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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 있다면 - 그리고 헬렌 켈러 이야기 ㅣ 두레아이들 인물 읽기 5
헬렌 켈러 지음, 신여명 옮김 / 두레 / 2013년 11월
평점 :
[사흘만 볼 수 있다면]헬렌 켈러처럼 보고 듣고 말할 수 없다면…….
만약 내가 사흘만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면,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그려 내 보여 주면서 최고로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상상하는 동안 여러분들도 이 사흘 동안 그 눈을 어떻게 쓸 지 생각해 보세요. (책에서)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헬렌 켈러.
그녀에 대한 짧은 토막의 이야기만 읽어서인지 전체적인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오늘 그녀의 자서전을 만나니 더욱 설렘 가득하다.
헬렌 켈러는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열병으로 인해 시력, 청력을 잃게 되고 말까지 할 수 없게 된다. 화가 김기창도 어렸을 적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고 했는데…….
답답하게 계속되는 어두운 밤, 말을 할 수 없는 의사소통의 부재는 헬렌을 점점 난폭하고 거칠게 만들고 다루기 힘든 괴물로 키워 간다.
그녀가 새로운 삶을 찾게 된 계기는 7살 무렵, 가정교사인 셜리번을 만나게 되면서 부터다.
애니 셜리번도 시력약화를 겪고 수술로 시력이 회복된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 헬렌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애니가 손바닥에 알파벳을 써 주는 ‘손가락 놀이’는 헬렌의 글공부는 물론 행동 길들이기에도 도움이 되어 간다.
급하고 거친 마음을 다스리며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된 헬렌은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 빛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사물의 이름을 배우고 그 이름을 불러 주게 되면서 새로운 환희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 학교를 다니면서 돋을새김으로 된 책도 읽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한다는 것, 사물의 이름을 알고 부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설렘이고 환희인가 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평생의 스승이자 동반자인 셜리번은 헬렌을 도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고,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한다.
그 덕분에 헬렌은 역경을 이긴 감동의 장애인이 되어 세계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기적을 일으킨 장애아, 연사, 영화배우, 보드빌 배우, 진보적인 운동가가 되어서 말이다.
고난과 절망 속에서 희망과 용기의 빛줄기가 된 그녀의 삶…….
그녀의 기적의 이야기는 감동, 감동, 감동 그 자체다.
사흘만 보고 싶다던 그녀에서 사흘이 선물로 주어진다면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친절과 상냥함과 우정으로 그녀의 인생을 살 만한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어 주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특히 인생의 은인 애니 셜리번 메이시 선생님.
그리고 보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 어떻게 진보해왔는지를 야외극이나 만화경.
극장과 영화관에 가서 배우들의 몸의 움직임, 장면들을 눈에 가득 담고 그 동작을 따라가 보는 것도 보고 싶어 했다.
집에서 출발해서 브루클린 다리를 지나 지금은 사라진 건물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로 가는 것.
그리고 뉴욕 순회여행.
5번가를 거닐고, 윈도 쇼퍼가 되고, 파크 애버뉴, 빈민가. 공장, 뛰어노는 아이들, 외국인들,
사흘째 마지막 밤엔 우습고 재미있는 인간사를 보고 싶어 희곡을 눈에 담고 싶다는 헬렌.
내일 당장 장님이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해 보세요. 그리고 다른 감각들을 사용하는 데도 똑같이 그렇게 해보세요. 내일 귀머거리가 될 것처럼 음악소리와 새의 노랫소리,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선율에 귀를 기울이세요. 내일 당신의 촉각이 모두 마비될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세요. 내일부터는 다시는 냄새도 맡지 못하고 맛도 못 볼 것처럼 꽃의 향기를 맡고, 한 입 한 입 음식을 맛보세요.(책에서)
헬렌의 미술관, 박물관 감상법이 감동적이다.
그녀는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만져본 여러 동물들의 오래전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보기도 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인간 욕망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마주하기도 하며 실제를 보는 듯 상상한다는데, 딱딱한 대리석 조각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감상법은 정말 특별하다.
눈으로 보진 못해도 그 이상으로 듣고 보고 느끼는 헬렌의 이야기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손으로 만지며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생생하게 느끼고 상상하고 배웠다니.
그녀는 손만으로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다.
시각을 쓰지 않으면 촉감 등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하는 걸까.
매일을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 수는 없다. 하루를 그렇게 살아본 적도 없다.
모든 감각 기관을 깨워 느끼고 맛보고 듣고 할 수도 없다. 매번 그렇게 산다면 너무 피곤할 테니까. 때론 적당히 들어 넘기고, 못 본 척 할 필요도 있고, 잊어 버려야 편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한번쯤은 무디어가는 감각들을 깨워 느껴보고 맛보고 살펴보는 시간은 필요하기도 하겠지.
그동안 무심히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멋진 것만 보고 싶어 했던 편협하고 게으른 감각기관들을 깨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보고 듣는 것들, 말하고 이름 부르는 모든 것들이 더욱 소중하지 않을까.
감각은 삶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이냐, 삶을 충만하게 하는 수단이냐를 생각하게 된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익숙한 일상이기에 특별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는데, 헬렌의 이야기를 읽으니 온전한 육신이 선물임을 생각한다.
부족이 감사를 키운다더니, 가난이 성숙을 돕는다더니.
있을 때 잘 해. 라는 노래가사처럼,
있을 때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라는 메시지가 쿵쿵 가슴을 울린다.
매일이 기적 같은 삶이고 오늘은 설레던 미래인데…….
오늘 잠시라도 오감을 활용한 삶을 살아 볼까. 딱 1시간만이라도.
오늘하루 빛나는 장면들을 담아보고 싶다.
오늘 보고 듣고 맛보고 느낀 것을 기록해 본다면 몇 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