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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용기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이승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놓아라, 당신이 붙잡고 있는 그것. [포기하는 용기]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까, 타자를 중심으로 돌아갈까.
남의 인정을 얻고자 시작된 삶에서 출발해서 남의 인정으로 먹고 살려다 보니 피로사회가 되었고 그 피로가 극에 달한 것이 현 시점이라면 어떻게 해야 현명한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타자중심의 사회에서 나 중심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인데......
이런 걸 포기라고 해야 하나, 제자리 찾기라고 해야 하나.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포기하는 용기>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주고 있다.
저자는 행복은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절히 포기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삶의 균형이 깨어진 데서 옵니다.
균형저울에 비유해서 얘기하자면,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욕망이 올려져있고 다른 한쪽에는 현실이 올려져있다고 칩시다.
이때 어느 한쪽이 무거우면 균형이 깨지죠. 우리 삶이 고통스러운 순간은 대체로 현실에서 가진 것보다 욕망의 무게가 더 무거울 때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현실의 저울에 무언가를 더 올려놓으려고 애씁니다. 자녀의 더 좋은 대학, 남편이나 자신의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수입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요, 균형을 맞추는 길에는 현실의 쟁반에 더 얹는 방법뿐 아니라 욕망의 저울을 덜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기할 수 있는 용기이며 지혜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불안의 시대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역사의 대부분이 침략과 전쟁의 역사였으니 인류는 그 세월만큼 불안 속에서 살아왔던 것, 맞다.
어쩌면 불안은 시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주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실존 자체가 불안인 이유는......
우리 스스로 욕망의 결합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정의 역할이 미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 불안의 산실은 도대체 어디일까.
저자의 말처럼 요즈음 아버지의 역할은 미미해졌고, 어머니의 역할은 로드매니저로 전락했고, 연애는 가볍고, 결혼은 두렵고, 육아는 기피대상이다.
저자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인정에 목숨 건 존재라고 한다.
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본문에서)
인간이 최초로 인식된 대상은 타인(엄마)이요, 최초로 옹알이하는 말도 맘마나 빠빠 같은 말이다.
부모의 인정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인정에 대한 욕구가 과도하게 작동되면서 세상의 구조는 이런 인정욕구를 이용하고 착취해 왔다는 점이다.
저는 인간 최초의 비극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인식된 개체가 자신이 아니라 타자라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세상의 모든 타자를 총합하고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본문에서)
그러고 보니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겠다는 욕망이 비극의 시작일 수 있겠다.
모두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다고 투덜댄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잉여급여자들이나 억 소리 나는 연봉자들을 보며 목표를 삼기도 하고 회의를 느끼기도 하는 것은 세상이 심어준 욕망 때문이라고 한다.
평균적이지 않은 목표에 목매라는 사회의 모순인 셈이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것일지도 모른다.
직장이 내게 욕망하라고 한 것을, 세상이 내게 욕망하라고 강조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밀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 채워본다면…….
한결 편하게 자신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저자는 나 자신을 위한 올바른 삶의 과정이란 오랜 성찰을 겪으며 점점 변화되어지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이뤄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우르르 몰려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며 사는 삶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을 보장해 주겠지.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은 세상에 알릴 필요도 없고, 타인의 확인도 필요 없는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약속,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이행한 약속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본문에서)
내가 나를 인정하는 건 인정욕구의 메커니즘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는 괜찮은데, 만족한데 자꾸만 사회의 욕구수준에 끌려가는 삶, 있는 그대로의 나에 만족하는 데 자꾸만 더 높은 인정수준을 들이대는 사회……
정말 피로사회다.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방황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성취를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사회, 성공에 목매는 사회에 대한 일침이다.
우리에겐 포기할 권리,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욕망을 버리는 순간에 ,사는 게 훨씬 가벼울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포기할 때 편해짐을 느낀다. 다 내려놓고 보면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되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포기해야 할 것과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버리지 않으면 집안에 넘치는 쓰레기처럼 포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정리정돈이 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치겠지.
그렇다면 삶에서 버려야 할 것들은 의외로 많은 건지도 모른다.
집안을 정리정돈 잘 하는 사람은 잘 버리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했는데 삶을 정리정돈 하고 싶을 때 버려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본다.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포기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버려야 할 것들을 매일 생각해 봐야겠다.
욕망의 무게를 덜어내면 그만큼 몸은 가벼운 법인데…….