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검은 모래]제주 해녀의 일본 유민 생활사는 디아스포라이다.

 

 

2013년 제 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이목을 끈다.

한국 디아스포라의 소설의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한 역작이라는데…….

 

디아스포라.

검색해 보니, 디아스포라는 세계 각지에 산재하면서 정체성과 민족성을 상실하지 않고 세대교체를 반복해 온 공동체를 말한다.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화교 등은 원격지 교역의 특성상 세계에 퍼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고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탄압과 차별을 극복하고 그들만의 특유의 문화와 전통, 언어습관과 정신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제주도의 우도를 배경으로 제주 해녀 가족의 일본 정착에 따른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4대까지 이어진 시대적 아픔을 이야기 하고 있다.

구월, 해금, 켄, 미유까지 이어지는 유민사다.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이는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은 육체에 흔적을 남기고 고이는 시간은 가슴에 흔적을 새긴다. (책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이 문장이 이 소설 전체를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생과 사는 존재의 장소를 이동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제주 출신의 잠녀 해금.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에게 죽음이란 그런 의미정도겠지.

고여 있는 시간에 대한 그녀의 넋두리는 점점 작아져 간다.

인생의 종점에 선 지금, 퇴색된 기억을 떠올리기가 이젠 버거운 일이 되고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그녀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섬 속의 섬인 우도는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소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섬이다. 우도의 검은 모래는 다 타버린 화산재의 흔적이다.

 

잠녀인 어머니가 물질 갔다가 우도 바닷가에서 태어난 구월.

구월은 어선 두 척을 보유한 박상지라는 선주와 결혼하게 되고 해금을 낳게 된다. 먹는 것 걱정은 없는 시절도 잠시 뿐인가.

일본인들이 어업침탈을 하게 되면서 물질도 어렵게 되고 배도 뺏기게 된다.

타 지역으로 출가물질을 해야만 생존이 가능해지면서 구월은 제주와 오사카를 잇는 연락선을 타고 출가물질을 가게 된다.

그러다가 도쿄 남쪽의 화산섬인 미야케지마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해금의 아버지 박상지는 강제징용대상이 되어 나가사키로 끌려가고 구월과 해금만 섬에 남게 된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미국이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박상지는 실종이 된다.

해금은 재일청년학도인 한태주와의 연애를 시작하지만 한태주는 학도의용병으로 징집된다.

해금은 사랑하는 남자의 아들을 낳지만 한태주의 사망소식이 날아온다.

 

해금은 아들에게 합법적인 일본 이름을 얻어주고자 사랑하지 않은 일본인 남편과 결혼도 한다.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게 한 것도 아들 켄(건일) 때문이었다. 해금은 아들 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하지만 켄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한국인 피가 흐름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살아간다.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까.

아버지가 된 켄은 딸 미유에게 재일동포로서의 설움을 남겨주기 싫어서 미유가 할머니와 친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미유는 할머니 해금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신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쿼터로 알았는데 자신이 하프였다니......

자신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름을 고백하는 순간 애인인 지로도 떠나고 주변의 반응은 냉담하고 싸늘해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조선인이라는 것이 걸림돌이고 낙인이었던 걸까.

유전형질의 농도 차이가 뭐 그리 대단할까.

할머니의 죽음이 임박해서야 할머니와 아들, 손녀의 화해가 이뤄진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험난하고 쓰라리다.

 

이 소설은 우리의 역사, 잊을 수 없는 역사를 관통하는 해녀가족의 일본 유민 생활사다.

탄압과 차별 속에서도 꿋꿋하게 정착하고자 한 이민사다.

좋은 세상 만날 때까지 악착같이 돈 벌자고 떠난 길이 죽음이 되고 이별이 되고 고통이 된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 흐르는 해녀로서의 질펀한 삶, 재일 동포로서의 삶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일본의 조선 침탈, 독립을 위한 이름 없는 의병들의 숭고한 죽음, 나라를 찾기 위한 열사들의 목숨을 건 항거, 순박한 백성들의 힘없는 절규가 소설 속을 흐르며 눈물을 훔치게 한다.

 

제주 해녀 가족의 삶을 담고 있지만 그 시대의 역사도 꼼꼼히 나열하고 있어 시대적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 시절의 세계정세, 세계대공황, 안중근 의거, 단재 신채호의 옥사.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소식, 안익태의 애국가 탄생 등의 이야기들이 양념처럼 들어 있기에 그대로 역사책 같다.

 

이 책을 읽으며 현재도 두 개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을 생각한다. 선거권이 아직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아직도 경계인으로,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두 번 놀란다. 일본 우익 세력들의 득세에 권리주장조차 어렵다니, 한일문제는 언제나 풀리려나.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는 억지엔 우도의 검은 모래처럼 까맣게 속이 탄다.

일본 우익세력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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