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만우절 나남창작선 113
양선희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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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만우절]언제나 만우절, 소문은 진실을 덮어버린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편작한 소설인 양선희 작가의 <余流 삼국지>를 읽으려다 아직 읽지 못했다.

<카페 만우절>이 양선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기에 반가운 마음에 펼쳐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썼다는 저자는 10여 년의 신문기자 생활 끝에 다시 어릴 적 꿈을 위해 습작의 세계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소설은 저자의 말처럼 한사람의 죽음이 단지 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 속에 얼마나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서도 부풀려진 말 속에 살다가 죽어서도 끊임없는 구설수에 오르는 한 여인의 네버 엔딩 스토리다.

사람은 가도 권리와 의무는 얽히고설키듯, 그가 남긴 풍문도 풍선처럼 부풀어 떠다니는 세상 이야기다.

세상에 진실한 말은 몇%일까. 왜 인간은 만우절을 만들었을까. 만우절이 아니어도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인데 말이다.

 

31세에 자살한 요절시인인 윤세린은 민은아의 어머니다. 민은아 역시 33세의 나이에 척추암으로 요절한다. 만우절을 좋아하고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죽은 민은아.

단지 대를 이은 비극일까.

이들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은 무엇일까.

 

신문기자 한승애는 보도를 위해 민은아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기사를 찾다가 거짓 속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유명한 시인 어머니에, 잘나가는 변호사 아버지에, 자신을 사랑하는 의사 남편에, 남부럽지 않은 외모까지 갖출 것 다 갖춘 그녀가 마음을 가두고 고독해하고 슬퍼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날들이 만우절이라고 생각하면 살아요. 만우절이 나를 속이는 거죠. (책에서)

 

민은아에게는 한국의 버지니아 울프 윤세린 시인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허울이고 족쇄고 감옥이었다.

그녀는 5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엄마를 잃고 아버지의 무관심을 넘은 냉대를 받다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를 떠나 외할머니와 살아야했던 고독한 소녀였다. 비극적 요소가 골고루 갖춰진 인생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속에는 더 비극적인 요소가 있었으니.....

 

엄마의 사랑, 아버지의 관심, 할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때로는 주눅 들고 의기소침하게 때로는 당돌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오해하고 소문을 만들어 간다.

 

5%도 안 되는 확률에 매달려 수술을 하고, 이후 기구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아내에 대한 학대라는 의사 남편은 민은아를 정말 사랑 했을까. 불치병을 앓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의 주치의가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주치의와의 로맨스, 투병과 함께한 결혼생활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의 추측성 소문에 장난기 섞인 소문까지 더해져 간다.

어머니의 애정도 받아보지 못하고 아버지는 무관심 그 자체였는데, 아버지를 닮은 범생이 의사와 결혼한 은아. 소문대로 아버지에 대한 애정결핍 때문에 한 결혼일까.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아이가 죽는 순간 나지막한 음성으로 불렀다는 엄마라는 소리는 엄마와의 화해를 의미할까.

아니면 동료배우 유정현의 말처럼 삶을 포기한 엄마 앞에 죽음을 맞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녀의 인생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산 인생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산 인생인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산 인생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이 만우절이었으면 좋겠어. 아니 매일 매일이 만우절이었으면 좋겠어.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만우절의 거짓말이 되게 말이야. (책에서)

 

늘 수동적인 대인관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생활이 죽고 나서는 더욱 부풀려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지루하고 일상적이 이야기까지 드라마틱하고 재미있게 엮어져 사생활이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한승애 기자는 취재하는 과정에서 소문과 너무 멀어진 그녀 가족사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데.... 그녀는 민은아의 어머니, 아버지, 남편, 그녀의 시어머니에 대한 진실 앞에 말장난이 한 사람의 삶 자체를 엄청나게 왜곡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말이라는 게 너무 많다. 이쪽 가닥을 잡고 있는 말과 저쪽 가닥을 잡고 있는 말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어도 서로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실체는 하난데 어째서 이렇게 말은, 복잡한 걸까? (책에서)

 

사람은 살아서도 말 속에 살고 죽어서도 말 속에 사는 끊이지 않는 네버 엔딩 소설인 듯하다.

말이 사람한테 해코지하는 세상에 내 언어를 남겨두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모든 작품을 태우는 민은아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는 소설이다.

죽음 앞에서 이제 쉬겠다고 한 주인공의 대사가 가슴에 남는 소설이다.

 

관계를 짓고 산다는 게 가위로 싹둑 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안다. 특히 피로 연결되고 유전자를 나눈 가족이라면 상처든 영광이든 후대에 미치는 법이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말을 생산해서 죽은 이후에도 거짓된 소문이 사실인 양 남는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남의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소문을 부풀리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의 모든 말들과 왜곡된 소문에 대한 소설이다.

문학은 무대와 배경은 허구이나 그 속에 녹아든 인생은 진짜라고 했는데……

픽션 속에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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