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장미여관으로 - 개정판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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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마광수 교수의 소설 <2013 즐거운 사라>를 얼마 전에 읽었다.

이번에는 그의 시집인 <가자, 장미여관으로>다.

 

 

 

 

 

 

 

작품 속의 장미여관은 작가의 상상 속의 여관이다.

작가가 말하는 장미여관의 상징적 의미로는 나그네의 여정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여관이기도 하고, 비밀스런 사랑을 유혹하는 도시의 러브호텔 같은 휴식공간이다.

 

 

작가는 잠깐만이라도 일탈을 꿈꾸는 공간, 세속적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여 도피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을 장미여관이라고 하고 있다.

 

달콤한 음탕과 불안한 관능적 상상력, 변태적 욕구와 일탈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위로의 공간이 상상 속에서나마 필요하다고 본 것일까.

 

 

 

작가는 즐거운 권태와 감미로운 퇴폐미의 결합을 통한 관능적 상상력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를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인류의 역사는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 시에서의 상상이 설사 '생산적 상상'이아니라 '변태적 상상'이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시는 꿈이요, 환상이요, 상상의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하는 행위조차 윤리나 도덕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로 초라하고 무기력해지고 말 것이다. (초판 서문에서)

 

 

 

작가의 글 쓰는 재주는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편한 시들이 가득한 시집이다.

그의 시는 야하고 유혹적이고 변태적이고 욕구의 배설 같다.

 

손톱을 아주 길게 기른 여자가 관능적으로 보이나 보다.

다분히 개인적 취향이지만 이해하기가 어렵다. 상상하기도 낯설고.....

 

 

사실, 이 글을 어떻게 써야할 지도 상당히 고민이다.

괜찮은 문장도 있지만 읽기 거북하고 보기 거북한 글귀들이 있어서다.

 

 

작가의 말처럼 자극적이고 권태적인 게 분명 인간의 본능일까.

좋은 본능이라면 충실하고 싶지만 나쁜 본능이라면 거부하고 싶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순수한 것, 꾸밈이 없는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는 정반대의 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읽으면서 나는 수수한 여자가 좋다는 소리만 머릿속을 맴돈다.

'모든 것이 불안하다'를 읽으면서 가끔 불안 할 뿐인데 라는 항명을 하고 싶어진다.

 

 

시들이 너무 야하다.

물론 그중에는 점잖은 시도 있다.

 

 

고구려

 

죽어가는 사막의 시간들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쓰러져 버린 검은 빛 낙타여,

희망의 서글픈 종언을 나는 보는 듯하다.

 

욕심 많은 대상들의 힘겨운 짐의 무게가

고뇌에 찬 너의 인내를 기어이 그르치고 말았는가.

 

너를 쓰러뜨린 것은

너의 목마름 때문인가, 인간들의 목마름 때문인가, 아니면 사나운 시간의 무게 때문인가.

.........

(본문에서)

 

 

 

 

 

표지그림, 자신의 캐리커쳐가 모두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시로써 문학생활을 시작했고, 발표한 시를 바탕으로 산문화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재주 많은 작가의 성적인 상상, 변태적 상상이 굳이 시로 표현되어야 할까 싶다.

읽고 있으니 정신이 어지럽다. 솔직히.

요즘 나오는 소설에서도 지나치게 난폭하거나 선정적인 표현들은 읽기가 힘이 드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본능이 진실이든, 난 수수한 여자가 좋다.

가식적이라도 비난 받더라도 손톱이 지나치게 긴 여자보단 적당히 단정하게 자른 손톱이 매력적이다.

일 안하고 놀면서 남을 부리며 손톱만 다듬는 여자보다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는 단정한 손톱의 여자가 매력적이다.

이런 내가 지극히 현실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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