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함께 사는 법 - 오늘을 살리는 과거 청산의 현대사
김지방 지음 / 이야기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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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함께 사는 법] 과거청산의 현대사,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 등......

 

 

개인적으로 '과거청산'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일제식민지 시대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뼈아픈 과거는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잊히지 않는 흔적이 되어 몸과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 텐데……. 가해자 입장에서든, 피해자 입장에서든 과거를 정리해야 미래로 나아갈 텐데......

가해자와 피해자, 용서, 처벌, 기억 등의 단어들이 머릿속을 뱅뱅 맴도는데......

어떻게 해야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지는 걸까.

 

한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에서도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용서와 기억, 화해와 보상이 진행되었다는데…….

각 나라마다 지역적, 문화적 여건이 다르겠지만 그들이 이룬 과거청산의 해법은 무엇일까.

인종 갈등, 좌파독재, 우파 군사정권의 이름으로 과거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 피해자들은 어떻게 손을 내밀었을까.

 

저자는 과거의 죄악을 용서받고 미래로 가는 방법은 기억하기, 찾아가기, 인정하기라고 한다. 가해자들이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만 해도 피해자들의 울분은 어느 정도 풀릴 텐데......

 

제일 먼저 관심이 가는 부분이 남아공이다.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차별정책으로 유명한 나라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외부적으로는 흑백 평등사회처럼 비쳐지기 시작했다.

지금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은 없는 건지, 백인들의 뇌리에 박힌 차별의식은 없는 건지, 궁금했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갈등 청산방법은 기억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범죄자들을 괴물로 단정해 버리면 자연히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게 된다.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도덕적 존재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데스모드 투투 (32쪽)

남아공에서 실시됐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란 유색인종에게 불리한 인종분리 정책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생활 전반에 걸친 차별이었다.

예전에는 화장실, 교회, 해변, 응급차 등 모든 시설들을 백인용, 흑인용으로 구분했고, 흑인은 단지 노동력 제공자 취급이었다. 백인이 흑인을 죽이는 것이 당연시되기도 할 정도로 흑인에게 인간다운 대우란 없었다.

 

이렇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19세기 초 영국이 아프리카 남단을 영국령으로 삼았지만 20세기 전반까지 영국과 네덜란드의 식민지 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광산'의 소유권이 네덜란드에게 넘어가면서 네덜란드인들이 만든 국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수적으로 우세한 흑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법(인종차별정책)을 만들게 된다.

법의 내용은 인종간의 결혼 금지, 거주지 분리, 직업 분리, 권리와 인격까지 분리했다. 심지어 기혼인 부부들도 떼어 놓았다.

하지만 1980년에 들어서면서 남아공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일어난다.

이들은 남아공 불매운동, 무역거래 금지 등 경제적인 봉쇄정책에 저항하다 1990년에야 철폐하게 된다.

그리고 흑인 최대의 투쟁 조직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의 협상이 시작된다.

 

흑인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계기는 1993년 4월 10일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의 한 주택가에서 ANC의 군사 지도자이자 남아공 공산당의 사무총장인 크리스 하니가 폴란드계 백인이자 극우 나치주의자인 야누스 왈루스의 총에 맞아 죽으면서 이다.

크리스 하니는 ANC가 독자적인 군사력을 가져야 된다고 주장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흑인지도자로 넬슨 만델라의 뒤를 이을 지도자로 꼽혀 왔던 사람이다. 그의 죽음은 남아공 전역에 폭동을 야기 시켰고 그의 추모대회에서 백인과 흑인의 대립을 가져온다.

장례식의 설교를 맡은 데스몬드 투투 남아공 성공회 주교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자고 설교한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를 요구하자는 외치게 된다.

흑인과 백인이 모두 함께 자유로운 나라의 백성, 이른바 무지개 백성이 될 수 있을까.

 

하니 살해 사건 1년 뒤엔 1994년엔 역사적인 선거가 치러지고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명시한 임시헌법이 시행된다.

국민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서 말이다.

 

이제 우리는 복수가 아닌 이해가 필요하고, 보복이 아닌 배상이 필요하며, 희생이 아닌 우분투(아프리카의 관용)가 필요하다는 인식위에서 과거의 유산을 다룰 수 있게 됐다. (47쪽)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헌법에 따라 과거 백인의 인종 탄압, 흑인의 폭력적 저항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한다. 위원회의 위원장으로는 투투가 지명된다. 남아공의 인권운동을 이끈 투투는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용서, 화해, 배상이라는 다소 종교적인 단어를 정치에 적용하게 되고, 신학적 종교적, 영적인 통찰을 현실에 적용하게 된다.

 

먼저 백인과 흑인의 견해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사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며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 해결의 첫 단추이기에.

 

용서해 주십시오. 학살 사건은 우리가 남은 생애동안 늘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할 짐입니다.(64쪽)

용서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고, 용서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 받지 못하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65쪽)

 

용서.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사해주는 것, 가해자에게 원한을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 청문회였고 진실을 밝힐 것,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것 등이 사면의 조건이었다.

물론 한쪽에서는 청문회 고백만으로 사면을 시키는 법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개인의 범죄뿐만 아니라 아파르트헤이트에 협력하며 혜택을 입은 집단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혜택을 입은 집단의 혜택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모든 피해와 사면 신청 내역은 관보에 기재돼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보상 작업까지 마무리된 보고서는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남아있다. 용서와 화해의 기록, 과거청산의 기록으로.

위원회에 사면을 신청한 사람은 2000년 11월 1일까지 7112명이었다. 이중 1200여 명만 실제로 사면을 받았다.(75쪽)

 

청문회의 효과는 백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흑인들도 같은 인간임을 집단적으로 체험했다는 것, 백인에 대한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공존을 외치게 됐다는 점,

개선해야 할 법들을 알게 되었고, 민주주의의 작동과정을 학습한 좋은 기회였으며, 진실의 힘은 든든한 사회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백을 통해 진실을 밝힌 자에게 사면이라는 특혜는 과분하긴 하지만 현실적인 대책이 아니었을까.

처벌과 단죄라는 사법적 정의보다 용서와 기억이라는 종교적 대책이 보다 현명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도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 남아공.

여전히 백인은 부유하고 흑인은 가난한 남아공.

흑인들은 사회적, 정치적 자유는 얻었지만 경제적 자유는 힘든 상황이라는데......

게다가 새롭게 유입된 흑인들과 남아공 흑인들 사이의 흑-흑 갈등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서로 공유하고 기억해 주고 보상해주고 그리고 용서해주는 것이 이뤄졌으니 이젠 실질적 대책들을 세워야 할 게다. 끊임없는 보상의 자세가 필요하겠지.

 

이 책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갈등 청산,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 청산,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 청산,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 나치부역자 청산, 미국의 흑백 차별 역사 청산, 한국의 여수, 순천사건에 관하여, 한국의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하여 등이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과거청산의 기구들이 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 특별청문회, 5공비리특별청문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그 외 특검과 청문회까지…….

 

한국에서도 과거청산은 과제다.

과거청산은 우리의 역사를 규정하고 정리하는 작업,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 극복해야 할 과제를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국민일보 김지방 기자가 쓴 이 책은 공존의 시대를 열고 있는 21세기에 대한 해부다.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서 어찌 미래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화해와 용서, 적과의 동침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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