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이란, 이런 것!

 

 

82세의 현역 작가인 앨리스 먼로에 대한 평가에는 최고라는 찬사가 거침없이 붙는다.

북미 최고의 단편작가, 단편 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체호프, 캐나다 총독문학상 의 유일한 3회 수상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캐나다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여성 작가로는 13번 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북미권에서 1993년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20년 만에 나왔기에 북미권을 뜨겁게 달궈 화제가 되기도 했다는데…….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화사한 미소천사인 앨리스 먼로는 평생 단편소설만을 써 왔다는데…….

오늘 그녀의 소설집을 만났다.

 

처음에 나오는 단편소설이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다.

 

새 비서가 알려준 놀이는 딱 하나. 종이에 남자 애 이름과 자기 이름을 적고는 서로 같은 철자를 지워버린 다음, 남은 글자 수에 맞춰 손가락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차례로 말하면서 세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 숫자에 딱 걸리는 단어가 그 남자 애와 나 사이의 운명이라면서....(책에서)

 

조해너는 맥컬리 씨의 가정부다.

그녀는 주근깨가 난 넓은 이마의 붉은 곱슬머리를 가진 여자다.

약간 시골스럽기도 하고 약간 이국적이기도 한 그녀는 수수한 차림이다. 여태 남의 집에서 일만 했으니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만한 패션 감각도 없고 도시사람 같은 세련미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는 식탁과 의자, 침실용 가구 일체와 소파, 커피 테이블과 낮은 탁자, 거실 등, 진열장과 식기 세트를 기차로 배송하기 위해 역으로 간다. 그리고 자신의 기차표도 끊는다.

부드로가 있다는 서스캐치원의 그디니아 행으로 가려고.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별 탈 없이 가구를 옮길 수 있을까. 부드로는 반겨 줄까.

 

그녀의 행색은 그대로 월레츠 부인이다. 이전에 가정부로 있었던 월레츠 부인의 옷을 물려받았기에 할머니 티가 철철 난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급 의상실로 간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가보다 2배나 비싼 옷을 산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겁 없이 저지르는 것일까.

 

뭘 걸치느냐에 따라 자기가 좀 그럴 듯해지는 것 같은 이런 어리석은 느낌은 평생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책에서)

 

좋은 일이 있냐는 의상실 점원의 말에 결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라고 무심코 내뱉는다.

결혼. 부드로의 입에서 결혼이야기는 나온 적도 없는데…….

그가 역으로 마중 나와 주기는 할까.

 

언제나 예의 바르고 말 수 적은 노인 맥컬린은 갑자기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너무 억울해서다.

왜냐하면, 가정부 조해너가 마르셀의 가구를 가지고 부드로에게 간다는 작별편지를 읽게 된 것이다.

맥컬리의 사위인 부드로 씨에게 가구를 보내며 자신도 따라간다고. 허걱.

맥컬리의 사위인 부드로는 맥컬리의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

수술 받으러 갔다가 죽은 가엾은 딸 마르셀도 그의 탓만 같고.

이제 가정부까지 챙겨 달아난 것이다.

그래도 사위라고 가구를 담보로 돈을 빌려줬는데, 또다시 가구를 담보로 돈을 빌려 달라는 파렴치하고 믿을 수 없는 공군 장교 사위를 이젠 고소하려고 했는데…….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다니.

 

아이의 장난이 어른들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까. 장난 같은 인생.

부드로의 딸인 이디스의 장난 편지가 모든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이야.

이디스는 조해너의 편지를 받고는 아버지인 척 장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편지를 받은 조해너는 부드로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편지는 점점 농도 짙은 애정 편지로 바뀌게 되고.

마지막 장난 편지에는 와주면 좋겠다고 적혀있고…….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 준 첫 남자이니 더 망설일 것도 없어진 그녀.

조해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멋진 옷까지 입고 그디니아 역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고 황량한 바람뿐인 역에.

 

물어서 찾아간 허름한 이층건물.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한 건물에 부드로가 기침을 하며 누워있다.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 조해너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심지어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부드로와의 만남.

독자의 입장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보고 있는 긴장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 부르도는 그녀의 가방에서 그녀의 이름과 통장과 지폐를 본다. 장인 집에서 잠깐 봤을 뿐, 가정부의 이름도 몰랐고 말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지금 호텔은 돈 먹는 호텔이니 정리하고 다른 걸 알아보라는 조해너의 충고.

지금에야말로 조해너 같은 여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드로.

 

골려주려고 시작한 아이의 유치한 편지장난이 어른들의 삶에 사랑과 미움, 행복을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잔잔히 흐른다. 마치 한적한 시골풍경 같은 단순한 이야기에 조금씩 반전을 곁들이는 이야기다.

작은 단편소설 속에 반전과 긴장, 스릴과 순수함을 한꺼번에 녹아내는 작가만의 재치가 가득하다.

감미롭고도 강렬한 문장으로 우리의 삶을 노래한 소설가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은 소설이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쓴 아홉 빛깔 이야기가 맛깔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2007년 5월 전 세계 상영되었던 화제의 영화 <Away from Her>의 원작이라고 한다.

<타임> 선정 2001년 올해의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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