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씨, 긍정은 어떤 힘이 있나요?]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으라.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
그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철학자 니체.
내가 알고 있는 니체는 이게 다였다.
고등학교 때 그의 저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려 시도를 했으나 인내심을 갖고 읽기에는 무척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의 이름은 익숙하나 사실 그의 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셈이다.
그리고 계속된 나의 선입견은 니체의 철학은 어렵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실존철학이니까.
니체는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특히 청소년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저자는 니체를 이해하는 것이 20세기 이후의 철학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한다.
성적문제나 콤플렉스에 대한 고민은 프로이트와 경제와 정치구조에 대한 관심은 마르크스와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다면 니체와 함께 해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20세기를 새롭게 연 3대 철학자라면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니까.
니체는 동시대 철학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나치 등 니체를 오해한 사람들의 왜곡 때문이었다.
그의 사상은 20세기 중반이후 재조명을 받으며 꾸준한 관심을 얻고 있다고 한다.
니체 철학의 특징은 고정된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논의되고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의 일생을 알아야 할 텐데…….
니체의 일생.
독실한 개신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니체.
5살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은 후에 여러모로 조숙해져가고 시와 음악에 재능을 보이고, 반기독교적인 사색을 하게 된다. 14살에 들어간 개신교 기숙학교에서 고대 그리스 문헌은 학문적 지식과 역사적 자료를 총동원하여 해석하는 데 비해, 유독 성경만은 비학문적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회의를 품게 된다.
종교와 기독교에 대해서 당파심을 벗어나 시대의 요구에 맞는 판단을 내리는 자유로운 시각을 취하려 할 때는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책에서)
일찍이 뛰어난 지적 능력, 예술적 감수성을 보인 니체는 깊이 있는 사색으로 많은 저술활동을 하게 된다.
진정한 탐구자는 자신의 물음이 가져올 결과에 상관없이 질문하는 사람이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가 질문을 던질 때 그것은 휴식과 평화와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실, 그것이 극도로 추악하고 불쾌할 지라도 진실을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길이 나뉜다. 만일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하지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고 싶다면, 질문해라. (책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본 대학에서 문헌학과 신학을 시작하지만 그는 '믿는 자'가 아닌 '질문을 던지는 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전문헌학 공부를 시작한다.
24살에 대학교수가 될 정도로 천재였던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작곡가 바그너와 친분을 쌓기도 한다.
그리고 점점 반기독교적 반독일적 반교양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나는 니체의 책을 오랫동안 피했다. 왜냐하면, 니체의 예감과 통찰은 종종 내가 힘들게 얻어 낸 정신분석학적 연구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본문에서)
24살에 대학교수가 될 정도로 천재였으나 학계나 사회의 조롱과 외면 받은 그는 교수자리를 내놓고 방랑과 저술활동을 하다가 결국 정신병으로 죽게 된다.
니체의 상속자이자 광적인 반유대주의자였던 여동생 엘리자베트는 니체 사상을 히틀러의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미완성 니체의 원고 일부를 위조하고 편집해서 그의 사후에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니체의 긍정성.
니체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디오니소스적 철학자였다.
니체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적인 두 요소가 융합하고 합치되면서 그리스 비극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개별적인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거대한 충동이며, 아폴론적인 것은 늘 절도와 자기 인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이성이다. (책에서)
그는 본능과 충동과 변화하는 감정 등의 인간 속성에서 새로운 철학을 찾고자 했다.
디오니소스가 가진 유동성과 계속 이어지는 생의 의지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란 파괴와 생성이 계속되는 혼돈 속에서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역동적인 생의 의지와 삶에의 도취를 가리킨다. (책에서)
니체는 아폴론이 보여 주고자 한 빛과 이성, 예언과 논리에 의지하기보다 디오니소스가 제공하는 술, 쾌락, 광기에 가까운 자유로움, 직관에 기대어 철학과 문학과 삶을 바라봐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니체는 삶의 고통, 삶의 한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의미와 즐거움, 위안과 쾌락을 얻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창조로 나아가고자 한 것이다.
창조가 단 한 번의 생성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낡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파괴가 창조로 이어지고 또 새롭게 생성되는 끊임없는 반복의 과정이기에 삶의 긍정, 창조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계속 생성되는 삶의 에너지, 기존의 개념에 반기를 들고 끝없이 새로 창조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철학하는 삶이 도움이 될까.
모든 가치를 뒤바꿔 버릴 수는 없을까? 혹시 선이란 악이 아닐까?
신이란 단지 악마의 발명품이거나 악마를 더욱 정교하게 해 놓은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거짓은 아닐까?
독창적인- 새로운 그 무엇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 이미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누구나 보고 지나쳐 온 것을 마치 새로운 것처럼 보는 것이 독창적 두뇌의 특징이다. (......)
만일 자신의 지배자가 오직 자신뿐이라는 이 기쁨을 지속하고 싶다면 서서히 거리를 좁히는 단념의 몸부림이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달아야 한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책에서)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삶의 여러 대상에 질문을 하고 관계를 찾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의미 있지 않을까.
철학은 삶과 대상에 적용될 때 비로소 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질문하는 삶, 의문을 가져보는 하루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선물 할 것이다.
니체의 질문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에게 실재적이며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고 혼자 힘으로 찾아가는 답변은 지극히 니체적인 것이다.
이 책에는 헤르메스 지식 게시판을 통해 질문과 답변이 제시되고, 셰익스피어와 니체가, 괴테와 니체가, 헤르만 헤세와 니체가, 히틀러와 니체가 가상토론을 벌인다.
철학에 대한 기본 개념들도 제시한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읽기다.
질문을 통해 자신을, 이웃을, 사회를, 삶을 돌아보게 하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고 있다.
이 책은 니체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니체의 사상에서 청소년 문제의 해법을 찾는 책이다.
그러니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읽기인 셈이다.
쉬운 표현, 재미있는 편집을 통해 청소년들이 고전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
추종만큼이나 오해도 많이 받았다는 니체.
이 책을 읽으니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는 말이 떠오른다.
질문하고 답하는 삶이 인문학의 출발임을 다시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