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리더십 - 겨레를 일깨운 민족의 스승 청소년 멘토 시리즈
유한준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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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리더십]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사랑한 리더십!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책에서)

 

해외에 가면 애국자 되고, 시절이 어려우면 위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을 거쳐서 광복이 되기까지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위인들이 배출된 시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나온 시절이다.

선각자, 선구자, 계몽운동가, 독립운동가, 애국자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살았던 우리의 위인들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암흑기.

나라가 위태롭던 시절에 태어난 위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늘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고, 잠을 자도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 (책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자주와 독립, 국민계몽과 교육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애국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인 멋진 대한 남아.

나는 오늘 안창호 선생을 만나면서 여러 번 가슴 뭉클해지곤 한다.

 

도산 안창호는 1878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나 유명한 성리학자인 김현진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다.

10대 초반에 고향을 떠나 서울의 구세학당 (현 경신 중고등학교)에서 신식학문을 배우며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운동, 갑오개혁, 1985년 청일전쟁 등의 소용돌이를 보며 자란 그는 배워야 힘을 기를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단발령,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이 터지면서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게 되고…….

 

그리고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을 하며 교포들을 일깨우고 독립정신과 민족 자각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국 외교권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을 접한 안창호는 급히 귀국한다.

그리고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를 만들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한다.

비폭력저항운동, 국민계몽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서는 한국 최초의 사립학교이자 남녀공학 초등학교인 점진학교를 세우게 되고……. 평양에 대성학교도 세우게 되고…….평양과 대구에 태극서원을 설립하여 출판문화운동을 펼치고,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세워 산업부흥에도 힘쓰게 되고…….

신민회 산하기관으로 청년학우회를 두어 박중화, 이돈녕, 최남선, 김좌진, 이회영, 장도순 등에게 맡기게 된다.

 

우리 신민회는 이름 그대로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이요. 우리의 목표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진흥운동을 전개하여 국가의 실력을 기르고 국민들을 계도하자는 것이요. (책에서)

 

1910년 일제 통감부 안에 도산내각을 조직하자는 일제의 권유에 일본의 허수아비 내각이 되기 싫다며 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다 북만주에서 한국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무관학교를 세우려다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다시 아내와 자식이 있는 미국으로 가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한인 단체들을 모아서 대한인국민회 중앙회를 조직하여 교포들의 민족 계몽 기관이자 독립운동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흥사단을 창립해 민족운동을 담당할 지도자를 키운다.

흥사단은 독립운동과 민족개혁을 근간으로 삼고 무실, 역행, 충성, 용감함과 지덕체를 갖춘 건전한 인격, 단결훈련, 국민 모두 일하기 등에 중점을 둔 인격수양 단체이다.

그러다 국내에서도 흥사단 운동이 일어난다.

 

-도산! 할 일이 많소!

-백범 형님! 나라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 독립을 쟁취해야 하오!

-독립운동은 광복되는 날까지 계속돼야 합니다.

 

다시 상하이로 건너간 안창호는 백범을 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게 된다.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이 되어 임시정부가 하는 일을 널리 알린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청년학우회 사건 등의 배후 인물로 지목받아 감옥살이를 하는 등 힘든 세월을 보내다가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난다.

 

60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을 사랑했던 도산 안창호, 그의 리더십을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민족을 사랑한 리더십, 계몽과 교육의 중요성을 외치는 리더십, 주인정신을 강조하던 리더십, 자주독립을 외친 리더십, 솔선수법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리더십…….

 

개인적인 이기심이 가득한 지금의 리더들에게 도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진정으로 부탁하는 바는 이 말씀뿐이외다, 여러분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

나 안창호가 죽어서 한국이 독립된다면 죽으리라.

조국을 망하게 한 것은 이완용만이 아니다. 나도 그 책임자요,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대한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혁신하게 하라. (도산 어록)

 

 

통합의 리더, 애국지사, 계몽운동가, 미래를 내다본 교육가로 평생을 몸과 마음과 재산을 바쳐 헌신한 도산 안창호,

그를 어찌 잊을까.

해방을 못보고 돌아가신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에게 이런 위인이 있음은 분명 정신적으로 든든한 재산이다.

겨레를 일깨운 민족의 영원한 스승, 맞다.

 

지금처럼 시끄러운 세상에,

온전히 민족을 사랑한 안창호 리더십이 아쉬울 뿐이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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