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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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인생도 등급제라니!! 으아악~~!!

 

 

2013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제목에서도 심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지고 왠지 비극적인 현실을 예감케 하더니, 과연 소설의 내용에서도 끓어오르던 마그마가 분출해버린다.

 

나는 5등급이다. (책에서)

 

첫 문장이 매우 강렬하다.

5등급 인생이라는 낙인을 받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모의고사에서 받은 5등급은 중간정도의 성적이지만 현실은 못 하는 아이라는 낙인이다.

노력을 해서 등급을 올릴 수도 있지만 공부에 의미가 없고, 인생에 의미가 없다면 등급은 아이들에게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닌데.....

 

방인영은 머리에서 외모까지 5등급인 고3 수험생이다.

작은 키, 통통한 몸매, 낮은 모의고사 등급…….

모두가 5등급인 그녀는 애초에 뭘 해도 안 될 걸 알고 있기에 등급조정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문제는 5등급이어도 당당하게 살 수 있으면 좋은데, 주변에서 그걸 허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빠, 엄마, 선생님, 학원 선생님, 과외 샘, 교회 어른들까지 5등급을 인정해 주는 인간이 없다.

더구나 변호사 아빠와 미모의 엄마는 도대체 포기를 모르는 종족들이다.

외모는 딸리나 머리가 좋은 아빠, 머리는 딸리나 외모는 좋은 엄마의 결합이지만 인영은 머리도 딸리고 외모도 딸리는 최악의 조합으로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인영은 이런 신의 유전자 장난에 울분이 느껴지던 날, 드디어 신을 버리기로 작정한다.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가는 것도 구역질나고, 마치고 기도모임에 가는 것은 더 구역질난다.

 

머리를 맑게 하려고 학원에서 뿌려대는 아로마 향기는 더 어질하게 할 뿐이다.

5등급에서 1등급으로 오른 학생이 없는데 학원이름은 신화창조인 것도 이해가 안 간다.

탐욕과 거짓과 위선의 어른들 세계가 그저 어이없어 보일 뿐이다.

 

국민은 들러리야. 너희도 들러리 안 서려면 일류 대학 가서 들러리 이용해 먹는 자리를 점하는 게 좋지 않겠냐? 어느 대학을 가느냐! 거기서 정확하게 갈라지는 거야. SKY 밖은SKY를 위한 들러리일 뿐이야.(책에서)

 

학원 선생님의 말도 오로지 일류대학, 일류인생 이야기뿐이다.

 

이젠 남들이 좋다면 좋은 줄 알던 나이를 지난 인영이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나이가 지났다고 생각한 순간 자아가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인영은 하나씩 서서히 버리기 시작한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

원래 처음 버리기가 어렵지 한 번 버리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아주 쉬워지는 법인데....

 

아무리 인생 5등급이라도 할 말도 있고 인격도 있는데, 인영 주변의 1등급들은 도무지 배려라고는 없다.

엄마와 아빠로부터 받는 정신적 압박은 갈수록 온 몸을 짓누르고, 학교와 종교의 변태적 시스템은 기어이 신을 거부하게 만든다.

인영이 이러한 속박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밤마다 사막에서 낙타를 타는 꿈을 꾸는 이유는 현실 탈출의 간절한 소망을 드러낸 것일까.

인영은 일요일마다 아침 영어특강 4시간을 듣고 곧바로 교회로 직행해서는 굶주린 채 예배를 드리게 된다. 공부를 왜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런 과정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정말 좋아서 한다면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겠지만 인영은 그저 꼭두각시 인형처럼 프로그램 따라 움직일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성공할 운명, 중간밖에 안될 운명, 실패할 운명으로 타고나는 걸까.

모두들 1등급이 아니면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세상이란다.

1등급은 유전자와 부모의 재산이 결정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인영은 성경 말씀은 지키고 살지 않으면서 낯짝도 두껍게 천사의 미소로 교회를 들락거리는 신도들,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서 교회에 와서는 호들갑을 떨며 선행을 부르짖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가증스러움을 느낀다.

 

사회가 개인에게 꿈을 주입하고 개인은 자신의 비용을 들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열매는 사회가 가져간다. (책에서)

 

아웃 서울이 현실세계, 인 서울은 공상세계인 인영이다. 그래서 인 서울은 해리포터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가는 비현실적인 마법이 있어야 한다.

엄마의 인 서울 하라는 강요에, 점점 궤도에서 이탈하는 싶은 인영은 결국 모래의 남자에게 일을 맡기며 완전범죄를 모의하게 된다.

 

"사람을 죽여주세요."

인영은 베드로 목장에서 본 모래의 남자에게 당돌하게 부탁한다.

모래의 남자는 하 과장을 죽이고 싶은데 고양이를 죽이는 것으로 불만을 대신한 40대 계약직 공무원이다.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어이없고 당돌한 살인이지만, 마음이 무겁고 슬프다.

인권이 없는 학생들의 지루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기에.

 

인영의 사막의 꿈은 메마른 아이들의 꿈같다.

흩날리는 모래먼지는 진행에 방해꾼이듯, 미래를 꿈꾸라고 해놓고 미래를 닫아버린 어른들 같다는 직유가 절묘하다.

 

특목고에 대한 열망, SKY대에 대한 뿌리 깊은 신뢰는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목을 누른다.

자기소개서 작성하는데 수 백 만원이 드는 현실, 면접대비도 학원에서 몇 개월씩이나 준비해야 하는 현실, 학벌에서 나온 능력을 사랑의 기준으로 삼는 어른들.

 

하고 싶은 일 하라면서 기회도 주지 않은 어른들의 이야기가 이젠 소음으로 들리지 않을까.

학벌지상의 사회에서 태어난 죄로 외모도, 경제력도, 부모의 능력도, 가정형편도 모든 등급제에 살고 있다는 요즘 아이들의 실상이 왠지 서글퍼진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항변할 권리조차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너무 끔찍하고 서글픈 소설이다.

한국이 행복지수 최하위인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 <달고 차가운>의 주인공 지용, 드라마 <상속자들>의 방송반 선배 이효신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이해와 배려도 없는 어른들의 학벌에 대한 맹신이 아이들의 목을 조름을 생각한다.

강요만 하다가 센 한 방의 펀치에 KO패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조금 부족해도 만족할 수 있는 사회와 가정, 아이 나름의 장점을 길러주고 인정하는 사회와 가정,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와 가정, 아이들의 고민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사회와 가정이 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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