에 조율과 정화가 필요할 것이다.
사실 공명은 악기에 위험 요소입니다. 현이 균일하게 진동하는 것을 공명이 방해하기 때문이지요. 바이올린 몸체의 공명이 강할수록, 공명이 현의 진동에 영향을 미치고, 현의 진동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공명은 악기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공명이 없다면 악기를 다루기가 더 쉽겠지만, 그럴 때 울림은 생명을 잃습니다.(책에서)
나무는 건축 재료로, 땔감으로, 관상용으로, 영혼을 울리는 악기로, 쉼터로 모든 것을 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다. 희생이란 그런 쓸모와 나눔을 말하는 걸까.
나무는 뿌리와 줄기, 가지, 잎들이 각자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서로 돕는 공생을 이룬다. 신뢰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삶에도 공생을 이뤄 조화로웠으면 좋겠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조화를 이뤄내는 너무 뒤지지도 않고 너무 튀지도 않는 삶, 이해와 배려가 가득한 삶이 아닐까.
바이올린이 내는 좋은 음의 비결은 모순에 있습니다. 모순이 울림에 입체감을 불어넣거든요. 매력적인 음은 언제나 여러 가지 요소를 지닙니다. (중략) 좋은 울림은 입체적입니다. 좋은 음은 공간을 엽니다. (중략) 이런 바이올린은 거친 음을 내도 조잡해지지 않으며, 높은 음을 내도 천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콤하고 감각적이지요. 피아니시모는 부드러우면서도 숨이 막힐 것 같고, 포르티시모는 외치는 동시에 속삭입니다. 이 같은 모순은 깨지지 않습니다. 울림의 매력은 바로 이런 모순에 있습니다.(책에서)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130/pimg_726971195965576.jpg)
나무를 고르고 바이올린을 만들고, 악기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만난 자신의 사유들을 적어 놓은 책이다. 호흡하는 매 순간마다 깨친 삶의 환희와 삶의 깨달음을 적어 놓은 책이다.
나무의 결처럼 아름다운 삶의 결이 도고 싶다.
악기의 울림처럼 그런 울림 있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